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서울 역삼동 실내 암벽장 ‘클라이밍 파크’. 직장인 정다냐(28)씨가 암벽을 등반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6월 30일 서울 역삼동 실내 암벽장 ‘클라이밍 파크’. 직장인 정다냐(28)씨가 암벽을 등반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6월 30일 오후 7시 40분. 퇴근하는 직장인이 한데 섞인 서울 역삼동 신논현역 5번 출구 앞.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을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3층으로 가는 길.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20~30대 여성 네 명과 남성 한 명의 목적지가 모두 같은 곳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띵’ 열리자 펼쳐진 광경은 330㎡(약 100평) 규모의 실내 암벽장이었다.

직장인의 ‘스포츠 클라이밍 열풍’을 확인하고자 실내 암벽장 ‘클라이밍 파크’를 찾았다. 이날 실내 암벽장 중앙에는 50여 명의 사람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었다. 사람은 중앙에만 있지 않았다. 삼면을 빙 두른 암벽에도 2~3m 간격을 두고 사람들이 닌자처럼 붙어있었다. 곤두세운 손끝과 발끝은 크고 작은 인공 바위에 의존한 채였다.

스포츠 클라이밍(이하 클라이밍)은 산악 등지의 암벽 등반 대신 인공 시설물을 이용해 즐기는 종목이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내년 개최 예정인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지난해 개봉한 940만 관객 영화 ‘엑시트’가 클라이밍을 소재로 삼으면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올해도 클라이밍의 인기는 이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실내 스포츠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3~5월 방문객이 많이 줄었지만, 6월 날씨가 더워지면서 다시 이곳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2030 직장인이 늘고 있는 것. 평일 저녁 퇴근 이후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빈다. 물론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마스크 착용을 필수 규칙으로 정해두고 개장 전후로 ‘홀드(손과 발을 디디는 인공 바위)’를 소독한다.

현장에서도 클라이밍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날 실내 암벽장 총방문객은 110여 명. 기자가 머무르는 동안에도 남성 두 명이 회원권을 신규 등록했다. 여자 로커 40개는 모두 찼다. “발 바꿔! 나이스!” “가자! 가자! 가자!”와 같이 서로에게 외치는 응원이 4~5m 높이의 천장을 울렸다.


암벽 등반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암벽 등반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수학 문제는 힘든데 암벽 문제는 힘이 납니다”

젊은 직장인이 클라이밍에 빠지는 이유는 ‘신선함’ 때문이다. 피트니스, 요가, 달리기 등 기존 운동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클라이밍에 새롭게 입문하는 것이다.

운동 자체도 ‘신선함’의 연속이다. 클라이밍의 규칙은 같은 색의 띠가 붙어 있는 같은 색의 홀드만을 이용해 ‘톱(도착점)’에 도착하는 것이다. 적절한 루트(길)를 찾아야 하므로 클라이밍 과정을 “문제를 푼다”라고 부른다. 머리가 아닌 힘만으로는 톱에 다다를 수 없다. 암벽에 붙어있는 홀드의 위치는 루트를 개발하는 전문 직업군 ‘루트세터(route setter)’가 통상 2주에 한 번씩 교체한다.

직장인 사이에선 클라이밍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도 유행이다. 이날 암벽장에는 삼각대에 휴대전화를 설치하고 자신이나 타인의 클라이밍 모습을 찍는 사람들로 붐볐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클라이밍’을 검색하면 43만 개의 사진과 영상이 뜬다. 직장인 이진규(36)씨는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매일 수십 개의 영상이 올라온다”면서 “영상을 보고 다른 사람의 동작을 따라 배운다”고 말했다.

크루(crew·팀)를 만들어 원정을 다니기도 한다. 이진규씨가 속한 그룹은 ‘홀타멍’. 홀드 타는 멍멍이라는 뜻이다. 유기견 봉사 모임 ‘별부름’ 안의 소모임으로 만난 이들이 이름을 지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2~3시간 클라이밍을 즐기고 ‘맥주 한잔’ 뒤 헤어진다. 이들이 제작한 홀타멍 공식 티셔츠도 있다.

소모임 애플리케이션(앱)에도 클라이밍 크루가 여럿 개설됐다. 회원 수 120여 명의 ‘스파이디 클라임’ 소속 직장인 김지영(31)씨는 “지난해 1월부터 퇴근길에 암벽장에 들렀다”면서 “주 3회 정도 즐기는데 처음에는 출근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갈수록 몸이 적응해가더라”고 했다.


스포츠 클라이밍 전용 티셔츠를 맞춰 입은 소모임 ‘홀타멍(홀드 타는 멍멍이)’ 회원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스포츠 클라이밍 전용 티셔츠를 맞춰 입은 소모임 ‘홀타멍(홀드 타는 멍멍이)’ 회원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클라이밍 인기에 관련 산업 ‘특수’

클라이밍의 인기로 실내 암벽장도 활발히 생겨나고 있다. 구글지도 기준 서울 소재 실내 암벽장만 60개에 달한다. 서울에서 지점이 가장 많은 브랜드인 ‘더클라임 클라이밍짐’은 일산점, 홍대점, 마곡점에 이어 올해 서울대입구역점과 강남점을 연다. 박재연 더클라임 클라이밍짐 일산지점 매니저는 “투어를 다니는 고객층을 공략해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지역의 회원이 방문하도록 지점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

필수품인 암벽화(신발)의 인기도 눈에 띈다. 서울 종로 5가 일대에는 입소문을 탄 클라이밍 용품 전문 매장이 모여있다. 이곳 상인들은 2~3년 전부터 암벽화를 구매하는 젊은층이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서명수 디딤돌 아웃도어 사장은 “2017년부터 암벽화 매출이 30%씩 늘었다”면서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미세하게 줄었다”고 말했다. 노종원 5가기어 사장은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린 시점부터 암벽화 판매량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유명 브랜드의 국내 매출은 지난 3년간 급격히 늘었다. 유통업체 넬슨스포츠에 따르면, 암벽화 브랜드 ‘스카르파’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2018년엔 22%, 2019년엔 30%를 기록했다. 2017년 전년 대비 매출이 10% 감소한 것과 비교된다.


Plus Point

[Interview] ‘루트세터’ 조성호 타이거볼더클라이밍짐 대표
“행복을 나누는 루트 만들고 싶어요”

조성호 2004년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데뷔, 2017년 전국체육대회 경기도 대표선수
조성호 2004년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데뷔, 2017년 전국체육대회 경기도 대표선수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길을 처음 설계하니 얼마나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제가 낸 문제를 여러 사람이 등반해보면서 즐거워하니 뿌듯할 수밖에요.”

조성호(34) 타이거볼더클라이밍짐 대표는 업계에서 입소문을 탄 ‘루트세터(route setter)’다. 조 대표는 2014년 대학산악연맹이 발급하는 1급 루트세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국가대표 선발전, 전국체전 등 대한산악연맹 주관 대회와 지방연맹 주관 대회에 길을 각각 8번, 40번 놓았다. 국내 클라이밍짐 열두 곳에 길을 놓은 경험만 100회에 달한다. 프로 선수든, 일반인(아마추어)이든 그가 놓은 길을 개척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홀드 배치에는 전략과 기술이 필요하다. 홀드의 위치에 따라 ‘플래깅’ ‘사이퍼’ 등 다양한 동작을 유도할 수 있다. 클라이머는 돌의 위치만 보고 어떤 동작을 수행할지 짐작해야 한다. 루트세터가 길을 창작하는 ‘예술가’이자 문제를 내는 ‘수학가’로 불리는 이유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루트세터는 선수 출신뿐만 아니라 일반인 출신도 두 팀 정도 있다. 국내 ‘클라이밍 열풍’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조 대표 또한 이런 추세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조 대표는 “클라이밍이 다른 스포츠 종목처럼 일반인과 거리감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만큼 클라이밍이 안전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확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