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사진 AP연합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사진 AP연합

5월 12일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이 2020년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에 연간 5조엔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냈다고 밝히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다. 이 기간 순익은 4조9880억엔(약 49조8000억원)에 달했다. 일본 역사상 단일 기업 기준 사상 최대 규모였고, 전 세계 기업과 비교해 봐도 미국 애플,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 중국공상은행 다음으로 많은 수준이었다. 2019년 회계연도에서 9616억엔(약 9조6000억원)의 순손실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대반전 성적표’를 내놓은 셈이다.

여기에는 그룹 산하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인 비전펀드의 투자 성과가 좋았던 것이 주효했다. 특히 비전펀드의 핵심 투자사인 쿠팡의 성공적인 미국 증시 상장으로 지분 가치 2조6000억엔(아직 매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 주식 가격 상승효과만 반영)가량을 계상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손 회장은 역대급 순익을 발표한 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비전펀드를 통해 스타트업 투자를 늘려 포트폴리오를 현재의 두 배인 500개가량으로 늘리고, 매년 수십 개씩 기업공개(IPO)를 시켜 수익을 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간 기술주 투자나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 ARM 같은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해 온 소프트뱅크그룹이지만, 앞으로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이들을 상장시킴으로써 수익을 내겠다는 전략으로 방향을 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손 회장이 실적 발표 후 진행한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미국 CNBC 인터뷰 내용과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들을 종합해 소프트뱅크그룹의 투자 방향성을 세 가지로 요약해 봤다.


1│황금알 더 많이 늘린다

“비전펀드 포트폴리오를 300곳, 400곳, 500곳으로 늘려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업 지분 인수는 전혀 관심 없다. 시간 투입 대비 효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매년 수십 개씩 투자 기업을 늘려나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손 회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투자 전략을 바꾸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성장기업의 경영에 관여하기 위한 지분 인수보다 ‘될성부른’ 기업에 투자해 성장시키는 것이 더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의 사업 모델을 ‘황금알 제조사(manufacturer of golden eggs)’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투자 기업을 상장시키는 과정은 ‘흰 알을 황금알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프트뱅크그룹에서 초기·성장 단계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는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이준표 대표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좋은 알을 찾아서 투자금을 대는 것뿐 아니라 소프트뱅크그룹이 가지고 있는 시너지, 인공지능(AI) 기술 전략 자문 등을 지원해 황금알을 만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1000억달러(약 114조원) 규모로 조성된 비전펀드 1~2호는 온라인 식료품점 고퍼프, 자율주행차 업체 오로라, 피트니스 테크 업체 훕 등 224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비전펀드 핵심 포트폴리오로 꼽히는 쿠팡, 우버, 도어대시 같은 기업이 IPO에 성공해 황금알로 변신 중이다.


2│멀리 보고, 상상한 것을 한다

일본 기업으로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구글 모회사), 페이스북, 삼성전자, 인텔 같은 쟁쟁한 글로벌 테크 기업보다 높은 순익(최근 연간 실적 기준)을 낸 손 회장이지만, 후회가 남는 투자 건도 있다. 가격 때문에 머뭇거리다가 결국 ‘가보지 못한 길’로 남은 것들이 그렇다.

“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상상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간 경험했던 것처럼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용기 내서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상상해야 할 때도 있다.”

그는 CNBC와 인터뷰에서 미국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스타트업 스노 플레이크에 투자하지 못했던 것을 가장 후회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손 회장은 특히 에어비앤비를 언급하면서 “꽤 좋은 회사로, 비즈니스 모델과 인재가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 투자금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못했다”라면서 “가격이 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비전펀드는 고성장하면서도 적자인 기업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비전펀드가 적자 기업인 쿠팡에 투자한 것을 일각에서는 모험처럼 받아들였던 게 사실이지만, 손 회장은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의 리더십, 회사의 성장성 등을 보고 베팅했던 것이다”라며 “결과적으로 ‘모험 자본으로서 VC의 모범’을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3│전초기지와 유기적으로…그룹 시너지

최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주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번역, 자막, 더빙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콘텐츠 현지화 전문기업 아이유노미디어그룹이 비전펀드 2호로부터 약 1800억원을 투자받아 화제가 됐다.

아이유노미디어그룹은 앞서 2018년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240억원의 투자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비전펀드가 포트폴리오를 최소 두 배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한 만큼 ‘비전펀드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선제적 기업 발굴, 육성 이후 비전펀드의 후속 투자가 이어지는 소프트뱅크그룹 간 시너지 사례가 더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더 다양한 섹터, 더 다양한 (성장) 단계 회사에 더 많이 투자하겠다고 비전펀드가 밝힌 만큼 소프트뱅크벤처스는 국내외에서 좋은 회사(흰 알)를 발굴해 비전펀드 투자로 연결시키는 가교 역할을 지속적으로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우정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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