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영화감독 고려대학교 경제학, 2001년 두사부일체 각본·연출로 영화감독 데뷔. 2010년 영화 해운대로 제4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 색즉시공(2002년), 해운대(2009년), 국제시장(2014년), 영웅(2020년) 등이 주요 작품 / 사진 조선일보 DB
윤제균 영화감독
고려대학교 경제학, 2001년 두사부일체 각본·연출로 영화감독 데뷔. 2010년 영화 해운대로 제4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 색즉시공(2002년), 해운대(2009년), 국제시장(2014년), 영웅(2020년) 등이 주요 작품 / 사진 조선일보 DB

얼굴에 기름을 묻힌 채 자동차 정비에 한창인 정비공이 땀을 닦아낸다. 좁은 독서실,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공부하던 수험생은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쉰다. 편의점에 생수가 가득 든 상자를 운반하는 아르바이트생, 불 앞에서 웍(중식 전용 팬·wok)을 달구는 요리사 모두 지친 기색이다. 이들은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누군가와 오비맥주 카스 한 캔, 한 병을 부딪치며 하루의 시름을 달랜다. 경쾌하게 맥주를 따 잔을 부딪치고 목으로 꿀꺽 넘기는 시끌벅적한 맥주 광고의 클리셰(cliché·자주 사용하는 진부한 표현)가 쏙 빠진 이 잔잔한 광고에 사람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다.

이 광고는 영화 해운대(2009), 국제시장(2014)을 흥행시키며 ‘쌍천만 감독(두 개 작품이 1000만 관객 돌파)’이란 수식어를 얻은 윤제균 감독의 CF 데뷔작이다. 오비맥주는 1994년 출시 이후 2012년부터 국내 맥주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카스를 올해 초 투명 병에 담은 ‘올뉴카스’로 리뉴얼하면서 광고를 통해 ‘진짜가 되는 시간’이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코로나로 지친 국민 위로하자” 오비맥주-윤제균 맞손

윤 감독은 광고를 제작한 적이 없는 광고맨이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광고회사 LG애드(현 HS애드)에서 사회생활을 했지만 5년 중 4년을 전략기획팀에서 일해 직접 광고를 연출한 적은 없었다. 오비맥주와 인연도 LG애드에서 비롯됐다. 현재 오비맥주 광고 제작사인 온보드의 이현종 대표가 LG애드 시절 윤 감독의 사수다. 막내 카피라이터였던 윤 감독을 하루 종일 혼내며 가르친 인생 선배다. 코로나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자며 오비백주와 윤 감독이 손을 잡은 것이다.

8월 11일 서울 강남구 JK필름 본사에서 만난 그는 오비맥주 카스의 주력 고객층이자 이 광고에 등장하는 2030세대에 대해 ‘상실의 세대’라고 정의했다. 다음은 윤 감독과 일문일답.


윤제균 감독이 총괄한 오비맥주 카스 CF. 화려한 모델들이 나와 맥주잔을 경쾌하게 부딪치며 캬~ 하는 맥주 광고의 흔한 장면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2030 청춘들의 일상을 담았다. 사진 오비맥주 카스 CF 유튜브
윤제균 감독이 총괄한 오비맥주 카스 CF. 화려한 모델들이 나와 맥주잔을 경쾌하게 부딪치며 캬~ 하는 맥주 광고의 흔한 장면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2030 청춘들의 일상을 담았다. 사진 오비맥주 카스 CF 유튜브

광고 등장인물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요리사, 수험생 등 특정 직업군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광고 제작 과정에서 회의를 가장 많이 했던 부분이다. 일하는 젊은 친구들의 땀을 표현하고 응원하고 싶은데 수천, 수만 가지 직종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가 제일 어려웠다. 용광로 앞에서 작업하는 사람이나 스포츠 선수들을 내세울 수도 있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 공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직업들, 무난한 직업들로 최종 결정했다.”

광고에 등장하는 요즘 2030세대를 정의한다면
“상실의 세대다. 나의 아버지 세대,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할아버지 세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MZ 세대는 먹고 살만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복 받은 세대 아닌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 생각이 잘못됐구나 느꼈다. 윗세대는 자기가 일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요즘은 기회의 부재에서 오는 박탈감이 내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느꼈다. 개천에서 용 나기도 어렵다. 꼰대처럼 뭘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냥 응원해주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시간이 넘는 영화를 찍다가 15초, 1분짜리 광고를 찍으려니 힘들지 않았나
“광고에 나오는 장소가 네 군데인데 하루 만에 찍었다. 장소마다 촬영 시간이 딱 2시간이었다. 영화감독이든 CF감독이든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영화는 개봉이 계속 연기되고 있는데, 광고는 촬영하고 1~2주 있다가 결과물이 나오고 본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과정이 너무 다이내믹하고 즐겁고 행복했다.”

코로나19로 특히 어려웠던 산업 중 하나가 영화계였다
“평생 살면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영화 영웅을 작년 초에 다 찍어놨고 작년 여름에 개봉할 예정이었다. 지금 1년이 넘도록 개봉을 못 하고 있다. 영화가 잘돼야 그 흥행 수익으로 영화사를 운영하고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는데 모든 제작사가 수입이 없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서 OTT로 영화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영화 업계엔 위기 아닌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스포츠 중계를 보더라도 집에서 혼자 보는 것과 누군가와 같이 보는 것은 체감이 다르다. 영화도 집에서 큰 화면으로 혼자 보는 것과 100명, 200명이 모여 숨죽여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인간은 싫증을 잘 내는 동물이기도 하다. TV랑 OTT로 영화를 편안하게 보다가도 오래되면 분명 싫증을 낼 것이다. 새로운 공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기지 않을까.”

CJ ENM과 K팝 영화를 제작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윤제균 감독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재미와 감동 요소가 복합된 그런 전개라고 기대하면 될까
“사람은 잘 안 변하지 않을까. 다만 신인 감독의 심정이다. 광고 쪽에서 내가 신인 감독이었듯 세계 시장을 겨냥한 작품은 처음이다. 겸허한 자세로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다.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크다. 내년 상반기부터 촬영을 해서 내후년 정도에 개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 세계 K팝 팬들의 기대감이 크다
“이 작품을 준비한 지는 제법 됐다. 조사, 연구를 해 보니 전 세계적인 K팝 신드롬을 우리 국민만 잘 모르는 것 같다.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의 BTS는 예전 비틀스보다 팬덤이 더하다고 한다. 한국 K팝 가수들이 어린 친구들이지만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애국자들 아닌가 싶다. BTS뿐만 아니라 우리는 잘 모르지만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K팝 그룹이 너무 많다. 그 친구들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국가 브랜드 향상에 이바지한 걸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할 것 같다.”

앞으로 한국 영화사에 윤제균 감독은 어떤 감독으로 기록되고 싶나
“많은 사람에게 진짜 행복을 줬던 감독이고 싶다. 나는 겁이 많아서 공포물이나 잔인한 작품을 잘 못 본다. 20년 넘게 영화를 했는데 대부분 따뜻한 영화들이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긍정적인 에너지와 행복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현승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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