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 큐텐 대표. 사진 큐텐
구영배 큐텐 대표. 사진 큐텐

해외 역직구 플랫폼 큐텐(Qoo10)이 작년 이베이코리아(현 G마켓)에 이어 올해 티몬 인수합병(M&A)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를 이끄는 구영배 대표는 2000년대 G마켓을 국내 1위 이커머스 회사로 만든 이른바 ‘G마켓 신화’의 장본인이다.

2010년 설립한 큐텐을 키우는 데 주력했던 구 대표는 작년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뛰어든 데 이어 올해는 티몬 경영권 인수를 위해 대주주와 협상 중이다. 

그가 거래금액이 수천억원에서 조(兆) 단위에 이르는 대형 M&A에 잇따라 뛰어든 배경은 미국 이베이와 맺었던 계약상 경업(競業·영업상 경쟁) 금지 족쇄가 2020년 말 풀렸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윤석 티몬 대표. 조선일보 DB
장윤석 티몬 대표. 사진 조선일보 DB

티몬 대주주, 큐텐과 ‘경영권 매각’ 협상 중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티몬은 현재 큐텐과 주요 주주 지분 및 경영권 매각을 놓고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인수 대상은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특수목적법인(SPC) 등을 통해 보유한 지분 전량이다. 

장윤석 티몬 대표도 7월 7일 서울 성동구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투자든 매각이든) 다 논의하고 있다”며 “큐텐만이 아니라 많은 SI(전략적 투자자)와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해 협상 사실을 인정했다. 

큐텐이 제안한 티몬의 기업 가치는 2000억원대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KKR과 앵커가 경영권을 인수했을 때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당시 KKR과 앵커는 티몬 지분 59%를 약 3800억원에 인수했는데, 기업 가치는 8600억원으로 책정됐다.

유통업계에선 티몬의 기업 가치는 지난 2019년 롯데그룹과 M&A 논의가 있던 당시가 고점이었다고 평가한다. 거론되던 기업 가치는 1조원대였다. 당시 가격을 둘러싸고 롯데그룹과 티몬 대주주 간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M&A는 무산됐다.

이후 이커머스 간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거래가 급성장하자 적자를 감수하고 몸집을 키우는 쿠팡식 모델이 시장을 장악했다. 쿠팡 매출은 2016년 1조9000억원에서 작년 22조원으로 급증했다. 이 기간 티몬 매출은 2860억원에서 1290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구영배 대표, 이베이와 맺은 ‘경업 금지’ 족쇄 풀려

해외 직구 중심의 이커머스 큐텐이 티몬 인수에 나선 것은 창업주 구영배 대표가 ‘다시 이커머스 판을 흔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구 대표는 그래디언트(옛 인터파크) 창립 멤버로 2000년 사내 벤처로 설립된 구스닥(현 G마켓)을 개인 사업자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오픈마켓으로 변신시켜 거래액 1조원을 넘기고 당시 이커머스 1위였던 옥션을 제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옥션 모회사인 미국 이베이는 G마켓과의 경쟁을 포기하고 2009년 회사를 인수했다. 그로부터 1년 뒤 구 대표는 이베이와 51 대 49 비율로 자본금을 대 합작법인을 만든다. 이 회사가 큐텐이다. 애초에 국내 시장이 아니라, 미국 이베이가 번번이 고배를 마신 동남아 이커머스 시장을 제패하겠다는 포부로 설립됐으며 한국 제품을 동남아에 판매하는 데 주력했다.

IB 업계에 따르면 계약 당시 구 대표는 이베이와 “한국 시장에서 이커머스로 경쟁하지 않는다(경업 금지)”는 조건에 합의했으며 기간은 최대 10년으로 알려졌다.

이 족쇄가 2020년 말 풀리면서 G마켓 성공 신화를 쓴 구 대표가 한국 이커머스 판을 다시 흔들겠다는 의지로 굵직한 M&A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큐텐은 작년 미국 이베이가 이베이코리아 매각을 추진하자 인수를 검토했고 예비입찰에 참여했으나 본입찰에는 빠졌다. 이마트와 롯데쇼핑의 경쟁 구도로 매각가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구 대표의 큐텐 지분율이 설립 당시보다 높아진 것도 미국 이베이를 의식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경영에 나설 수 있게 된 배경이다.

구 대표 지분율은 설립 초기 51%였으나 2018년 큐텐 일본 사업부를 미국 이베이가 지분 교환 방식으로 인수하면서 구 대표 지분율이 70% 이상으로 올라간 것으로 전해졌다.

구 대표는 지난 2009년 미국 이베이에 G마켓 지분을 매각하며 상당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지분율은 5%대로 주당 인수가격 24달러를 고려하면 지분 가치는 800억~900억원대에 달했다. 그는 주로 회사 본사가 위치한 싱가포르에 머물며 사업 구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허탈한 티몬 직원들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는데”

티몬 직원들은 한때 쿠팡과 함께 소셜커머스 시대를 이끌었던 회사가 헐값에 매각 협상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주주가 지난 5년간 최고경영자(CEO)를 4번이나 갈아치우면서 회사가 방향성을 잃고 표류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티몬은 2015~2017년 ‘업계 최초 서비스’를 연달아 내놓던 혁신적인 회사로 평가받았다. 국내 이커머스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이커머스 생태계는 티몬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주요 이커머스 회사 임원 중 티몬 재직 경험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2015년 출시한 생필품 장보기 서비스 슈퍼마트는 1년 만에 연 매출 3000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에는 부킹닷컴과 손잡고 실시간 호텔 예약 서비스를 선보였고 2017년에는 현재 업계 전반으로 확산한 라이브 커머스(모바일 실시간 판매 방송)의 초기 버전인 티비온을 출시했다.

그러나 2018년 매출이 5000억원에 육박한 시점에 티몬 대주주가 돌연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선회하면서 이 사업들을 축소하거나 철수하기 시작했다.

기폭제가 된 건 쿠팡이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펀드 비전펀드로부터 2조원대 추가 투자를 유치한 일이다. 대규모 투자를 받은 쿠팡이 현재의 로켓배송을 도입하며 외형을 키우는 전략을 본격화하자 티몬 대주주 측이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은 2019년부터 슈퍼마트를 축소하는 등 체질 개선 작업에 나섰다. 덕분에 영업적자가 2018년 말 870억원에서 2019년 말 770억원으로 줄었지만 이때부터 이커머스 시장에서 존재감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매출은 2019년 1800억원대에서 작년 1290억원으로 역성장했다.

2021년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티몬 대주주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티몬은 신임 대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커머스 시장에서 입지가 약해졌다. 대주주는 기업 가치를 키울 만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작년으로 예정했던 상장도 연기했다.

작년 장윤석 대표가 취임했지만, 위기의 티몬을 회생시킬 만한 적임자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 대표는 1978년생으로 이커머스 첫 개발자 출신 CEO다. 2013년 만든 모바일 콘텐츠 회사 피키캐스트로 유명해졌으나 이 회사 대표로 재직할 때 직원 임금, 퇴직금을 체불한 혐의로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는 티몬 취임 이후 직급을 폐지하고 근무 장소에 제약을 두지 않는 스마트&리모트 워크를 도입하는 등 조직 문화 혁신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사업 측면에선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상태다. 티몬의 한 직원은 “지금 이커머스는 2015~2016년보다 치열한 전쟁터인데 어떤 사업모델로 티몬을 성장시킬 것인지 그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현승·노자운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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