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지난 4년간의 업적으로만 본다면 재선 성공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중간층의 지지를 얻는 변혁을 통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영국의 <가디언>지는 ‘미국의 5900만 명은 어떻게 이렇게 바보일 수 있나’라는 제목을 표지에 실었다. 부시 대통령을 뽑은 미국인들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그렇다.

 하지만 미국의 분위기는 다르다. 어쩌면 부시의 공화당은 이번 대선 승리를 발판으로 장기 집권 체제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부시의 승리는 단지 바보 같은 미국인들의 일시적인 잘못된 선택 때문이 아니라 미국인들 다수의 정서 위에 올라탄 역사적 흐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동시에 상·하원 양원을 모두 장악한 것은 1936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70년 만의 처음이다.



 부시 재선은 역사적 흐름

 많은 미국 언론들은 선거 후 분석을 통해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온건주의자(중간층)가 부시 대통령의 승리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공화당은 골수 보수·우파만이 아니라 어느 쪽으로도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중간층을 끌어안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왔으며 이번 선거에서는 그 노력이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예컨대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이 지난 40년 동안 미국 정치 상황의 변화에 맞춰 대대적인 자기 변혁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꼭 40년 전인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민주당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참패했다. 당시 존슨 대통령은 일반 국민투표의 61%(올해 부시가 얻은 표는 51%)를 얻었고, 전국 선거인단에서도 486명을 휩쓸었다(올해 부시는 286명을 확보).

이후 공화당은 완전히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해 왔다는 게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이다. 공화당은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AEI) 같은 싱크탱크를 만들어 보수적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했다. 우편을 통한 공화당 지지 세력의 조직화, 라디오와 TV 방송(FOX 뉴스가 대표적)을 통한 보수적 가치의 전파, 최근 들어 인터넷의 활용 등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을 압도했다. 올해 대선에서는 수십만 명의 선거 운동원과 자원 봉사자들을 동원해 공화당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는 사이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맥을 잊는 민주당은 자기 변혁을 하지 못한 채 구식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고 이 신문은 말한다. 예컨대 공화당은 민주당을 ‘게이 결혼, 일방적인 군비 감축, 추접한 대중가요와 영화, 이혼, 낙태, 학교에서의 기도 반대’ 정당 정도로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의 가치가 이것만은 아니지만, 그런 고착된 이미지를 탈피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민주당 자기 변혁 못해

 사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4년간의 업적으로만 본다면 재선 성공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다. 부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고, 후버 대통령 이래 처음으로 재임 중 일자리를 감소시킨 대통령이었다. 이라크전도 수렁에 빠진 가운데 의회마저 근거 없는 침공이라고 규정했다. 1960년대 이후 대통령 업무 수행 지지도가 50%를 넘지 못하고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없었는데, 부시는 그 50%의 선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하지만 부시가 정확히 읽은 것은, 미국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사회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의 일급 선거참모인 칼 로브는 이미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정확히 49% 대 49%의 표를 얻자, 다음 재선을 위한 선거에서는 이 ‘보수층’의 표를 더 얻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4년간 칼 로브와 공화당의 전략은 이들 미국 보수층을 일관되게 겨냥해 왔다. 타깃은 3가지 부류였다. 낙태와 동성 결혼에 혐오감을 가진 신앙심 깊은 종교인들, 시골에 살면서 미국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그리고 보수적이지만 투표장에 좀처럼 가지 않는 교외 거주민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비록 경제 문제에서는 민주당 정책을 지지해도 안보를 중시하고 기독교적 신앙을 삶의 중심 가치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다. 부시가 선거기간 내내 끊임없이 안보 지도자론에 집착하고 낙태와 동성 결혼 문제에 대해 단호한 반대 입장을 지킨 것은 이들 세 부류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런 공화당의 장기 재집권 플랜의 성공은 수치로 입증된다.



 도덕적 가치가 큰 영향

 예컨대 미국에서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은 대개 민주당 성향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출구조사에 의하면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의 38%가 부시를 지지했다.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도 대개 민주당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출구조사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 중 22%가 부시를 지지했다. 부시는 미국인들의 뿌리 깊은 신앙심을 자극하기 위해 11개 주에서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주헌법 개정안을 투표에 부쳤고 모두 찬성을 얻어냈다. 그 중 9개 주는 6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케리 후보가 이겼던 오리건과 미시건 주에서도 이 주헌법 개정안은 통과됐다. 소위 ‘도덕적 가치’ 문제가 얼마나 큰 영향을 발휘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도덕적 가치라고 해서 낙태와 동성 결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4명 정도는 도덕적 가치를 동성 결혼과 낙태 문제에서 찾았다. 이는 미국인의 60%가 ‘도덕적’ 가치라고 할 때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종교,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 후보자의 정직성, 리더십 등이며, 이런 분야에서는 부시가 늘 케리 후보를 앞섰다.

 공화당은 중산층보다는 대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부시가 보통사람들의 이익보다 대기업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16%는 부시를 지지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개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3분의 1이 부시를 지지했다. 미국 언론들은 역시 안보와 도덕적 가치 문제가 민주당적 가치들보다 이들 유권자의 심리에 우선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시골 표’를 끌어내야 한다는 부시의 선거 전략도 적중했다. 부시는 민주당 존 케리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존 에드워즈 후보의 지역구인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29만 표나 이겼다. 2000년보다 더 표를 늘린 것이었다. 심지어 에드워즈 후보의 고향지역까지 이겼다. 에드워즈의 고향은 전형적인 미국 시골로, 그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도 이 출신 배경 때문이었다.

 이런 모든 조사 결과들은 부시가 단지 열렬한 우파 보수층의 결집이 아니라 더 많은 비(非)보수층, 즉 중간층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일 부시가 보수층만의 지지를 받았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 보수층은 조사상 미국 유권자의 34%를 차지한다. 자신을 리버럴이라고 하는 사람은 21%다. 자신을 중간층(온건주의자)라고 하는 사람은 어느 쪽보다 훨씬 많은 45%이다. 부시는 이들 중간층에서 45%의 지지를 받았다.

허용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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