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 연세대 경제학 학사·행정학 석사,전 삼성자산운용 운용총괄 부사장 사진 한국투자신탁운용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 연세대 경제학 학사·행정학 석사,전 삼성자산운용 운용총괄 부사장 사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위기를 피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주가 그래프를 쭉 그려보면 중간중간 움푹 파인 구간이 있다. 주가가 크게 빠졌다가 반등한 구간인데, 주가가 내려가기 전에 미리 팔고 투자 수익을 낸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애초에 적당한 종목에 분산해 투자하고 파인 구간에서 일부를 버리더라도 남은 것들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최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과거나 지금이나 (변동성이 높은 시장에서) 개인이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식적이고, 교과서적인 방법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에 처음 상장지수펀드(ETF)를 들여와 ‘ETF 아버지’로 불리는 배 대표는 지난해 초 삼성자산운용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국내 증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금리 인상 등 불확실성에 낙폭을 키웠다. 연초까지만 해도 3000선에 살짝 못 미쳤던 코스피 지수는 연말에 가까워지면서 2200대로 주저앉았다. 당분간 증시가 변동성을 키울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면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배 대표는 “많이 벌었어도 그만큼 다시 까먹었다면 쳇바퀴 돈 것과 다름없다”며 “사실 해법은 이미 있는데, 다들 엉뚱한 비법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지수가 많이 빠져서 2200이지만, 코로나19 직후에 개인들이 주식 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2000을 밑돌았다”며 “그때부터 시장에 꾸준히 투자했으면 수많은 변동성을 이겨내고 최소한 수익은 보장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투자 원칙은 ‘장기·분산·저비용·적립식 투자’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내진 못해도 개인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접근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섹시하진 않지만 강하다(It’s not sexy, but strong)’는 표현을 거듭 강조했다. 시장의 이목을 끄는 자극적인 조언이 아니어도 결국에는 시장을 이길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게 배 대표의 소신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주식 시장의 난이도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인플레이션이 주식 시장의 난도를 높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비가 억제되고, 생산과 매출이 줄어들면 결국 기업도 비용을 줄이는 등 방어적인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면 증시도 다시 우상향할까.
“금리 인상 추세는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이 금방 좋아진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시장은 항상 선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새해는 2022년보다는 나을 것으로 본다.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를) 이미 시장이 많이 반영했다.”

금리 인상, 경기 침체 우려가 맞물리며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과거에도 몇 차례 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과거 위기 때는 없던 인플레이션이라는 변수가 생겼기 때문에 동일선상에 두고 유사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낙폭이 지금보다 훨씬 컸지만, 직후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증시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각국 정부가 푼 과도한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이라는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결국 유동성 공급이 해법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집계한 고점 대비 저점 하락률로만 보면 지난해는 코로나19 초기 때와 그나마 가장 유사했다. 코스피 지수 기준 등락률은 국제통화기구(IMF) 사태 -65.3%, 닷컴 버블 -54.6%, 글로벌 금융위기 -57.2%, 코로나19 -36.8%이고 지난해 35.6% 하락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S&P)500 지수는 IMF -21.0%, 닷컴버블 -48.2%, 글로벌 금융위기 -57.7%, 코로나19 -35.4%, 지난해 -27.5%로 집계됐다.

이번 위기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의미인가.
“극복할 순 있지만 오래 걸릴 것이다. 이번에도 결국 돈을 풀어 해결해야 한다. 다만 돈 때문에 비롯된 사태여서 돈을 줄여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됐다. 결국 시간이 지나 유동성이 줄어들고, 인플레이션이 정상화돼야 한다. 지금 긴축을 하는 이유인데, 막상 돈을 풀지 않으니까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위축되면 인플레이션은 저절로 꺾이기 마련이다. 그때 비로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돈을 쓸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심한 시기에 가장 적합한 투자법은.
“늘 이야기하는 투자 원칙인 장기 투자, 분산 투자, 저비용 투자, 적립식 투자다. 자극적인 투자법은 위험 부담이 그만큼 크다. 성공하거나, 망해버리거나 둘 중 하나다. 많이 벌었다고 해도 그만큼 다시 까먹어버리면 제자리에서 쳇바퀴 도는 것과 다름없다.”

개인 투자자가 반복되는 위기를 이기는 방법은 없나.
“IMF 사태 때부터 주가 그래프를 그려보면 중간중간 움푹 파인 구간이 있다. 이렇게 움푹 파이기 전에 미리 팔고,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애초에 다양한 종목에 분산 투자하면 파인 구간에서 일부를 버려도 남은 것들로 살아남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돈을 풀기 때문에 실제 성장하지 않더라도 주가는 올라간다. 코스피 지수가 많이 빠져서 2200이지만 코로나19 직후 개인들이 주식 투자를 시작했을 때 주가는 2000을 밑돌았다. 그때부터 꾸준히 주식에 투자했으면 변동성을 이겨내고 수익을 얻었을 것이다.”

실제로 분산 투자나 적립식 투자만 하는 개인 비중은 어느 정도 될까.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가입자의 은퇴 시기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운용하는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이 커지는 걸 보면 분산·적립식 투자 수요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최근 TDF 시장 규모는 10조원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분산 투자가 나이를 고려하지 않고 자산을 배분해서 투자하는 것이라면 TDF는 여기에 나이라는 기준을 포함했다. TDF 투자가 늘었다는 건 많은 사람이 분산 투자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분산 투자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과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는 무엇인가.
“우선 최소한의 원칙을 정해야 한다. 자산 종류, 투자 국가 등 대략적인 기준이 생겼다면 그 안에서 비중을 조절하고, 어느 한쪽을 ‘제로(0)’로 만들지 않는 게 핵심이다. 당장 가격이 많이 내렸다고 해서 아예 가격이 올라가는 쪽으로 자산을 옮기기보다 하락하는 쪽 비중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식이 돼야 한다. 5 대 5에서 10 대 0이 아니라 6 대 4, 7 대 3으로 조정했다가 다시 5 대 5로 맞추는 식이다. 다양한 국가 주식에 분산 투자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만, 현실적으로 국내와 미국, 중국 정도에 투자하면 된다.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지만 미국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게 맞는다고 본다.”

모든 자산을 분산 투자하는 게 좋을까.
“투자 자산의 100%를 전부 분산 투자하라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100만원을 갖고 투자한다면 70~80% 정도만 분산 투자를 하고, 20~30%는 내가 하고 싶은 테마, 예를 들어 변동성이 큰 코인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큰 수익을 얻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하면서 투자의 재미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분산 투자 나머지 부분은 일종의 ‘펀(fun) 투자’ 개념으로 활용하면 된다. 다만 요즘에는 펀에 전부를 걸어버리는 게 문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증시에 입문한 2030 투자자가 많다. 조언을 한다면.
“20년, 30년 후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부(富)를 쌓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가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고, 둘째가 투자다. 본업은 늘 첫 번째가 돼야 한다. 투자는 월급의 일정 부분, 여윳돈으로 하는 것이지, 30년간 해야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안 된다. 

가장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투자자들을 위한 가장 교과서적인 해법을 유념해야 한다. 그게 앞서 말한 장기 투자, 분산 투자, 저비용 투자, 적립식 투자다. 길게 보고 적립식으로 꾸준히 투자한다면 장이 빠질 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빠지면 오히려 싸게 산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존에 손실이 난 부분을 당장 팔 게 아니고, 나중에 장이 올라갔을 때 결국 수익이 많아지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 10년, 20년 후의 지수가 중요하지 지금 당장 수치가 올라가거나, 떨어지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