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롯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롯데

네이버, 쿠팡에 이어 국내 전자상거래 거래액 3위인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이 유통가 오너 2세 간 자존심을 건 싸움이 됐다. 6월 7일 미국 이베이 본사와 매각주관사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가 진행한 이베이코리아 본입찰에 롯데쇼핑과 신세계그룹 이마트가 뛰어들면서다. 유통업 판도를 뒤흔들 인수합병(M&A)이라고 평가받는 이번 거래에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중 누가 웃을지 관심이 뜨겁다.

롯데와 신세계는 1979년 롯데쇼핑 창립 이래 42년간 ‘유통 1위 기업’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 온 맞수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1963년 국내 첫 백화점인 서울 동화백화점을 명동 신세계 본점으로 바꿔 유통업에 먼저 진출했고 롯데는 1979년 서울 을지로에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를 지으며 발을 내디뎠다. 이후 이화여대 동문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유통업을 이어받으며 경쟁을 이어갔다. 지난 1월 이마트가 프로 야구단 SK와이번스(현 SSG랜더스)를 인수하면서 승부처가 장외로도 확대됐다.


롯데온·SSG닷컴, 자력으론 성장 한계

미국 이베이 본사가 지난 1월 한국 사업부(이베이코리아) 매각을 공식화한 이후 롯데와 신세계는 유력한 인수 후보군으로 주목받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소비 전환이 가속화되며 두 회사는 자체 통합 온라인몰인 롯데온(롯데쇼핑)과 SSG닷컴(신세계)을 띄웠지만 작년 기준 거래액이 각각 7조6000억원, 3조9000억원에 그쳤다. 두 자릿수 조 단위 거래액을 기록한 네이버쇼핑(27조원), 쿠팡(21조원), 이베이코리아(20조원)에 한참 못 미치는 성과다.

그동안 오프라인 점포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해온 롯데, 신세계는 온라인·모바일 DNA로 무장한 이커머스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온라인, 모바일에 최적화된 사업모델과 인력의 부재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신세계그룹은 2018년 SSG닷컴을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고, 롯데그룹도 같은 해 이커머스 사업본부를 출범시킨 데 이어 작년 롯데온을 론칭하며 전자상거래 사업에 힘을 실었지만 두 회사의 합산 거래액이 11조원 정도로 쿠팡의 절반에 그친다. 이대로라면 네이버, 쿠팡과 격차를 좁힐 수 없을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베이코리아는 국내에 기반을 둔 이커머스 기업 가운데 급성장한 쿠팡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회사로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01년 옥션, 2009년 G마켓을 인수하며 한국에 진출한 오픈마켓의 원조로 16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국내 이커머스 사업자 중 꾸준히 연간 영업흑자를 내는 유일한 회사다.

이베이코리아의 작년 매출은 19% 증가한 1조3000억원, 영업이익은 38% 증가한 850억원을 기록했다. 유료 멤버십 스마일클럽 회원 수는 작년 기준 300만 명을 넘어 이커머스 업체 중 쿠팡의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470만 명) 다음으로 많았다.

이베이코리아의 흑자 비결은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오픈마켓(상품 중개업자) 사업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판매자와 협력한다는 점이다. 가령 쿠팡은 제품 중개를 넘어 직매입해 직접 배송하는 사업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거래액은 급속하게 불렸지만 대형 유통사와 가격 경쟁을 불사하고 판매자에게 지나치게 낮은 판매가를 요구한다는 논란을 일으키며 중소상인은 물론 대기업, 중견기업과도 마찰을 빚었다. 지난 2019년 LG생활건강은 납품가격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쿠팡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반면 이베이코리아는 직매입 없이 판매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플랫폼으로서 판매자에게 받는 수수료로 수익을 얻는다. 오랜 기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대체로 외부업체와 협력한다. 예컨대 이베이코리아는 물류센터가 경기도 용인·동탄, 인천 3곳뿐이고 신선식품을 취급할 수 있는 콜드체인(저온물류) 시설이 없다. 쿠팡이 물류센터를 직접 짓는다면 이베이코리아는 물류는 CJ대한통운에 맡기고 홈플러스, 롯데슈퍼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매장을 거점으로 신선식품 당일배송을 한다.

롯데, 신세계는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함과 동시에 거래액 기준 전자상거래 업체 2위 업체로 퀀텀점프할 기회를 얻게 된다. 두 회사는 ‘경쟁사에만은 뺏길 수 없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어 이번 인수전이 ‘쩐의 전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이베이 본사가 이베이코리아의 매각가로 EBITDA(세전·이자지급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 대비 50배에 달하는 5조원을 제시해 유통업계 안팎에서 가격 거품 논란이 제기됐음에도 두 회사 모두 본입찰에 뛰어들었다. 통상 금융권은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EBITDA 대비 10배 정도를 잡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사진 신세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사진 신세계

신세계, 네이버와 연합…롯데, 시너지 강조

신세계그룹은 본입찰에 네이버와 함께 뛰어들면서 롯데쇼핑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자금 여력을 보완했다. 이마트가 향후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사용제한자산)은 1분기 말 기준 1조9000억원에 그치지만 네이버(3조원)와 합하면 롯데쇼핑(4조2000억원)을 넘어선다. 신세계그룹과 네이버는 지난 3월 2500억원 규모 지분 교환 협약을 맺은 이후 첫 번째 협력 방안으로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을 택했다.

롯데쇼핑은 그동안 미국 이베이 본사가 M&A에서 정량 요소(가격)만큼 정성 요소(비가격)를 중요하게 평가했다는 점을 감안해 본사와 긴밀하게 접촉하며 이베이코리아 직원들 고용 유지 및 인수 이후 시너지 창출 방안을 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이베이코리아의 신성장동력인 풀필먼트(보관·포장·배송·재고 통합 물류관리 시스템) 부문에서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베이코리아는 풀필먼트 사업을 확대하려 하지만 물류센터와 신선식품을 취급할 인프라가 부족하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지난 4월 경기도 이천에 풀필먼트 센터를 열면서 풀필먼트 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충북 진천에 짓고 있는 택배 터미널에 풀필먼트 자동화 센터를 구축했다. 작년 10월부터 국내 최초로 콜드체인 기능을 갖춘 전기화물차 6대를 배송에 투입한 데 이어 올해 20대, 내년 100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베이코리아는 경쟁사 대비 취약점으로 꼽히는 신선식품 판매·배송을 강화할 수 있고 롯데는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G마켓·옥션 거래액을 물량으로 받아올 수 있다.

매각가가 워낙 높은 탓에 이번 인수전에서 승리하는 기업이 ‘승자의 저주’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베이코리아는 주요 고객층이 SSG닷컴, 롯데온과 상당 부분 겹치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음식배달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쿠팡과 달리 수익구조가 단순하다는 한계가 있다. 지마켓, 옥션, G9 등 독자적인 플랫폼에 최적화된 개발 및 시스템 관리를 해온 이베이코리아 IT 인력들이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신세계, 롯데 조직과 유기적 통합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구심도 크다.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발표는 6월 15일 이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이베이 본사는 정량, 정성 평가를 거쳐 15일 연례 이사회 이후 우선협상대상자를 공개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롯데, 신세계가 제시한 인수 가격이나 인수 후 시너지 창출 계획 등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검토 기한을 연장하거나 본입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관심이 있는 다른 기업과 개별 접촉할 가능성도 있다.

이현승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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