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 AP연합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 AP연합

“정말 그렇다(Indeed).”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5월 16일(이하 현지시각) 트위터에 남긴 모호한 이 영어 6글자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이 요동쳤다. 한 개인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주식과 달리, 거래 시간이나 등락 폭에 제한 없는 환경에서 암호화폐 시세가 무방비로 출렁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머스크는 이날 향후 테슬라가 보유 중인 비트코인을 머스크가 팔아치울 수 있다고 분석한 자칭 ‘암호화폐 분석가’인 블로거 미스터 웨일의 트위터 게시물에 “정말 그렇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머스크가 테슬라 비트코인 처분 예상에 대해 “정말 그렇다”라고 답한 의미로 해석되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머스크는 10시간 뒤 “테슬라는 비트코인을 하나도 팔지 않았다”라고 해명했으나, 이미 암호화폐 시장은 초토화된 뒤였다.

실제 이날 비트코인의 가격은 트윗 직후 8% 이상 급락하며 한때 4만5000달러(약 5095만원)를 밑돌며 지난 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 4월 중순 고점(6만3564달러)의 3분의 2 수준으로 밀린 것이다.

머스크의 ‘입’으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이 요동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머스크는 5월 13일 “비트코인 채굴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이용해 만든 전기가 많이 사용돼 환경을 파괴한다”라며 비트코인의 테슬라 결제 수단 허용을 돌연 취소했다. 테슬라는 앞서 2월 15억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구매한 뒤 테슬라 차량 구매 시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허용하면서 비트코인 급등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비트코인 투자분 2억7200만달러(약 3080억원)를 매도한 사실이 알려졌고, 직후 테슬라 차량의 비트코인 결제를 취소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는 ‘믿을 수 없는 내레이터’”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영국 방송사 BBC도 “이제서야 갑자기 비트코인이 친환경적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라고 비꼬았다.

이런 해프닝 후 5월 19일 비트코인 가격은 4만달러(약 4500만원) 선을 깨며 추락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4만달러 이하로 내려온 건 지난 2월 이후 처음이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4분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3만 2974달러(약 3700만원) 선에 거래됐다.

비트코인뿐 아니라 도지코인 역시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가격이 급락한 전력이 있다. 도지코인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끈 시바견 밈(meme·인터넷에서 입소문을 타며 유행하는 이미지·영상)을 바탕으로 2013년 만들어진 암호화폐다. 2월 4일 머스크가 도지코인을 “우리 모두의 암호화폐”라고 트위터에 쓰면서 가격이 50%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이어 머스크는 5월 8일 미국 유명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출연을 앞둔 4월 28일 자신을 ‘도지 파더’라고 지칭했다. 도지코인 가격은 추가로 20% 올랐다. 그러나 머스크가 SNL 방송 도중 “도지코인은 사기”라고 가볍게 농담하자, 최고가 대비 30%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암호화폐 시장을 교란하는 머스크를 비판하는 암호화폐 ‘스톱일론(STOPELON)’까지 출시됐다. 5월 17일 미국 경제 매체 벤징가에 따르면 동명의 단체는 “스톱일론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테슬라 주식을 사 경영권을 확보한 뒤 머스크를 해임하겠다”라고 밝혔다. 벤징가에 따르면 스톱일론 코인 가격은 5월 17일 1개당 0.000001756달러(약 1만 개당 20원)에서 한때 512% 오른 0.000010756달러(약 1만 개당 113원)를 기록했다.


“투자자산? 갸우뚱”

물론 일론 머스크의 발언만이 암호화폐 시장을 가파른 가격 조정 국면에 접어들게 한 것은 아니다. 중국 당국의 암호화폐에 대한 ‘경고’ 역시 머스크의 발언과 엉켜 폭락세를 이끌었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한 ‘검은 수요일(5월 19일)’은 중국 금융 당국의 암호화폐 경고 소식이 가격 하락세에 불을 지피기도 한 날이다. 중국은행업협회 등은 5월 18일 ‘암호화폐 거래 및 투기 위험에 대한 공고’를 공동 발표하며 “암호화폐는 시장에서 사용돼선 안 된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종전과 다르지 않은 입장이었지만 시장은 격하게 반응했다.

전문가들은 의사소통에 장애를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고백한 머스크 개인의 일탈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말에 가격이 좌지우지되는 암호화폐 시장에 본질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로이터통신은 “수많은 추종자가 따르는 머스크는 자기 생각대로 시장을 움직일 만한 힘이 있지만, 모호한 규정 때문에 규제 당국 역시 그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 싱크탱크 베러마켓의 데니스 켈러허 대표는 “머스크의 발언이 분명히 무책임한 것도 맞지만, 불법은 아닐 수 있다”며 투자자들이 스스로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가상자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을 최근 발의한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머스크가 가격을 변동시킬 목적으로 암호화폐를 사고팔며 특정 멘트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 당연히 법에 저촉된다”고 지적했다.

경제 칼럼니스트 마이클 힐칙은 칼럼을 통해 “정부 발행 화폐와 달리 암호화폐는 추측에 의존해 가치를 평가한다”라며 “부주의한 투자자들은 투자 유혹에 빠져들기 쉽고, 기술·사회적 변화의 시기에 이러한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라고 말했다.

개인의 한마디에 가격이 출렁이는 현상은 암호화폐의 가치를 뒷받침할 펀더멘털이 부재함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머스크발 비트코인 가격 급등락으로 주식과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 암호화폐의 투자자산 가능성에 대한 펀드매니저들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암호화폐 불신에 金 반사이익

비트코인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안전자산인 금 선호도는 높아지고 있다. 실제 금값은 최근 3개월여 만에 하락세를 멈추고 상승세로 전환하며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5월 17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현물가는 전 거래일보다 1.2% 상승한 온스당 1865.74달러(약 211만3320원)를, 금 선물은 1.5% 상승한 1865.80달러(약 211만3390원)를 각각 기록했다. 이는 2월 초 이후 3개월 만에 최고치다. JP모건은 5월 19일 투자자 메모를 통해 “비트코인 펀드에서 인출된 자금이 전통 자산인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라고 전했다. ‘디지털 금’으로 불린 비트코인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전통적인 금의 안정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게 JP모건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