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현 입셀 대표 가톨릭대 의과대학,현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주지현 입셀 대표가 6월 30일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옴니버스파크에서 자사가 개발하는 골관절염 세포치료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명지 기자
주지현 입셀 대표 가톨릭대 의과대학,현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주지현 입셀 대표가 6월 30일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옴니버스파크에서 자사가 개발하는 골관절염 세포치료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명지 기자

지난 2012년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국립오사카대 정형외과 수련의였던 그는 수술에 재주가 없는 것을 알고 약학으로 진로를 바꿨고, 연구 시작 20여 년 만인 50세에 노벨상을 탔다.

iPS세포는 일반 체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만든 원시(原始) 상태의 세포다. 이 iPS세포는 배아줄기세포처럼 손상된 세포에 주입하면 그 세포를 재생시킨다. 배아줄기세포는 난자나 수정란을 파괴해서 채취해야 하지만, iPS세포는 체세포에서 키워내기 때문에 면역 거부 반응도 적고 생명 윤리 위반 논란도 적다.

iPS세포는 발견 초기부터 난치병 치료와 재생의료에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10년간 iPS세포 연구에 1000억엔(약 1조원)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올해 4월 일본에서 시각 장애 환자 네 명이 iPS세포에서 얻은 각막 세포 이식으로 시력을 회복한 사례가 보고됐다. iPS세포가 실생활에 쓰일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국내에서 iPS세포 연구에 가장 앞선 바이오벤처로 입셀(YiPSCELL)이 꼽힌다. 서울성모병원 주지현 류마티스내과 교수가 창업한 이 회사는 iPS세포 기술을 활용한 골(骨)관절염 세포치료제(MIUChon)를 개발하고 있다. 

골관절염은 연골이 닳아 없어져 뼈끼리 닿아, 신경을 건드리고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으로 꼽히는데, 현재까지는 인공관절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입셀의 치료제는 수술 대신 iPS세포를 연골에 주입해 재생시킨다. 최근 돼지와 개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 찢어진 연골에 이 치료제를 주입했더니 30% 이상 재생됐다.

주 대표는 “60대 이상 고령층 두 명 중 한 명은 관절염을 앓는다”며 “(치료제가 성공하면) 자식들이 부모 생일 때 한 번씩 무릎에 놔주는 효도 상품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입셀은 올해 초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이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계획서(IND)를 제출했다. iPS세포를 기반으로 IND를 신청한 것은 입셀이 처음이다. 전 세계 퇴행성 골관절염 시장은 4조원대에 이른다.

주 교수는 가톨릭대 의대에서 류마티스내과(면역학)로 박사까지 마친 후 지난 2012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줄기세포를 공부했다. 이후 국내에 유도만능줄기세포연구소를 세웠고, 이를 기초로 2017년 입셀을 창업했다. 주사 한 대로 부모의 아픈 무릎을 고치는 마법의 주사제가 곧 나올 수 있을까. 주 대표를 최근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옴니버스파크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류마티스내과를 전공한 후 미국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나.
“훌륭한 선배들을 보면서, 면역학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 방향을 바꿨다. 국내에 줄기세포 연구가 뜨던 시기여서, 줄기세포를 (면역학) 영역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병원 의사가 자기 전공과 다른 연구를 하는 게 흔한 일인가.
“쉽지 않다. 해외 연수를 가면 전공을 바꿀 기회가 딱 한 번 찾아온다. 나는 운이 좋게도 유도만능줄기세포의 권위자인 미국 스탠퍼드대의 조셉 우 교수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연구에 그치지 않고 바이오벤처를 창업해 직접 뛰어들었다. 이유가 있나.
“연구 과정에서 한계를 느꼈다. 나는 내가 하는 연구가 직접 환자들에게 적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대표나 창업자의 강한 의지가 없이는 연구를 계속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iPS세포로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건가.
“고령화와 관련된 대부분의 만성 퇴행성 질환은 세포를 재생하는 첨단 치료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미래의 치료제로 줄기세포에 희망이 있다고 봤다.”

관절염 환자에게는 인공관절 수술이라는 옵션이 있는데, 세포치료제가 필요한가.
“병원에서 60~70대 고령층 환자를 자주 만난다. 이들에게 인공관절은 최후의 선택지다. 수술은 아무래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주사제는 진료실에서 침대만 있으면 시술받을 수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TG-C)가 각광받았던 것은 주사제이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골관절염 치료제가 이 시장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인보사는 코오롱생명과학이 개발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다. 코오롱이 ‘티슈진’이란 후보 물질을 발굴해 개발해 낸 신약이다. 연골이 자랄 수 있게 형질을 변환한 세포를 주사해 연골 세포를 자극하는 원리다. 코오롱은 티슈진으로 2017년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받고, 판매까지 됐다. 

시술비가 600여만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였지만, 수술 없이 퇴행성 관절염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각광받았다. 하지만 2019년 인보사 주성분이 식약처 허가 당시 기재됐던 연골 세포가 아닌, 신장 세포로 드러나면서 허가가 취소됐다. 다만 코오롱생명과학이 2020년 4월 FDA로부터 미국 임상 3상 재개를 승인받으면서 상황이 반전되는 분위기다. 

연골은 재생이 안 되지 않나.
“연골도 재생된다. 그 속도가 아주 느려서 안 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연골에는 수많은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 안에 연골 세포들이 묻혀 살고 있고, 연골 세포로 만든 iPS세포를 덩어리로 넣어서 주사했더니 3개월 이상 성질을 유지하는 걸 확인했다.”

후보 물질 개발 외에 매출이 나는 사업이 있나.
“iPS세포주 제작 서비스를 하고 있다. 세포치료제가 성공하려면 완벽한 재료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세포주 라이선스를 받아왔다. 국내에서 세포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입셀의 iPS세포주로 해야 한다는 소문이 났다.”

입셀은 서울성모병원 옴니버스파크에 임상허가용 제조품질관리(GMP) 세포생산시설을 구축했다. 서울 시내에 이 정도 규모의 GMP 시설을 둔 곳은 입셀이 유일하다.

환자마다 쓰이는 세포주가 다를 수도 있나.
“그건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 국민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은행화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환자가 필요할 때 우리 회사에 신청해서 자기 세포를 꺼내서 치료제를 만들어 쓸 수도 있다. 한국인 10만 명의 iPS세포 뱅크만 만들어도 성공이라는 계산이다.”

환자들도 많이 찾아오나.
“세포치료제를 주사해 달라고, 방금 딴 미역을 지역특산물로 갖고 온 환자도 있었다. 그 환자에게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안전하게 쓸 수 있으니, 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내년 식약처 임상 허가를 받으면, 그런 환자에게 치료제를 임상으로 투여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정부가 K바이오를 육성하려고 한다.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한국의 투자나 연구개발 문화가 좀 더 성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는 한 가지 분야를 깊이 연구하는 사람을 대우해주는 문화가 부족한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돈의 가치로만 환산하지 않고 국가적으로 인정하고, 투자를 배려하는 문화나 구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에서는 장인 정신을 중시하고 국가에서 투자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