조원태(왼쪽)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3월 24일 열리는 지주회사 한진칼의 정기 주주총회에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놓고 주주 표 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진칼 주총은 2019년 12월부터 본격화한 한진가 남매의 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사진 연합뉴스
조원태(왼쪽)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3월 24일 열리는 지주회사 한진칼의 정기 주주총회에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놓고 주주 표 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진칼 주총은 2019년 12월부터 본격화한 한진가 남매의 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사진 연합뉴스

2019년 12월 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판하면서 본격화한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의 난(亂)’이 한 달여 만에 전기를 맞았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과 ‘3자 동맹’을 맺은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이 1월 31일 조원태 회장을 겨냥해 전문 경영인 도입을 주장한 지 불과 나흘 만인 2월 4일 모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공식적으로 조원태 회장 지지를 표명했다.

한진가(家) 남매의 난에서 분수령이 될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의 정기 주주총회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의 움직임이 바빠지는 형국이다. 조원태 회장은 3월 23일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조원태 회장이 사내이사를 연임하거나 새 사내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이 전문 경영인 도입을 주장하면서, 조원태 회장 측은 연임을 강행하는 대신 전문 경영인 선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매가 각각 내세운 전문 경영인 선임안이 주총에 상정돼 주주 표 대결이 펼쳐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한진칼 지분 6.52%를 보유한 조원태 회장은 델타항공(10%), 카카오(1%), 계열사 임원과 친족 등 특수관계인(4.15%)을 우호 세력으로 확보한 데 이어 이명희 고문(5.31%)과 조현민 전무(6.47%)의 지지를 끌어냈다. 이로써 조원태 회장 측 지분은 총 33.45%로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을 앞서게 됐다. 하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 측과 의결권 유효지분 격차가 1.47%포인트에 불과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한진칼 지분 6.49%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조원태 회장을 반대하며 동맹을 맺은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17.29%), 반도건설(8.28%, 의결권 유효지분 8.2%) 지분을 더하면 조현아 전 부사장 측 지분은 의결권 유효지분 기준 31.98%다. 한진칼은 이사 선임·해임 안건을 일반결의사항으로 정하고 있어 출석 주주 과반의 찬성을 얻으면 통과된다. 주총 참석 주주 추정치를 고려하면 이사 선임 안건 통과를 위해 추가로 확보해야 할 지분이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측 모두 10% 안팎으로 별 차이가 없다.

‘캐스팅 보트’는 국민연금공단과 소액주주가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4.11%를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과 소액주주 등 기타 지분율은 30.38%인 상황. 이에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은 주총 전까지 표심을 잡기 위한 치열한 물밑 작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조원태 회장 측은 조만간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 정책을 비롯해 고강도의 경영 쇄신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3월 한진칼 주총에서 남매의 승패가 갈리더라도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이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표 대결에서 진 쪽이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아 지분 확보 경쟁에 이은 주총 표 대결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경영권 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남매의 합의가 불가피하다.


선대 회장의 ‘유훈’

고(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19년 4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조원태 회장에게 “가족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유언장은 없었다. 선대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유언장의 부재는 남매의 난에 불씨가 됐다. 조양호 회장 별세 직후 그룹 동일인(총수) 지정을 놓고 내부 이견이 나왔고, 우여곡절 끝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원태 회장을 총수로 지정하자 남매 불화설이 흘러나왔다. 2019년 10월 이명희 고문, 조원태 회장,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무가 법정 비율에 따라 조양호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으면서 수그러들던 불화설은 2019년 12월 말 조현아 전 부사장의 조원태 회장에 대한 비판 입장 표명으로 기정사실화됐다.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은 고인의 ‘유훈(遺訓)’을 내세워 서로를 비판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9년 12월 말 법무법인 원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조양호 회장이 생전에 가족들이 협력해 공동으로 한진그룹을 운영하라는 유지를 남겼지만, 조원태 회장이 어떤 합의도 없이 독단으로 그룹을 경영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한진그룹은 입장문을 내고 “조양호 회장 별세 이후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경영진이 각고의 노력을 했다”며 “이것이 곧 조 회장의 간절한 소망이자 유훈이라고 믿는다”라고 반박했다.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가 2월 4일 조원태 회장 지지를 공식화하면서 발표한 입장문에도 ‘유훈’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두 사람은 “한진그룹 대주주로서 선대 회장의 유훈을 받들어 그룹의 안정과 발전을 염원한다”라고 했다. 떠난 이는 말이 없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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