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서울대 항공공학 학사, 프랑스 국립항공우주대 발사체·인공위성 전문석사, 프랑스 폴사바티에대 자동제어학 박사, 전 항우연 항공우주시스템 연구소장, 전 항우연 달탐사사업단장 /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서울대 항공공학 학사, 프랑스 국립항공우주대 발사체·인공위성 전문석사, 프랑스 폴사바티에대 자동제어학 박사, 전 항우연 항공우주시스템 연구소장, 전 항우연 달탐사사업단장 /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스페이스X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우주 프로그램(아르테미스) 파트너 중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됐다.”

NASA가 4월 16일(현지시각)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달 착륙선 개발 사업자로 일론 머스크가 세운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선정하자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과 방산기업 다이네틱스를 누른 머스크는 “3년 이내에 인간을 달로 보내겠다. 달에 영구적인 기지를 건설하자”라며 기뻐했다.

민간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본격화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을 필두로 유럽·중국·인도 등 많은 나라의 기업들이 우주 개척의 포부를 드러내며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뉴스페이스 흐름이 국내 민간 우주 산업계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국산 기술로 만든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올해 10월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한국의 뉴스페이스 열기도 한층 뜨거워질 것이다.

‘이코노미조선’은 한국 우주 개발의 중심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뉴스페이스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4월 26일 대전 항우연 본원에서 이상률 신임 원장을 만났다. 항우연에 우주 분야 1호 엔지니어로 입사해 35년째 근무 중인 이 원장은 3월 23일 취임하면서 패러다임 전환기에 항우연의 역할론을 재정의하는 동시에 누리호와 달 궤도선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려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미래 우주 기술을 고민하는 별도 조직을 꾸려 한국 우주 개발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했다.


중요한 시기에 원장에 선임됐다.
“올해 누리호 발사, 내년 달 궤도선 발사 등 굵직한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누리호의 경우 지난 3월 가장 어려운 관문인 1단 추진 기관에 대한 종합 연소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9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현재 고흥 우주센터에서 실제 비행 모델을 조립 중이다. 조립이 끝나면 누리호를 발사대로 옮겨 연료·산화제 등을 충전·배출하는 테스트를 한 뒤 10월 첫 발사에 도전할 계획이다. 달 궤도선에는 총 6기의 탑재체가 실린다. 한국에서 개발된 5기는 지난해 말 납품돼 각종 시험을 마친 상태다. NASA가 개발하는 나머지 탑재체 1기는 올해 6월 항우연에 입고된다. 이후 달 궤도선 비행 모델 조립을 거쳐 2022년 8월 발사할 계획이다. 모두 차질없이 끝날 것으로 믿는다.”

미국 등 우주 개발 선진국을 보면 민간 업체의 역할이 점점 커진다.
“한국도 미국처럼 점차 민간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이미 많은 국내 산업체가 위성과 발사체 개발에 참여하며 기술력을 쌓고 있다. 최근 발사한 차세대 중형 위성 1호는 항우연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공동 설계팀을 운영해 만들었다. 개발 과정에서 항우연이 확보한 시스템·본체 개발 기술을 KAI로 이전했고, 현재 2호기는 KAI가 총괄해 개발하고 있다. 내년 초에 발사할 예정이다. 발사체(누리호) 개발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KAI 등 300여 개 기업이 참여 중이다.”

민간이 우주 개발을 주도한다는 의미의 ‘뉴스페이스’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미국 스페이스X 같은 혁신 기업이 우주 비즈니스로 돈 버는 모습을 보면서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렸음을 실감한다. 사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주 개발은 국가가 미래에 투자하는 개념이지 거기서 경제성을 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뉴스페이스를 목격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수천억원에 이르던 위성 개발 비용이 10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지고, 최소 2억달러(약 2216억원)는 각오해야 했던 발사 비용을 200만달러(약 22억원)까지 낮추겠다는 회사(스페이스X)가 등장하는 걸 보면서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한국에서도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 같은 민간 우주 기업이 등장할 수 있을까.
“한국인 특유의 영리함과 도전정신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경제를 이끄는 자동차·반도체·조선도 선진국보다 늦게 출발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경우다. 이들 산업에서 얻은 고급 기술을 우주 개발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목해 틈새시장을 확보한다면 글로벌 우주 산업계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페리지항공우주·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이노스페이스 등의 우주 스타트업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민간의 우주 개발이 확대되면 항우연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길까.
“민간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면서 우주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앞으로 정부와 출연연구기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항우연은 정부가 필요로 하는 위성·발사체 개발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왔다. 지금까지의 항우연 업무들은 산업체로 이관될 것이다. 항우연은 국가가 필요로 하지만 기업이 당장 하기 어려운 우주 개발이나 미래 혁신기술 등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기관 차원에서 추진하려는 게 있나.
“항우연이 누리호 개발 같은 정부 수탁 사업 말고 먼 미래를 위한 선제적 투자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예산·인력 등이 부족했다. 지금도 녹록지 않은 환경이지만, 그래도 정말 ‘미래적인’ 연구를 해보려고 한다. 선진국이 아직 하지 않은 것이라든지, 하고 있지만 부진한 것들 말이다. 재사용 발사체는 스페이스X가 장악한 분야다. 뒤늦게 따라가는 건 의미 없다. 원장 임기 동안 미래 우주 기술을 고민하는 아이디어랩 같은 센터를 만들 생각이다.”

예산 여유가 있을까.
“항우연 한 해 예산이 약 5000억원이고, 이 중 74%를 정부 사업에 쓴다. 출연금은 23%인데, 이 23%도 항우연이 함부로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다. 항우연이 연구 명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돈을 계산해보면 대략 100억원 정도인 듯하다. 공격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그래도 우주 기술의 미래를 구상하고 개념을 설계하는 종잣돈으로 쓸 수는 있다. 항우연이 뉴스페이스 시대에 민간과 조화를 이루며 전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대전=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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