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2위 부동산 개발 회사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이 결국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9월부터 수차례 달러화 채권 이자 지급일을 넘긴 후 간신히 갚으며 디폴트를 피했으나, 12월 6일(이하 현지시각) 달러화 채권 이자 8250만달러(약 990억원)를 유예 기간 30일이 지나도록 끝내 지불하지 못했다. 보유 자산이 2조3800억위안(약 461조원, 2021년 6월 말)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 우리돈 수백억원을 내지 못해 파산 직전까지 몰린 것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피치는 12월 9일 헝다 신용 등급을 ‘제한된 디폴트’로 강등하며, 사실상의 디폴트 판정을 내렸다.

2017년만 해도 중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 부자로 꼽혔던 창업자 쉬자인(許家印·63) 회장은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중국인 사이에 ‘공공의 적(敵)’이 됐다.

중국 최고 정치 자문 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인 쉬 회장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은 7월 1일까지만 해도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하며 건재를 과시하는 듯했다. 그러나 빚으로 쌓아 올린 그의 부동산 제국은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다. 1조9700억위안(약 382조원)이 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정부 구제만 기다리는 신세다. 쉬 회장은 한때 프로축구 구단을 함께 소유했던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과 함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공동부유(다 함께 잘살기)’ 화살을 맞고 떨어졌다.


가난했던 소년이 중국 최고 부자로

쉬 회장은 1958년 중국 중부 허난성의 시골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생후 8개월 때 어머니를 여의고, 식초를 만들어 팔던 할머니 손에 자랐다. 쉬 회장은 2018년 한 강연에서 “가난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안다. 어렸을 때 먹은 거라곤 고구마와 바오쯔(만두)가 전부였다”고 회고했다.

쉬 회장은 1982년 후베이성 우한과기대를 졸업한 후 10년간 제철소에서 일했다.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중국 첫 경제특구로 지정된 남부 광둥성 선전으로 이주해 무역 회사를 다니다가, 1996년 광저우에서 헝다를 창업했다. 주로 값이 싼 부동산을 사들여 아파트를 지어 팔았다.

쉬 회장은 2008년 터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푼 대규모 자금을 활용해 회사를 확장했다. 중국 280개 도시에서 1300개가 넘는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벌였다. 중국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거란 믿음이 팽배했다.

쉬 회장은 2009년 10월 헝다를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70% 이상 지분을 갖고 매년 막대한 배당금을 챙겼다. 2017년 미국 ‘포브스’가 집계한 ‘중국 부호 리스트’에선 순자산 가치 425억달러(약 51조원)로 1위에 올랐다. 알리바바의 마윈, 텐센트의 마화텅을 제치고 중국 최고 부자 타이틀을 쥔 것이다. 동시에 아시아 최고 부호로도 등극했다.

쉬 회장의 야심은 부동산 제왕 자리에서 그치지 않았다. 프로축구 구단, 전기차, 생수, 태양광 시장 등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헝다는 2010년 ‘광저우 에버그란데 FC’를 1억위안(약 194억원)에 사들였다. 지난해 4월 120억위안(약 2조3280억원)을 들여 광저우에 세계 최대 수준의 축구 전용 경기장 건설에도 나섰다. 그러나 헝다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정부 기관에 경기장을 매각했다. 헝다는 프로축구 구단 매각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쉬 회장은 2019년 3월 “3~5년 후 헝다가 세계 최대, 세계 최강 전기차 회사가 될 것”이라며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에 도전장을 냈다. 스웨덴 NEVS, 네덜란드 이트랙션, 영국 프로틴 등 중국 국내외 전기차 관련 회사 지분을 잇따라 사들였다.

지난해 8월엔 헝츠(恒馳) 브랜드를 붙인 전기차 6종을 공개했다. 올 초부터 양산을 시작해 2022년 연간 최대 10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도 헝츠 전기차는 단 한 대도 생산되지 않았다.

올해 6월 말, 헝다의 부채 총액은 1조9700억위안(약 382조원)을 넘어섰다. 2017년 대비 세 배 이상 늘었다. 총부채 중 달러화 채권이 192억달러(약 23조원)로, 공식 디폴트가 선언될 경우 달러화 채권 전체로 연쇄 디폴트가 일어날 수 있다.


2021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오토 상하이 2021’에 헝다 전기차 ‘헝츠1’이 전시돼 있다. 사진 김남희 특파원
2021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오토 상하이 2021’에 헝다 전기차 ‘헝츠1’이 전시돼 있다. 사진 김남희 특파원

“개인 자산 팔아 회사 빚 갚아라”

헝다 자금난으로 아파트 시공이 줄줄이 중단되자, 입주를 기다리던 아파트 구매자와 하청 업체들은 헝다 본사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집단 시위를 통제하는 중국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다.

사회 불안을 우려한 중국 정부는 쉬 회장에게 개인 자산을 팔아 회사 부채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쉬 회장은 11월 25일 헝다 주식 12억 주(지분 9.1%)를 매각해 26억8000만홍콩달러(약 4100억원)를 마련했다. 당시 지분 매각으로 쉬 회장의 헝다 지분율은 77%에서 67.9%로 낮아졌다. 또 홍콩 더피크 지역의 고급 주택 세 채를 담보로 대출받고, 개인 전용기와 예술품 일부도 처분했다.

중국 제일재경은 지난 11월 “쉬 회장이 7월부터 개인 자산 매각과 주식 담보 대출 등으로 70억위안(약 1조3580억원) 이상의 현금을 마련해 회사에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12월 6~9일엔 쉬 회장 보유 주식 중 약 2%에 해당하는 2억7800만 주가 강제 매각됐다. 쉬 회장이 대출 담보로 약속했던 주식이다. 쉬 회장의 헝다 지분율은 65.8%로 더 낮아졌다. 자산 매각 압박에 쉬 회장의 자산 가치는 폭락했다. 12월 15일 ‘포브스’ 집계 기준, 쉬 회장의 순자산 가치는 89억달러(약 10조6000억원)로 쪼그라들었다.

쉬 회장은 12월 3일 밤 광둥성 정부에 소환됐다. 헝다가 채무 상환을 못 할 수도 있다고 밝힌 직후다. 12월 6일 밤엔 쉬 회장을 포함한 헝다 측 경영진 2명과 국유 기업 등이 파견한 인원 5명으로 구성된 위험화해(해소)위원회가 출범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정부가 주도하는 부채 재조정(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중국 정부는 헝다 채무 문제는 개별 사안일 뿐이라며 직접적인 구제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개입 수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 위기 증폭을 차단하고 전체 경제로 위험이 퍼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plus point

사망설 휩싸였던 왕젠린 다롄완다 창업자

왕젠린 다롄완다 창업자. 사진 로이터연합
왕젠린 다롄완다 창업자. 사진 로이터연합

중국의 또 다른 부동산 재벌 다롄완다(大連萬達) 창업자 왕젠린(王健林·67) 회장은 지난 11월 사망설에 휩싸였다. 11월 14일 밤 중국 뉴스 플랫폼 터우탸오에 올라온 왕 회장 사망 글이 순식간에 온라인에 퍼진 것이다. 왕 회장 사망설은 오랜 경쟁자이자 업계 동료인 쉬자인 헝다 회장 자금난과 맞물려 큰 화제를 모았다. 완다 측은 바로 다음 날 사내 회의를 주재하는 왕 회장 사진을 공개하며 소문을 일축했다.

한때 중국 부호 1위였던 왕 회장은 최근엔 정부와 대중의 주목을 피하며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왕 회장은 전성기 때 외국 호텔, 부동산, 영화관, 영화 제작사, 프로축구 구단 등을 사들이며 완다의 부동산·엔터테인먼트 제국을 해외로 확장했다. 그러나 부와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자, 중국 정부에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중국 정부가 2016년 말 완다를 겨냥해 외화 유출을 이유로 해외 투자 통제 조치를 내놓자, 해외 자산 상당수를 매각했다. 당시 출국 금지설까지 돌며 회사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왕 회장은 2016년 순자산 가치 330억달러(약 39조원)로 ‘포브스’의 ‘중국 부호 리스트’ 1위 자리를 지켰으나, 올해는 33위(146억달러)로 밀려났다.

베이징=김남희 조선비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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