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박사, 현 한국유전자 치료학회 부회장, 현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학술이사, 전 국립암센터 특수암연구부 선임연구원 사진 최정석 기자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박사, 현 한국유전자 치료학회 부회장, 현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학술이사, 전 국립암센터 특수암연구부 선임연구원 사진 최정석 기자

지난 2017년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백혈병에 걸린 어린 환자들과 보호자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며 달랬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의 CAR-T(키메릭 항원 수용체-T세포) 치료제인 ‘킴리아’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와 출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킴리아는 악성 백혈병을 주사 한 대로 치료하는 ‘기적의 치료제’로 통한다.

CAR-T 치료제는 암세포 등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세포인 ‘T세포’를 환자 몸에서 꺼내 바이러스를 탑재해서 만든 약이다. 바이러스에 있는 ‘CAR 유전자’와 결합한 T세포는 탑재한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렇게 만든 CAR-T세포 숫자를 불려서 환자 몸에 다시 주입하는 식으로 병을 치료한다.

2017년 9월 킴리아가 처음 시장에 나왔지만, 강 교수는 자신이 돌보던 어린 백혈병 환자들을 킴리아로 치료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접어야 했다. 주사 한 대에 4억~5억원씩 하는 가격 때문이었다. 당시엔 비싼 가격 때문에 국내 허가는 물론 급여화가 될지마저 장담할 수 없었다. 강 교수는 “웬만한 아파트 가격이 5억원도 안 하던 때였는데, 아이를 살리려면 그만한 돈을 써야 한다는 말을 차마 부모에게 할 수가 없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 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던 강 교수는 지난 2018년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독일 생명공학 기업 ‘밀테니 바이오테크’가 CAR-T 치료제 자동화 생산 기기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강 교수는 “한국에서 CAR-T 치료제를 직접 만들지 않으면 답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독일로 건너간 강 교수는 밀테니 바이오테크 회장인 스테판 밀테니를 직접 만나 서울대병원에 기계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지에서 직접 기계 사용법을 배우기도 했다. 밀테니 측은 기계는 물론 CAR-T 치료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까지 공급하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온 강 교수는 3년이 넘는 연구 끝에 ‘한국형 CAR-T 치료제 개발 시스템’을 완성했다. 강 교수와 여러 연구진이 만든 이 시스템은 치료제 생산부터 각종 임상 절차까지 모든 과정을 표준화시켰다. CAR-T 치료제 개발과 생산 시설을 만들 때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맞추는 요령부터 동물실험(전임상시험), 임상시험 설계 방법 등이 모두 담긴 일종의 ‘설명서’를 만든 셈이다.

강 교수는 “이제 치료제 생산에 필요한 설비와 의지만 있으면, 대학병원 교수든 제약·바이오 기업이든 CAR-T 치료제 연구와 개발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국내 연구진은 물론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도 CAR-T 치료제 개발에 대한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많은 교수와 기업이 이 시스템을 활용해 글로벌 CAR-T 치료제 시장에서 한국이 하나의 ‘축’으로서 자리할 수 있기를 강 교수는 기대하고 있다. 강 교수 연구팀이 만든 국산 CAR-T 치료제는 이미 두 명의 소아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됐다. 첫 번째 환자는 치료가 끝나 건강을 회복했고, 두 번째 환자도 상태가 좋아져 퇴원을 기다리고 있다. 곧 세 번째 환자에게 투약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한다. 강 교수를 4월 19일 서울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병원 소아암외래진료센터에서 만났다.

‘한국형 CAR-T 치료제 개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달라.
“서울대병원에서 만든 공식 명칭은 ‘CAR-T 원스톱 개발 시스템’이다. CAR-T 치료제 개발을 위해선 기본적으로 환자 T세포, 그리고 몸 안에서 없애고자 하는 바이러스를 활용해 만든 유전자 운반체(바이러스 벡터) 등 여러 재료가 필요하다. 이러한 재료 품질을 분석하는 방법부터 시작해 여러 절차와 내용이 개발 시스템에 들어간다. GMP 등 각종 기준에 맞게 생산 설비를 꾸리는 방법, 전임상과 임상시험을 제대로 설계하는 방법도 넣었다. 쉽게 말해 재료 선별에서 치료제 생산, 정부 허가, 환자 투약까지 거쳐야 할 과정과 작업을 표준화해서 만든 설명서라고 보면 된다.”

이런 일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2017년 하반기에 CAR-T 치료제인 노바티스 ‘킴리아’가 미국에서 나올 거란 소식을 들었다. 당시 백혈병에 걸린 어린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킴리아 주사 한 대만 놓으면 상당한 확률로 이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기다리면 살릴 수 있으니 견뎌보자며 보호자들을 달랬다. 그런데 막상 킴리아가 미국에서 나왔을 땐 절망적이었다. 가격이 5억원으로 너무 높았다. 급여화는 둘째치고 국내에서 승인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알 수 없었다. 웬만한 집값이 5억원도 안 하던 때였다. 보호자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CAR-T 치료제를 국내에서 직접 만들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자체 생산한 CAR-T 치료제는 투약이 되고 있나.
“그렇다. 첫 투약은 2월 15일에 있었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였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암세포로 바뀌는 비정상적 백혈구가 짧은 기간에 대량으로 생겨나 다른 장기로 침투하며 정상 세포를 죽이는 병이다. 골수이식 등 방법을 써봤으나 두 번이나 재발한 최고위험군 환자였다. 기존 치료 방법으로는 회복이 어려운 상태였다. 킴리아를 쓰려면 환자 T세포를 추출해 얼린 뒤, 해외로 보내서 약을 만들고, 다시 얼려서 한국에 가져와야 한다. 이러면 시간이 3주 넘게 걸린다. 우리는 운송 과정 없이 병원에서 곧바로 CAR-T 치료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12일 만에 약이 나왔다. 2월 28일에 주사를 놨고, 보름 정도 후인 3월 17일 건강하게 퇴원했다. 이후 추적 골수검사를 했는데 백혈병 세포가 하나도 없었다. 현재 두 번째 환자도 퇴원 직전이고 세 번째 환자가 투약을 기다리고 있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CAR-T 개발 시스템을 정립한 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 CAR-T 국내 개발, 생산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췄다는 게 중요하다. 이제 국내 대학병원 연구자들과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CAR-T 시장에 뛰어들기만 하면 된다. CAR-T를 만들 수 있는 설비와 의지만 있다면 충분하다. 킴리아를 해외에서 사 오는 것보다 연구 등 목적으로 국내에서 만들어 쓰는 게 훨씬 싸다. 대학병원 연구 사례가 늘면 기업이 기술이전을 받으려고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다양한 제품이 나오면 시장이 커지고 경쟁이 벌어지면서 가격이 내려가고 치료제 성능은 꾸준히 올라갈 수 있다.”

서울대병원의 CAR-T 개발 시스템으로 어떤 변화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나.
“국내 CAR-T 연구 기반과 산업 기반이 커져서 대한민국이 글로벌 CAR-T 시장의 한 축이 되길 바라고 있다. 환자 몸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기존 항암치료와 달리, 몸에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만 골라서 퇴치하는 CAR-T 치료제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치료약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수많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이 이 시장을 노릴 거다. 한국이 그 시장의 핵심 선수가 되길 바란다. 그게 환자와 산업을 모두 살리는 길이다.”

최정석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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