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우 스마트잭 대표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전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상품기획 담당 김건우 스마트잭 대표가 연구실 관리 솔루션 ‘랩 매니저’ 앱과 시약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장우정 기자
김건우 스마트잭 대표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전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상품기획 담당
김건우 스마트잭 대표가 연구실 관리 솔루션 ‘랩 매니저’ 앱과 시약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장우정 기자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 ‘IT로 창업하겠다’는 막연한 계획만 갖고 삼성전자를 박차고 나온 김건우 스마트잭 대표는 우연한 계기로 대학에서 실험하는 연구실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연구원들이 1400개쯤 되는 시약을 A4 용지에 일일이 손으로 작성해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 155자에 달하는 시약 정보를 썼다, 지우길 반복하는 식이었다. 이 중 유해 물질이 담긴 시약만 40%에 달해 자칫 위험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2019년 김 대표가 ‘랩 매니저’라는 연구실 물품 관리 솔루션을 PC,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내놓은 배경이다. 연구원이 연구실 관리 업무에서 벗어나 연구개발(R&D)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였다. 현재 랩 매니저는 김 대표의 모교인 고려대뿐 아니라 카이스트, 국민대 등 대학, 정부출연 연구소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샤넬코리아, 유한양행, 중외제약, 삼양사 같은 기업까지 포함하면 누적 연구실 가입자 수는 5500곳 정도다. 샤넬 본사에서도 랩 매니저 전사 도입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김 대표는 “랩 매니저와 비슷한 시기 미국 쿼치(Quartzy)라는 회사가 비슷한 서비스를 내놨다”면서 “현재 전 세계에서 연구실 관리 솔루션은 두 회사밖에 없는 만큼 성장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연구실은 7만여 개에 달한다. 미국, 일본 등 해외 진출도 준비 중이다. 김 대표의 ‘스마트잭’은 오는 8월 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도 마무리할 예정이다. 서울 성수동 스마트잭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사진 스마트잭
사진 스마트잭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창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삼성전자에서 TV 상품 기획만 12년 했다. 하드웨어가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경력이 쌓일수록 운신의 폭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TV는 43인치, 50인치, 82인치 식으로 화면 크기가 정해져 있으니 틀 안에서의 변화만 가능했다. 새로운 형태로 시도를 많이 해보려 했지만, 생산성 등의 이유로 번번이 잘 안됐다. 그러다 취미로 대학생에게 주말에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 과외를 받았다. 꼬박 2년을 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대학 동창, 삼성전자 동료 등 3명과 의기투합해 창업 한번 해보자고 했다. 막연히 IT 쪽으로 하자는 생각만 있었을 뿐 사업 아이템이 없을 때였다. 일단 서울 행당동에 옥탑방을 구하고 머리를 맞댔다.”

‘실험실 관리’라는 사업 아이템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투자받기 위해서 50군데를 돌아다녔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당시 유행했던 블록체인이나 생필품에 관련된 사업 아이템에 투자가 집중될 때였다. 연구실이라고 하니 말하기도 전에 관심 없어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스파크랩’이라고 하는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투자·육성 업체)의 13기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김호민, 이한주(베스핀글로벌 대표,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대표를 만나 3분 정도 사업 발표를 하니 ‘무조건 되는 거다’라고 했다. 초기 투자금 5000만원을 받고 3개월간 교육받으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다듬었다. 2019년 6월 스파크랩 13기 데모데이 발표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크게 했다. 1만 명 정도가 모이는 큰 행사였는데, 그때 우리 첫 번째 고객인 샤넬코리아를 만났다. 8개월간 솔루션을 공동 개발해 2020년에 처음 시스템을 납품했다.”

화장품 회사가 고객사인 게 인상적이다.
“우리가 쓰는 화장품은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여러 물질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것이다. 시약을 쉽게 등록하고, 적정 수준의 재고를 유지하고 있는지 관리하는 두 가지 수요가 있는데, 랩 매니저가 정확히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간 전사적자원관리(ERP)를 통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리적 재고 관리는 아주 잘되고 있었으나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관리 시스템이 전무했다. 화학물질은 액체가 되거나 성질이 변할 수 있는데 (위험물 지정수량 확인, 유해화학물질 관리대장, 특별관리물질 취급일지 자동 작성 등) 안전법령과 자동 연동돼 있다는 점도 서비스의 경쟁력이다.”

아직 주 고객사는 대학인데, 수익 모델은.
“5500여 개 연구실 사용 누적 가입자 중 3분의 2 이상이 대학이다. 우선은 무료로 제공 중이지만, 수익화를 위해 유료로 전환하고 있다. 여기에 ‘랩 매니저 스토어’라는 것도 있다. 연구실에 구비해야 할 연구 물품 가격을 비교해주고 구입까지 할 수 있는 ‘연구 물품 오픈마켓’이라고 보면 된다. 시약, 플라스크, 장갑을 비롯해 연구실에서 쓰는 책상, 연필, 이불, 청소기 등 200만 가지 물품을 구비해놓고 있다. 브랜드도 100개 넘게 입점해 있다. 연구 물품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없는 게 없다. MRO(기업소모성자재)와 다를 게 없는 거다.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 MRO 시장이 약 130조원이다. 8월 12일 랩 매니저에 랩 매니저 스토어가 완전히 합쳐진다. 물품을 구매하고, 구매한 게 자동 등록돼 관리되는 것이다.”

해외도 공략하나.
“8월 12일 영문 버전도 나온다. 미국은 쿼치가 이미 뚫어놓은 시장이다. 삼성전자에서 배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할 생각이다. 쿼치는 관리보다는 구매 쪽에 집중하고 있어서 물품 자동 등록이나 검색 기능에서 랩 매니저가 세 배 정도 앞서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미국, 유럽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다. 신약, 화학물질 등 연구 시장이 상당히 큰데, IT에서는 불모지인 만큼 해볼 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