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석사·박사, 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 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윤성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석사·박사, 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 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법률 서비스에 정보기술(IT)이 접목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이른바 ‘리걸테크’ 산업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한국의 리걸테크(legal tech·법률과 IT를 결합한 새로운 법률 서비스) 성장을 위해선 판결문 데이터 개방 확대가 시급하다.” 리걸테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세계 리걸테크 시장 규모는 투자액 기준 2016년 2억달러(약 2300억원)에서 2019년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로 3년간 4.5배 성장했다.

국내에선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 공동 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 등 스타트업이 초기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다. 로톡의 경우 서비스의 위법 소지를 두고 대한변호사협회와 첨예하게 갈등 중이지만, 법무부는 지난 8월 로톡을 합법적인 서비스로 규정하고 9월 29일엔 ‘리걸테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이런 정부 계획을 실행하는 또 하나의 축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다. 4차위는 10월 출범 4주년을 맞아 ‘판결문 데이터 개방 확대’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 접근이 제한적인 법원 판결문을 누구나 쉽게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나아가 인공지능(AI) 학습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해 개인의 소송 대응과 기업의 서비스 개발을 돕겠다는 것이다.

조선비즈는 10월 21일 윤성로 4차산업혁명위원장(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과 출범 4주년 인터뷰를 통해 이 프로젝트의 필요성과 추진 계획을 들었다.


‘대한민국 법원’ 인터넷 홈페이지 내 ‘판결서 인터넷 열람’ 페이지 화면.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대한민국 법원’ 인터넷 홈페이지 내 ‘판결서 인터넷 열람’ 페이지 화면.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 4주년을 맞았다. 무슨 일들을 했나.
“4차위는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등장하는 신기술을 국내 기업이 해외 경쟁사에 뒤처지지 않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도록 각 부처와 조율해 규제 개선을 주도하는 범부처 기구다. 특히 기업이 AI 학습, 마케팅, 고객 관리 등을 위해 필요로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 규제 때문에 활용할 수 없는 데이터를 개방하는 역할을 해왔다. 부동산 실거래가와 건물 평면도 등을 개방해 프롭테크(IT가 접목된 부동산 서비스)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국세청 데이터를 개방해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국민 소득 파악을 가능케 한 게 최근 4차위가 거둔 대표적인 성과다. 환자가 병원에서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직접 청구해야 하는 실손보험 청구를 진료 즉시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진료 데이터를 개방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거치고 있다.”

판결문 데이터 개방이 필요한 이유는.
“판결문 개방은 헌법 제109조 재판 공개의 원칙에 따라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개방해야 했을 데이터다. 현재 판결문은 변호사 같은 법조계 전문가만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이를 개방하면 누구나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읽을 수 있게 된다. 변호사도 일일이 수백·수천 쪽의 판결문을 모두 뒤질 필요가 없어져 국민에게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가 향상되고, 법률 플랫폼을 포함한 리걸테크 기업은 더 많은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판결문은 이미 열람이 가능한 걸로 아는데.
“그렇다. 판결문은 지금도 어느 정도 민간에 개방돼 있긴 하다. 전용 웹사이트, 이메일(사건 당사자만 가능), 법원도서관 PC를 통해 형사는 2013년, 민사는 2015년 이후 확정 판결에 대해서만 건당 1000원에 유료 열람할 수 있다. 판결문은 이미지 형식으로 제공된다. 다만 현재 판결문 개방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2013년 이전의 사건을 조회할 수 없고, 이미지 형식이기 때문에 수백·수천 쪽의 문서에서 키워드 검색과 기계(AI) 판독이 불가능하며, 가독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비실명 처리돼 있다(비실명처리는 원고·피고의 실명 등 민감한 정보를 A·B·C 같은 알파벳으로 바꾸는 과정인데, 비실명 처리된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 문서 열람을 어렵게 만든다는 게 윤 위원장의 지적이다).”

4차위는 어느 부분을 개선하려고 하나.
“4차위는 △2013년 이전의 확정 판결에 대해서도 열람이 가능하고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 형식으로 제공해 문서 내 키워드 검색과 기계 판독이 가능하며 △오픈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형식으로 제공해 개발자들이 서비스 개발에 자유롭게 응용할 수 있고 △개인인지 법인인지 속성이라도 구분할 수 있는 새로운 비실명 처리로 판결문을 쉽게 읽을 수 있으며 △헌법의 취지에 맞게 무료로 열람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4차위는 이런 내용을 담은 ‘판결문 인터넷 열람·제공 제도 개선 제언’이란 안건을 10월 28일 제25차 전체회의에서 상정했다. ‘제언’의 대상은 사법부다. 의료·금융 등 정부 내 관계부처와 조율하면 개방이 가능한 데이터와 달리, 판결문은 사법부가 주도적으로 개방 확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사법부의 협조가 필요할 것 같다. 리걸테크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로톡이 갈등하는 영역으로, 사법부도 결정이 쉽지 않을 텐데.
“사법부는 인권의 보루다 보니 데이터 개방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와 사법부 사이에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다. 판결문 개방 확대는 리걸테크 산업 지원만을 위한 건 아니다. 판결문을 개방할수록 사법 투명성이 높아지고 국민이 재판과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 있게 된다. 또 기업이 기술특허 등 여러 소송을 벌이는 가운데, 판결문 데이터를 통해 불필요한 소송을 줄여 업무 부담과 사회적 비용 낭비를 막을 수도 있다.”

데이터 개방의 수혜자인 플랫폼의 시장 독과점 이슈가 심화하진 않을까.
“데이터와 이를 활용하는 플랫폼은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는 중요한 툴(수단)이다. 기본적으로 플랫폼을 진흥하되 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는 장려하고 독과점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서비스는 규제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안전한 데이터 활용을 위해선 고도의 개인정보 보호 기술도 필요할 것 같다. 정부가 개발을 지원하는 신기술이 있다면.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을 연구자들이 신기술을 개발해 뒷받침하듯, 데이터 분야 역시 연구자들이 나서서 개발하고 상용화해야 할 프라이버시 기술이 있다. 동형암호 기술이 대표적이다. AI에 개인정보 그대로가 아니라 암호화된 상태의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기술이다. 안전해서 개개인의 코로나19 동선 파악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암호화를 거치면 크기가 기존보다 수천 배 커져서 처리 속도가 느려진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할 연구도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