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굵직굵직한 알짜 기업들이 잇따라 M&A 대기 명단에 올라오면서 국내외 자본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시장전문가들은 올 한 해 국내 M&A 시장이 50조원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도권은 외국 자본이 쥐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과 오랜 노하우에 이제는 정보력마저 갖추고 시장 곳곳을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외국 자본의 독무대였던 환란 이후 M&A의 형국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난 1월24일, 올 들어 가장 큰 M&A 이슈였던 1조2000억원의 동아건설 파산채권 인수자가 골드만삭스로 정해졌다. 매각 가격은 2900억원. 동아건설 파산채권 매각이 이슈가 됐던 것은 지급보증 회사인 대한통운의 M&A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동아건설에 7800억원을  지급보증한 대한통운은 보증채무 이행을 오는 2006년경 자신의 주식으로 출자 전환키로 했다. 즉 파산채권을 인수한 골드만삭스는 내년 대한통운 전체 주식의 32%를 취득, 최대 주주로 올라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법정관리 상태인 대한통운은 국내 물류업계 1위 회사다.

 지난 2월3일에는 전자 전문 유통업체인 하이마트가 아시아계 사모주식펀드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지분 80% 이상 매각 계약을 맺었다. 가격 조정 등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사실상 외국계로 넘어간 것이다. 하이마트는 연 매출 1조8000억원, 시장점유율 25%인 알짜 회사다.

 이처럼 올해 첫 시작된 M&A 빅 매치가 외국 자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시장에선 또다시 ‘외국 자본 침공’이 시작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란 이후 헐값에 나온 부동산과 기업들을 독식하면서 막대한 차익을 챙겼던 외국 자본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론스타·골드만삭스·GE캐피탈 등 국내에 진출한 주요 외국 자본 1세대들은 환란 이후 사들인 부동산과 기업의 매각과 함께 새로운 M&A에 속속 얼굴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법정관리중이거나 채권단 관리중인 산업별 주요 업체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론스타. 론스타는 새한미디어, 청구, 진로 등 알짜 기업들의 M&A에는 모두 참여하고 있다. 또 경영권 방어가 취약한 중소형 알짜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상태다.



 올해 M&A 빅 매치에 관심 쏠려

 대형 증권사 M&A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진행중이거나 논의되고 있는 M&A에는 어김없이 론스타 등 외국 자본이 명함을 내밀며 적극 나서고 있다”며 “정서적인 면을 빼고는 자본력 등 모든 면에서 외국 자본이 절대적 우위에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국내에 진출한 적이 없는 새로운 유럽계나 아시아계 자금 등 글로벌플레이어들도 국내 M&A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성보경 프론티어M&A 회장은 “돈에 꼬리표가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인하기 어려운 것일 뿐 최근에는 국내 부동산과 M&A 시장에 새로운 글로벌 자금들이 속속 들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국내에 들어오는 것은 올 한 해 알짜 기업들이 대거 시장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대우건설, 대우해양조선, 대우정밀, 대우인터내셔널 등 산업별로 주요 위치에 있는 옛 대우 계열사들이 줄줄이 M&A 명단에 올라 있다. 또 외환은행, LG카드, SK증권 등 주요 금융기관과 하이닉스, 진로, 쌍용건설, 온세통신, 드림라인, 새한미디어 등도 매물로 나왔거나 매각을 추진중이다.

 이 중 올해 주요 M&A 빅 매치로 분류되는 기업은 하이닉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외환은행, LG카드, 진로 등이다. 이들 기업은 시가총액만 1조원이 넘는 기업들이거나 매각 가격이 수조원대에 달하는 회사다.

 가장 먼저 빅 매치에 올라선 회사는 진로. 진로는 법정관리 상태에서도 지난해 매출 7347억원에 영업이익 2219억원, 3년간 평균 영업이익률 20%를 유지해 온 그야말로 알짜 중의 알짜다. 국내 소주 시장점유율이 55%에 달하며 서울 지역에선 무려 91%에 이른다. 이에 따라 매각 가격도 3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진로의 인수에는 CJ, 두산, 롯데 등 국내 거물급들은 물론 뉴브리지캐피탈, 아사히, 기린맥주, 유럽계 자금인 얼라이드도멕 등 쟁쟁한 외국계 선수들도 컨소시엄 또는 단독으로 참여한 상태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CJ, 두산, 롯데가 거론된다. 하지만 진로 매각이 어디로 결정될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정위가 진로 인수에 독과점금지법을 적용할 경우 희비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 두산, 롯데 등은 각각 산(舊 경월소주), 대선소주 등 소주 사업을 영위해 진로 인수시 독과점금지법에 적용받을 수 있다.

 이에 M&A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골드만삭스가 진로 매각가로 3조6000억원을 제시한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진로 인수는 주류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라며 “M&A에서 가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진로의 경우 공정위의 판단(독과점금지법)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진로에 이어 관심을 끄는 M&A는 대우건설, 대우해양조선 등 옛 대우그룹 계열사들이다. 국내 대표 건설회사로 자산관리공사가 매각을 추진중인 대우건설은 작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대우건설은 워크아웃 원년인 지난 2000년에는 287억원의 매출에 19억원의 순이익을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작년 3·4분기 기준으로 3조4899억원의 매출에 191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4년만에 100배 이상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우건설은 워크아웃 이전의 위상을 회복했고, 건설업 도급 순위에서도 선두권이다.

 현재 대우건설 인수 의향을 보인 업체는 국내 1개사, 국외 5개사 등 모두 6개사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업체 5개사 중 세 곳은 펀드 관련사, 그리고 두 곳은 미국의 유력 건설사인 벡텔과 파슨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6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대우인터내셔널의 매각 향방도 관심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아직 구체적인 매각 시기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올 하반기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업계에선 전망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고강도 구조 조정과 대규모 흑자로 지난해 말 부채 비율이 155.5%로 전년 대비 57.9%포인트 줄어들었고, 현재 국내 종합상사 중 수출 실적 1위를 기록중이다.

 매출 규모가 3조원을 넘는 대형 알짜 기업인 대우조선해양도 하반기에는 M&A 윤곽이 잡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M&A 매물로 나온 대우 계열사로는 외형상 대우건설에 이어 두번째로 크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총톤수(G/T) 물량 기준으로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 1위 현대중공업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이밖에 대우정밀은 KTB네트워크 컨소시엄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매각이 진행중이다.

 올 한 해 금융권 M&A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은 외환은행과 LG카드다.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은 10월말 매각 제한 기간이 끝나면 M&A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미 은행권에선 시가총액만 5조원을 넘는 외환은행마저 외국계로 넘어갈 경우 시장 주도권 상실을 우려하는 상태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매각을 추진중인 LG카드도 하반기에 매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LG카드 인수에는 벌써부터 우리금융·하나은행 등 국내외 금융기관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태.

 M&A 최대 이벤트는 하이닉스다.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반도체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하이닉스의 매각은 국내 기간산업의 변화는 물론 세계 경제 흐름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세계타이틀전과도 같다.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올해 하이닉스 워크아웃 조기 졸업과 함께 매각 주간사 선정을 가시화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현재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은 81.4%로 블록세일 또는 해외 DR 발행을 통해 처분될 예정이다.



 론스타·칼라일 등 발빠른 행보

 올해 대형 M&A 매물이 대거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외국 자본들은 벌써부터 자본 확보, 정보 입수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알짜 기업 인수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는 최근 50억달러 규모의 여섯번째 투자펀드를 조성했다. 이 중 70% 가량은 한국과 일본에 집중 투자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설립된 론스타의 이번 6차 펀드는 그동안 조성한 펀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한미은행을 씨티그룹에 매각했던 칼라일도 한국과 중국의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10억~14억달러 규모의 펀드 조성을 위해 국내 기관투자가들과 접촉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금은 주로 채권단 관리에 있는 기업의 M&A에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제일은행을 매각한 데 이어 삼성생명 지분 인수를 추진중인 뉴브리지캐피탈도 한국에 투자할 자금을 추가로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외국 자본의 자금 동원력은 상상 이상”이라며 “외국 자본이 미리부터 대규모 자금 조성에 들어가는 것은 올해 M&A 시장에 나오는 주요 기업들 대부분이 매각 가격이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관계자는 “올해 매각이 추진되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모두 산업별 주요 회사일 뿐 아니라 기간산업의 핵심들”이라며 “따라서 외국 자본들은 어느 때보다 공격적으로 M&A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외국 투자 자본이든 투기 자본이든 산업별 주요 기업들을 인수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본 조성과 함께 외국 자본들은 정보 획득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은행 등 금융기관 인수를 통한 정보 취득이다. 특히 은행은 각종 기업들의 정보가 집중되는 곳으로 외국계 자본에 있어 기업 사냥의 전초 기지와 같다.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로 지목되는 것이 론스타의 ‘동아건설 파산채권 인수 의혹’이다. 론스타는 지난해 12월 외환은행이 동아건설 파산채권단 중 최대 채권자란 점을 이용,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받은 동아건설에 대한 실사보고서를 참고해 헐값에 파산채권을 매입하려 했다는 의혹을 샀다. 그 과정에서 론스타는 우량 기업인 대한통운의 경영권 확보도 염두해 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불공정 논란으로 론스타는 결국 입찰을 포기한 바 있다.



 국내 자본 역차별 규제 없애야

 외국 자본들의 이러한 발빠른 행보에 비해 국내 자본의 준비는 지지부진하다. 정부 대책도 거의 무방비 상태다. 정부는 지난해 외국 자본의 국내 기간산업 잠식과 국부 유출 등을 막기 위해 사모주식펀드(PEF)를 도입, 토종 자본 육성에 나섰다. 하지만 인식 부재, 자금 조달의 어려움, 차별적 규제 등으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다. 또 이미 설립된 PEF도 규모가 작아 대형 매물을 소화하기 힘든 실정이다.

 실제로 제도 시행 이후 우리은행과 맵스자산운용, LG투자증권, 칸서스자산운용, 하나은행 등이 국내외 투자회사와 연기금 등의 자금을 끌어들여 PEF를 잇따라 세웠지만 그 규모는 500억~3000억원에 불과하다. 시중은행의 한 PEF 담당자는 “현재 설립된 PEF 규모로는 중소형 기업들을 인수하는 데도 벅찬 것이 현실”이라며 “더욱이 제약도 많아 운신의 폭도 작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따라 M&A 시장에서는 외국 자본과는 달리 국내 자본에만 적용되는 차별적인 규제를 조속히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출자총액 제한 및 은행 지분 소유 한도 완화 등 산업자본의 M&A 시장 진출을 유도하기 위한 대책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Plus TIP



외국 투기자본의 부정적 행태 사례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

 2000년 3월 칼라일은 한미은행 지분 34%를 취득하겠다고 금융감독위원회에 허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은행법상 외국인이 금융기관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기 위해서는 외국 금융회사이거나 외국 금융회사의 지주회사여야 하는데 칼라일은 은행도 증권사도 보험사도 아니어서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6개월후 금감위는 칼라일이 미국계 투자은행 JP모건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컨소시엄의 대주주가 JP모건이 되는 조건으로 한미은행 인수를 승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칼라일이 은행법상 대주주 적격심사를 편법으로 통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펀드 대부분이 칼라일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

 론스타는 2003년 9월 1조3834억원을 투자해 정부와 코메르츠방크에서 외환은행 주식을 매입하고 발행신주를 취득해 지분율 51.0%의 단독대주주가 됐다. 칼라일과 마찬가지로 론스타 역시 금융기관이 아니어서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었지만 금감위는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인정된다며 이를 승인했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부실금융기관으로 인정되기 위한 정밀실사 등 일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매각이 이루어진 2003년 하반기 당시 당기순이익이 개선되는 등 잠재적 부실도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수과정의 불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율 배당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1999년 서울증권을 인수한 후 2002년 액면가의 60%에 해당하는 고율배당을 실시했다. 호주계 파마펀드가 대주주인 메리츠증권은 2003년도 순이익이 3억원에 불과했지만 배당금은 15배인 50억원을 지급했다.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SK의 경우에도 2003년 순이익의 6배가 넘는 961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유상감자

 영국계 투자회사인 BIH(Bridge Investment Holdings)가 대주주인 브릿지증권은 2002년말부터 200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유상감자를 단행하여 2200억원의 투자자금 중 1976억원을 회수했다. JP모건 컨소시엄이 지분 76%를 보유하고 있는 ㈜만도의 경우에도 2003년말 자본금의 33.5%를 유상감자했고 JP모건은 760억원을 회수했다. OB맥주의 대주주인 벨기 에계 인터브루도 회사의 자본금 60%를 감자해 1500억원 현금을 회수했다.

▲투자자금 회수 위한 기업소유 부동산 매각

 2003년 4월 론스타는 법정관리 하의 극동건설을 1476억원에 인수했다. 2706억원으로 인수한다고 했지만 인수당시 극동건설의 보유현금 1230억원으로 론스타 보유 회사채를 상환했다. 그해 10월 론스타는 극동빌딩을 1583억원에 매각해 현금을 확보한 후 12월에 유상감자를 통하여 650억원, 고액배당(배당성향 25%)으로 240억원을 회수했다.

▲ 파산결정권을 이용한 고가의 채권매입 요구

 2001년 11월, 고려산업개발은 법정관리계획안을 확정채권 8000억원 가운데 채권자 90% 이상의 찬성으로 법원에 제 출했으나 최종인가를 위해서는 리만브라더스와 서버러스가 갖고 있는 담보채권 700 억원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두 회사는 고려산업개발에게 동 채권을 고가로 매수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당하자 정리계획안에 반대했다. 다행히 법원은 대기업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권리보호조항을 적용해 직권으로 정리계획안을 인가했다. 2001년 7월 신호스틸이 법정관리를 졸업하기 위해 정리계획 변경안을 제출했을 때는 모건스탠리가 문제였다. 자산관리공사에서 140억원대에 매입한 담보채권을 200억원에 매입할 것을 요구하다 무산되자 정리계획 변경안을 반대했다.

▲과도한 경영간섭 및 경영권 위협

 2004년 3월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지분 5%를 취득하고 이를 금융감독원에 ‘단순투자 목적`이라고 공시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A 가능성을 거론했다. 인터뷰 직후인 12월 3일 헤르메스는 777만2000주(5%)를 주당 평균 1만4604원에 전량 매각했다. 현재 정부와 감독당국은 헤르메스의 매매행위가 증권거래법상의 시세조종 등 불공정행위 조항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조사중이다.

한국은행 금융연구원 자료



INTERVIEW



국내 M&A 1세대 프론티어 M&A 회장 성보경



“외국 자본의  M&A시장 잠식은  부패 관료들의 작품”



 “외국 자본의 2차 침공이 시작됐다.” 최근 국내 M&A 시장에서는 론스타 등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외국 자본의 공격적 M&A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외환 위기 직후 국내 부동산 및 M&A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던 외국 자본들이 또다시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시장 곳곳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한국 M&A 1세대로 ‘사관학교 교장’으로도 불리는 성보경 프론티어M&A 회장을 만나 국내 M&A 시장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외국 자본의 공격적인 M&A에 대해 논쟁들이 많지만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들이 많습니다. 외국 자본 유입, 그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외국 자본이 들어와 활개칠 수 있도록 시장 환경을 만들어 놓고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보경 프론티어M&A 회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외국 자본의 M&A 시장 독식과 국부 유출 등의 문제는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란 직후 정부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무차별적인 개방 정책을 펼치면서 외국 자본을 유도했던 것이 최근 논란의 배경이란 설명이다.

 그는 “국내 M&A 시장이 외국 자본에 취약한 것은 그들의 입장에 서서 사적 이익을 챙겼던 많은 부패한 관료들이 만들어 놓은 정책들 때문”이라며 “환란 직후에는 외국 자본을 끌어 왔다는 것만으로도 관료의 입지가 굳어진 데다 퇴직 이후 많은 관료가 그 외국 자본으로 영입됐다”고 회상했다.

 성회장은 외국 자본의 금융기관 인수와 국내 자본 역이용 등 두 가지 측면에서 국내 M&A 시장이 현재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과거에는 외국 자본들이 자기 돈을 들여와 부동산이나 부실 기업들을 인수했지만, 최근에는 금융기관을 인수해 막대한 기업 정보를 취득하고 국내 자본을 이용해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습니다. 시장도 내주고 돈도 내주는 이중 부작용은 결국 경제 생산성을 해치고 산업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이죠.”

 실제로 외국 자본들은 최근 부동산과 부실 기업에 이어 은행·증권 등 주요 금융기관들을 잇따라 인수합병하고 있다. 이미 국내 7개 시중은행 중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상태이고, 한미은행은 칼라일펀드에서 씨티그룹으로, 제일은행은 뉴브리지캐피털에서 스탠다드차타드로 손바뀜이 일어난 상태다. 성회장은 “외국 자본이 은행 등 금융기관을 인수하고 자기 사람으로 경영자를 내세우면 기업 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며 “M&A에 있어 기업의 재무적 주요 정보를 취득하고 경쟁에 나선다면 그 순간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국내 M&A 시장이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우선 외국과 국내 자본의 역차별 문제부터 해소하고 국부가 무방비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역차별 문제와 관련해 그는 “최근 역차별 논쟁이 외국 자본처럼 국내 자본에도 규제를 풀라는 쪽으로 흐르는데 이는 위험한 발상으로 오히려 시장을 더욱 왜곡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반대로 국내 자본과 동등한 규제를 외국 자본에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외국 자본에 의한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몇가지 대책도 내놓았다. “외국 자본에 의한 국부 유출 문제도 경우에 따라서 제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외국 자본이 정당한 방법으로 국내에 회사를 설립하고 이익을 내는 데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공적 자금이 투입된 회사를 인수합병하면서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이익을 챙기는 외국 자본들이죠.”

그의 묘책은 간단하다. 국민의 세금인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기업을 인수합병해 이익을 얻는 외국 자본에 대해선 세금을 내도록 하거나 아니면 일정 기간 배당, 자산 매각 등 자산을 회수치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회장은 “외국 자본이 인수한 공적 자금 투입 기업이 또다시 부실해지거나 문제가 된다면 이는 곧바로 국민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부실 기업이 공적 자금 투입으로 일단 회생 단계를 거쳤다면 외국 자본에게 매각 이후에도 이익을 우선적으로 공적 자금에 나눠 주는 게 기본”이라고 밝혔다. 제일은행·한국투자증권 등에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도 회수는 절반도 못해 번번이 비난받고 있는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최근 외국 자본들은 환란 이후 사들였던 기업들을 매각, 차익을 얻으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 기업이 싸게 산 기업을 국내 자본이 비싸게 되사주고 있다며 버블에 대해 우려했다.

 “이미 일부 외국 자본들은 ‘먹튀(먹고튄다)’를 하거나 손바뀜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새로운 알짜 기업을 물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외국 자본이 싸게 사들인 기업이나 부동산을 국내 자본이 비싸게 다시 사들인 다는 것이죠. 이미 자금 회수로 겉만 멀쩡한 기업을 말입니다. 이는 일종의 버블과도 같습니다.”

 80년대 남미 국가들이 모라토리움이나 외환 위기를 겪고 경제가 살아나다가 다시 무너진 것도 이 같은 버블 때문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과거 남미와 같은 우매한 짓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우선 M&A 전문가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방한한 개발도상국 구조 조정 전문가인 데이비드 엘러만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교수 역시 외국 자본의 기간산업 지배와 치고 빠지기식 머니게임으로 한국도 아시아판 남미 경제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최근 외국 자본의 대항마를 주장하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PEF 등 국내 자본들을 보면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합니다. 수십년의 노하우를 자랑하는 외국 자본에 비해 국내 자본들은 아직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합니다. 전문성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외국 자본에 이용당할 소지가 클 수밖에 없어요.”

 성회장은 95년 7월 선경그룹(현 SK그룹)의 모회사인 선경(현 SK글로벌)의 지분 30%와 유공(현 SK) 지분의 13%만 확보하면 선경그룹 17개 계열사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같은 우려는 8년 뒤 소버린자산운용의 SK 경영권 공격으로 현실화됐다. “이대로 가다간 국내 M&A 시장은 쓰레기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그의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내 자본들이 모두 각성할 때란 지적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