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장이밍 바이트댄스 창업자, 황정 핀둬둬 창업자. 사진 블룸버그·연합뉴스
왼쪽부터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장이밍 바이트댄스 창업자, 황정 핀둬둬 창업자. 사진 블룸버그·연합뉴스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 한 대학의 표지석에서 ‘대학’ 글자를 지우는 영상이 공유돼 화제를 모았다. 이 대학은 마윈(馬雲·57) 알리바바 창업자가 2015년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설립한 경영대학원 후판(湖畔)대였다. ‘재계 엘리트 양성소’로 알려진 이 대학은 까다로운 입학 기준으로 소수 정예만 선발해 중국 현지에서는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보다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로 불려 왔다.

홍콩 명보(明報)는 5월 18일(이하 현지시각) “후판대가 간판을 내리고 창업연구센터로 이름을 바꾼다”라고 보도했는데, 대학 표지석 공사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였다. 이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월 23일 “마윈이 중국 당국의 압력으로 후판대 총장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후판대 홈페이지에 올라 있던 마윈의 사진은 사라지고 교실 사진으로 대체됐다. 일각에서는 마윈이 후판대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못마땅해한 중국 당국이 압박을 가한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마윈은 2020년 10월 24일 상하이 금융 서밋에서 중국 금융 시스템을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전당포 경제’로 비유하며 중국 당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그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전방위적인 탄압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홍콩증시 상장을 앞뒀던 알리바바의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자회사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가 전격 취소됐다. 이어 중국 당국은 올해 초 알리바바에 182억위안(약 3조2760억원)의 반독점 과징금도 부과했다.

마윈은 공개석상에서 종적을 감춰 한때 ‘실종설’이 나돌았다. 그는 발언 7개월 만인 5월 10일 알리바바의 사내 오프라인 행사인 ‘알리데이’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그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중국 당국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윈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창업 신화를 쓴 기업인들이 경영 일선에서 계속 물러나고 있다. 중국 5위 부호인 장이밍(張一鳴·38) 바이트댄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5월 20일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바이트댄스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TikTok)’을 운영하는 회사다. 틱톡은 글로벌 사용자가 10억 명이 넘는다. 바이트댄스는 앤트그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다. 지난해 12월 추가 투자를 유치할 때 기업 가치는 1800억달러(약 205조2000억원)로 평가됐다.

장이밍은 이날 전체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오랜 고민 끝에 바이트댄스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라며 “경영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연말까지 점진적으로 CEO 교체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나는 이상적인 경영인으로서 덕목이 부족하다”면서 “일상의 관리 책임에서 벗어나면 장기적인 전략과 조직 문화, 사회 책임을 보살필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가 1983년생으로 젊은 데다 바이트댄스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IPO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갑자기 사퇴를 결정했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장이밍은 바이트댄스 지분을 20∼30%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가진 의결권은 50%에 이른다. 장이밍이 CEO에서 물러나면서 향후 지분과 의결권이 어떻게 조정될지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 창업자이자 회장이었던 황정(黄峥·41)도 조기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창업 6년 만에 핀둬둬를 알리바바와 징둥에 버금가는 중국 3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키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주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더는 회사 경영과 관련된 직책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회장직을 그만두면서 지배주주 권리까지 포기하겠다고 했다. 후임 회장은 현 CEO이자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천레이(陳磊)가 맡는다.

중국이 알리바바를 비롯한 자국의 인터넷 공룡 기업을 대상으로 통제를 강화하는 시점에 황정과 장이밍의 갑작스러운 CEO 사임 발표가 나온 점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 IPO로 기대를 모았던 마윈의 앤트그룹 상장 중단 사태를 지켜본 민영기업인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 아니냐고 보기도 한다.

중국의 기술 전문가 리청둥은 로이터통신에 “장이밍이 상장 후 그의 재산이 급증하면서 미디어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을 걱정했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중국에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젊은 부호들의 잇단 조기 은퇴가 거대 인터넷 기업은 물론 이들 기업 창업주들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압박과 연관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중국 경제 고성장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됐던 국가자본주의가 민영기업의 생살여탈권을 쥔 리스크로 계속 부각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란 시장보다는 정부 주도의 경제 체제를 말한다. 이는 시장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근간을 이루는 사유재산권이 중국에서는 손쉽게 부정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 인부가 중국 후판대 표지석에서 ‘대학’ 글자를 지우고 있다. 이 모습이 담긴 영상이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와 확산했다. 사진 웨이보
한 인부가 중국 후판대 표지석에서 ‘대학’ 글자를 지우고 있다. 이 모습이 담긴 영상이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와 확산했다. 사진 웨이보

실종된 中 기업인도 많아

이미 중국에서는 유명 기업인이 실종되거나 그룹이 해체 또는 국유화된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은 중국 최대 민영보험사인 안방보험(현 다자보험)의 설립자이자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외손녀 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다. 2017년 체포된 우샤오후이는 징역 18년을 선고받고, 자산 105억위안(약 1조8900억원)을 몰수당했다. 2004년 설립된 안방보험은 중국에서 자본금 기준 1위 보험사로 도약한 거대 보험사였다. 우샤오후이의 주된 혐의는 불법 자금 모금이었다. 우샤오후이는 현재도 복역 중이며 중국 당국은 2020년 9월 안방보험을 공중분해했다.

런즈창(任志強) 전 화위안그룹 회장도 2020년 중국 당국에 의해 몰락한 부동산 부호다. 런즈창은 지난해 3월 중국 당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책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상에 공개했다. 그는 당시 시 주석을 ‘벌거벗은 광대’에 빗댔다. 이 글이 게재된 뒤 그는 실종됐다. 실종 20일 후 중국 당국이 그를 감찰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어 지난해 7월 런즈창의 공산당 당적이 박탈됐으며 9월 부패와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 18년형과 벌금 420만위안(약 7억56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가 2003~2017년 화위안그룹 회장 재직 시절 공금을 횡령하고,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앞서 2017년 1월에는 중국 투자 회사 밍톈그룹의 회장이었던 샤오젠화(肖建華)가 실종됐다. 복잡한 지분 거래를 토대로 금융과 제조 업계 등 다방면을 아우르는 100여 개 상장 기업 대주주로 활동했던 샤오젠화는 ‘신비의 자본가’란 별칭을 얻으며 2016년 중국 부호 23위에 올랐던 거물급 금융인이었다. 그가 소유했던 금융기업들은 국유화됐고,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샤오젠화의 행적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실종 후 중국 당국과 협의 끝에 풀려난 기업인도 있다.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다가 2015년 실종됐던 궈광창(郭廣昌) 푸싱그룹 창업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12월 중국 SNS에는 궈광창이 상하이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연행됐다는 목격담이 등장했다. 푸싱그룹 측은 당시 궈광창이 사법 당국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간략하게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후 궈광창은 회사로 복귀했다. 즉각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선포한 ‘부패와의 전쟁’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시 주석이 2013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수십 명의 중국 기업 오너 혹은 CEO가 사라졌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복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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