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 방문학자 미국 그리넬대, 하버드대 석사, 중국 칭화대 박사, 현 조지 H.W. 부시 미·중관계재단 선임연구위원, 전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텍펠로, 전 세종연구소중국연구센터장 / 사진 이성현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 방문학자
미국 그리넬대, 하버드대 석사, 중국 칭화대 박사, 현 조지 H.W. 부시 미·중관계재단 선임연구위원, 전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텍펠로, 전 세종연구소중국연구센터장 / 사진 이성현

11월 16일(한국시각) 전 세계 언론의 시선이 일제히 두 도시에 쏠렸다.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모니터 한 대와 13시간의 시차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10개월 만에 이뤄진 첫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두 강대국 정상의 설전은 194분 동안 이어졌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대만과 인권 문제에 있어서도 팽팽히 맞섰으나 글로벌 금융 시장의 이목은 그보다 무역·통상 이슈에 주목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국가 주도 경제 체제를 비판했고, 시 주석은 “미국이 국가 안보를 앞세워 중국 기업을 탄압해선 안 된다”며 화웨이 등 중국 회사에 대한 제재를 철회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두 정상의 ‘기 싸움’은 2018년의 무역 전쟁을 상기시켰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했을 당시, 미국과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우리 기업의 피해 규모는 약 3조원으로 추산된다. 두 나라가 패권 경쟁을 벌일 때마다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한국의 숙명과도 같다.

현재 미국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에서 방문학자로 있는 이성현 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미국과 중국에 정통한 외교 전문가다. 얼마 전 보스턴에 거주 중인 이 전 센터장을 화상 인터뷰했다. 이 전 센터장은 미국과 중국이 전술적인 이유 때문에 무역 분쟁을 일시적으로 봉합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이 같은 일시적 갈등 봉합에 휩쓸리지 말고 일관성 있는 실리 외교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부지리로 반사 이익을 얻겠다는 안이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이 대(對)중국 무역 정책과 관련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연설을 들어보면 겉으로는 논조가 굉장히 터프하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국이 미국에 약속했던 2000억달러(약 243조원) 규모의 미국산 상품 구매를 빨리 이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쪽은 미국이다. 중국은 작년부터 이른바 ‘쌍순환(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해 국내 시장과 국제 시장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정책을 표방하며 실제로는 내수 경제를 진작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수출 길이 좁아질 때를 대비해 미리 국내 시장 규모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런 기조를 이어나가자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기업들이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들이 그동안 애국적 차원에서 인내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지경까지 온 것이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 기업을 위해서라도 미·중 간 관세를 낮출 필요가 커졌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먼저 제안한 쪽도 미국이었다.”

미국 현지에서 체감하는 경제 상황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이 5%가 넘는 고물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당국에서는 향후 반년 안에 물가 상승률을 3%대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많은 학자가 이에 대해 비관적 입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국면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풀었기 때문에 고물가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터를 떠났던 500만 명의 미국인이 직장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보조금이 1600~1800달러(약 194만~218만원)씩 들어오는데, 누가 굳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 직장에 나가겠는가. 시급 20달러(약 2만4000원) 이상을 주겠다고 해도 취직을 하지 않으려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의 시대가 미국 노동 인구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일터에 돌아가지 않는 미국인으로 인해 향후 몇 년 뒤 상당한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은.
“최근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의 글렌 영킨 후보가 민주당 테리 매콜리프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버지니아 유권자의 3분의 1이 표심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요소로 ‘경제’를 꼽았다. 경제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시급한 과제다. 연말을 앞두고 경제를 살려 민심을 다독이지 못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 수준에서 더 떨어질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새 정부에 대한 미국인의 지지율은 60%에 달했지만, 현재는 40%대까지 낮아졌다. 새 행정부와 국민 사이의 ‘허니문’이 보통 1년은 지속하는데, 반년 만에 지지율이 폭락한 것이다. 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경제 상황을 조금이라도 회복해야만 한다.”

바이든 정부가 경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을 더 압박하게 될까.
“바이든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권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전술적으로 중국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화해’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양국 간 갈등이 봉합되더라도 그것은 전술적 협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중 양국이 티격태격하다가도 결국 화해할 것이라고 내다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중 양국의 강대강(强對强) 국면이 앞으로 30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점진적으로 악화하다가 우열이 확실히 가려지면 갈등이 끝나게 될 것이다.”

미·중 갈등이 지속하면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두 나라 사이에서 어부지리로 이익을 얻겠다는 안이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같은 ‘반사이익’을 취하기는 어렵다. 대신 강대국의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나라의 지분을 확보하고 나서, ‘우리가 너희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테니 너희도 대북 문제 등에 협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2강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설 자리가 왜 작아지고 있나.
“미·중 양국의 갈등이 심화하거나 완화할 때마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국은 서로 견제의 끈을 놓지 않는 가운데 필요할 때만 전략적으로 협력해 왔는데, 그때마다 우리나라는 이를 무역 전쟁의 종료로 받아들여 낙관론에 치우치곤 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비일관적인 외교 정책이다. 현 정부는 그간 친중국적 기조를 유지해 왔는데, 올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미국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한 나라의 외교적 저울추가 한 달 반 만에 이렇게 큰 폭으로 회전하는 것은 국제 정치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러면 미·중 양국에 우리나라는 어떤 존재인가.
“2015년 당시 외교부 장관이 ‘미·중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며 이를 ‘축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6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볼 때, 우리나라는 그때까지만 해도 미·중 양국이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강대국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진 상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중간에서 어부지리식 이익을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궁극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기술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 삼성SDS 같은 회사들이 국가 전략적 측면에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첨단기술력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외교 관계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도 강해진다. 한반도 안에서 우리끼리 자생력을 키워서 강대국들 틈에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철학은 일리가 있지만, 우리는 지금 현실적인 국제 관계 안에서 살고 있지 않나.”

노자운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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