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업 노틸러스 대표 한동대 산업디자인 복수전공, KAIST 문화기술대학원석사, 전 네이버 서비스 기획, 전 레진엔터테인먼트창립 멤버·사업 총괄 이사, 전 레진엔터테인먼트 대표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이성업 노틸러스 대표 한동대 산업디자인 복수전공, KAIST 문화기술대학원석사, 전 네이버 서비스 기획, 전 레진엔터테인먼트창립 멤버·사업 총괄 이사, 전 레진엔터테인먼트 대표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성인만 볼 수 있는 이른바 ‘19금’ 웹툰으로 유명한 레진엔터테인먼트(레진코믹스)의 공동 창업자인 이성업 대표는 2018년 2대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적자였던 회사를 2020년에 키다리스튜디오에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회사 매각 1년 뒤인 작년 7월, 이 대표는 ‘아동용 교육 콘텐츠’로 사업을 해보겠다며 ‘노틸러스’라는 회사를 차렸다.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김창원 타파스미디어 대표, 김민철 야나두 대표,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 등 거물급 인사들이 잇따라 투자했다.

이 대표는 인터뷰에서 “레진이 힘들었던 시절에 대표를 맡아 엑시트(매각)까지 이뤄냈다는 점을 평가받은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할 사업이고 성공할 사업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던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 모델을 구체화해나가면서 카카오벤처스, 본엔젤스 등 투자자로부터 34억5000만원의 자금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지식 교양 웹툰 플랫폼 ‘이만배(이걸 만화로 배워?)’를 정식으로 선보였다. 과학·역사·경제 등 카테고리에 70개 작품이 있고, 연내에 10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곤충의 진화’ ‘공룡의 생태’로 유명한 갈로아(김도윤) 작가부터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의 압듈라(정소영) 작가, ‘십자군 이야기’의 김태권 작가, 다음(현 카카오) 대표 일상툰 ‘유부녀의 탄생’의 김환타(김미경) 작가 등 쟁쟁한 지식 교양 부문 작가진이 노틸러스와 계약하고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엘리트·입시 중심의 교육을 탈피해 웹툰이라는 친근한 방식으로 지식을 전달하겠다는 포부다.

주요 대상은 애초 생각했던 아동이 아니라 자기 계발 욕구가 가장 강한 20대로 잡았다. 그는 “노틸러스는 웹툰 회사가 아니라 에듀테크(교육+IT) 회사”라며 “20대의 지적 욕구를 재미있게 해소해주는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사진 노틸러스
사진 노틸러스

레진은 성인 웹툰으로 유명한데, 지식 교양 웹툰으로 돌아왔다.
“레진코믹스를 창업한 2013년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에는 성인 작품이 많지 않았다. 내가 자부심을 느꼈던 건 작품성은 있는데 대규모 트래픽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작품이 다수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다양한 주제의 웹툰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노틸러스의 ‘이만배’와도 상당히 닮았다.”

어떻게 지식 교양을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나.
“레진 이전에 라인에서 근무했었는데 당시 어린이용 콘텐츠 플랫폼 ‘라인 키즈’를 론칭해보자는 회사 내부 방침이 있어 리서치한 적이 있다.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에 있는 아동용 콘텐츠 서비스를 몇백 개 써봤는데 한국만 유독 특이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고 네트워크 환경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테면 ‘뽀로로 시즌1’처럼 애플리케이션(앱) 자체에 동영상이 다 들어있는 동영상 재생 앱이 인기가 많았다. 두 번째는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캐릭터가 뽀로로, 타요, 코코몽, 핑크퐁 등 10개 정도로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시장성이 있는데 너무 획일화돼 있었던 거다.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진을 키다리스튜디오에 매각한 뒤 미래 계획을 세웠을 때 아동용 교육 콘텐츠가 떠오른 것은 자연스러웠다. 10년 만에 시장을 다시 보니 놀랍게도 똑같았다. 아동용 영상이 유튜브 키즈로 넘어간 게 변화라면 변화였다. 반면 일본, 미국은 부모가 목소리를 녹음하는 식의 개입이나 아동의 인터랙션(상호작용)을 유도하는 앱이 많았다. 이런 생각으로 사업을 만들어 나가면서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와 일주일에 한 번씩 대화를 나눴다. 류 대표가 어느 날 아동을 타깃으로 하면 고객층이 줄어들기 때문에 차라리 20대를 대상으로, 그간 해 온 웹툰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지식 교양 웹툰’으로의 사업화를 제안했다. 처음엔 애들이나 볼 것 같은 아이템을 어른용으로 만들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식 교양 만화 인기작으로 꼽히는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김도윤 작가에게 가서 ‘당신은 누굴 대상으로 이런 콘텐츠를 만드느냐’라고 물었더니 ‘무조건 대학생이 타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학생들이 지식 교양, 자기 계발 콘텐츠에 대한 욕구가 가장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정 콘텐츠가 인기 있을 경우 소셜미디어(SNS)에 활발히 공유한다. 자연스럽게 30~40대 그리고 이들의 자녀인 10대로 소비자가 확산할 수 있다. ‘만화로 배우는 블록체인’은 1년 내내 베스트셀러다. 어른들이 열심히 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책을 봤지만, 이 만화만큼 좋은 입문서는 없다.”

너도나도 웹툰에 뛰어들고 있는데 ‘레드오션’ 아닌가.
“시장이 성숙했다고 봐야 한다. 맨 처음에 사람들은 모든 게 다 있는 초거대형 종합 플랫폼(시장)인 백화점을 찾는다. 시간이 지나고 시장이 성숙하면 (소규모 매장에서나 맛볼 수 있는) 스페셜티 시장이 생긴다. 전문성 있는 콘텐츠, 상품, 사용 경험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20대는 이미 유튜브로 지식 교양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데.
“콘텐츠를 지식으로 습득하는 데 10분이란 시간은 부족하다. 과학적인 얘기나 원리까지 설명하기 어렵다.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한다. 만화는 내가 모든 것을 읽으면서 컨트롤할 수 있다. 직접 넘기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지식 콘텐츠에 적합하다. 이런 콘텐츠의 경우 유튜브에서 관심을 유발한 뒤, 서적으로 만들었을 때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 유튜브와 협력하려고 한다.”

이만배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우린 웹툰 회사가 아니라 교육 회사다. 웹툰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훌륭한 미디어다. 다음 단계는 여기에 ‘테크’를 얹는 것이다. 야나두 김민철 대표에게 ‘교육 회사에 가장 중요한 지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수율’이라고 하더라. 마케팅이나 개인 필요에 따라 콘텐츠 판매는 쉽게 이뤄지지만, 이를 끝까지 보고 습득하도록 하는 게 플랫폼의 역할이다. 야나두 고객 데이터에 따르면, 첫 번째 강의만 듣고 끝내는 경우가 60%, 사놓고 아예 듣지도 않는 경우가 15%다. 고객 75%는 콘텐츠의 효용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고객이 끝까지 콘텐츠를 완독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할 수 있는 기술을 현재 준비 중이다. 이를 통해 보편적인 지식을 괴롭거나 딱딱하지 않게, 부드럽고 재미있게 제공하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