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대한수학회장 서울대 수학 학·석사, 미시간 주립대 수학 박사 사진 박종일
박종일 대한수학회장 서울대 수학 학·석사, 미시간 주립대 수학 박사 사진 박종일

2022년 한국 수학계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을 회원국 최고 등급인 5등급으로 올렸고,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 겸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았다. 한국 수학자들은 이론 연구를 넘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확산과 기후 변화를 수학적으로 예측하는 등, 대외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올 초 제27대 대한수학회장에 취임한 박종일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수학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산업의 난제를 해결할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라면서도 “2022년 한국 수학이 세계적으로 큰 결실을 거뒀지만, 이대로 가면 미래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인 박 회장은 위상수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낸 세계적인 수학자다. 위상수학은 도형과 공간의 성질을 다루는 학문이다. 박 회장은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이 더해진 4차원 공간을 연구해 ‘인벤시오네 마테마티카(Inventiones Mathematicae)’ 같은 세계적인 수학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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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수학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나.
“지방 대학에서 수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취학 연령 인구가 줄었기 때문이지만, 수학과가 인기 없고 졸업해도 취업 문이 좁다는 인식도 한몫하는 것 같다. 지방 대학 수학과의 경쟁력을 키워 꾸준히 인재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도권 주요 대학에는 인재가 계속 들어오지 않나.
“기본적으로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많아야 산업계나 학계에 인재를 꾸준히 공급할 수 있다. 지방 대학의 수학과가 사라지면 인재를 키워낼 기회도 같이 줄어든다. 수도권 대학이나 카이스트, 포항공대에서 키워낼 수 있는 인재 수는 한계가 있다. 지방 대학 수학과 폐지는 지금 막 박사학위를 받은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수도권 주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더라도, 교육과 연구를 이어 갈 교수 자리가 줄기 때문이다.”

수학과 진학을 유도하려면 취업이 잘돼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다양한 산업 난제를 수학으로 해결하는 ‘산업수학’이 활성화할 것이다. 빅데이터나 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수학이다. 이 분야는 학부 수준의 수학을 제대로 공부해 두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수학과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력을 키워낼 수 있는 중요한 인큐베이터(incubator·보육기)라는 뜻이다.”

수학과의 경쟁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나.
“대한수학회에서 4차 산업혁명이나 의료, 기후 등과 관련된 산업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만들어 대학에 제공하려 한다. 산업수학 분야 인재들이 사회로 나가 성과를 내면, 수학이 생각보다 널리 쓰인다는 인식이 생겨 이공계 기피도 해소될 수 있을 거라 본다.”

그렇다고 수학과에서 산업수학만 가르칠 수는 없지 않나.
“응용수학과 이론수학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 1~2학년은 꼭 알아야 하는 기초수학을 배우고, 3~4학년은 이론 또는 응용수학 중 한쪽을 선택해 깊게 배우도록 할 예정이다.”

산업계에서 수학에 대한 수요가 많아 연구 지원도 활발할 것 같다.
“산업 난제를 수학적으로 해결하는 분야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그만큼 지원도 늘어 성과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수학 전체에 대한 연구 지원은 아직 부족하다. 한국연구재단은 기초과학 연구 예산을 수학, 물리, 화학, 생명과학 등에 나눠준다. 다른 분야는 한국연구재단 외에도 다양한 기관에서 지원받을 수 있지만, 수학은 한국연구재단밖에 없다. 기초과학연구단(IBS)도 수학 분야 연구비는 5%도 안 될 것이다.”

허준이 교수는 “미국 클레이재단으로부터 5년 동안 지원받은 게 연구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클레이재단을 모델로 해 청년 수학자를 지원하는 ‘허준이 연구소’ ‘허준이 펠로십(Fellowship)’을 만든다는 소식이 있었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박사후연구원을 지원하는 중장기 프로그램이 생겨 기쁘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으나, 고등과학원 산하에 있던 연구 센터를 확장해서 ‘허준이 연구소’를 만든다고 들었다. 그러나 한국 수학계의 전체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조금 아쉽다.”

대한수학회 차원에서 연구를 지원할 계획이 있나.
“허준이 펠로십을 시작으로, 관련 부처와 협의해 학문 후속 세대인 박사후연구원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고 싶다. 매년 배출되는 수학과 출신 박사는 100명 이내인데, 연구소나 산업체에 자리 잡는 인원이 어림잡아 50명 정도다.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박사는 많지만, 지원 제도가 없어 시간제 강사나 학원 강사 등 다른 진로를 선택한다. 이렇게 박사학위를 받은 우수한 연구 인력을 잃는 건 국가적으로도 굉장한 손해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나 고등과학원, IBS로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 연구기관에는 연구 분야와 인원이 제한돼 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은 산업수학 중심이라 이론수학 전공의 박사가 갈 수 없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 50명 이상이 3년에서 5년까지는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독립적인 정부 출연 연구기관 성격의 ‘수학연구소’다. 예산은 IBS 규모가 큰 연구단 하나에서 쓰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야 제2, 제3의 허준이가 계속 나올 것이다.”

초·중·고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수학 성취도가 크게 떨어져 수학 교육을 강화하자는 의견이 많아졌다. 교과 과정도 늘었다.
“수학 교육 강화에 동의한다. 그동안 수학이 필수적인 빅데이터, AI 분야 인재를 키우자고 하면서 꼭 필요한 수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교과 과정이 늘면서 학생들은 어렵다고 하고 교사들은 가르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교육은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다. 과정이 즐겁지 않아서, 어려워서 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 도형이나 함수, 방정식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계단식으로 배운다. 하지만 행렬은 고교 수학에 갑자기 등장한다. 그러니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행렬은 AI에 필수적인 개념이다. 어렵다고 해서 빼는 건 안 된다.”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를 느낄 방법은 없나.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멈춘 프로그램이 많다. 네이버와 함께 수학 영상물을 제작하는 행사나 대중 강연, 멘토링 등이다. 수도권보다는 수학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지역 위주로 수학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수학의 재미를 찾는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수학이라는 학문은 입시 수학처럼 달리기하듯 주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게 아니다. 수학의 본질은 깊게 논리적으로 사고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어렵겠지만,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 수학 문제 하나를 두고, 오래 고민하고 풀어보며 진짜 수학의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

홍아름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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