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나라 정치엔 여백이 없다. 여당이나 야당 어느 쪽에도 넉넉한 마음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 17대 총선을 통해 이른바 구(舊)정치를 모두 몰아내고 등장한 신흥 정치세력들이 외치는 새 정치가 빚어내고 있는 살풍경인 것이다.

 12월이라고 해서 이런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올해 연말연시는 각박해질 대로 각박해진 정치 현장을 목격하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지금 여야는 12월을 대전투의 시간으로 보고 있다. 익히 알려진 국가보안법 폐지나 과거사 진상 규명법,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관계법 등 여권이 주장하는 이른바 ‘4대 개혁 법안’이 여야의 충돌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내년도 예산안과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크고 작은 현안들도 정가를 긴장시키는 사안들이다.

 여야 모두 12월 전투에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는 물론 더 나아가 나라의 정체성과 명운까지 연결시키고 있는 상황이라, 치열한 싸움을 피할 길이 보이질 않는다. 다른 누구보다 여야 지도부가 그렇다. 열린우리당의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마치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건 듯한 각오다. 현직 국회의원이 아닌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한 발 비켜서 있을 여유가 있지만, 천 대표는 다르다. 물론 이번 12월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둔다면 노무현 대통령이나 여권 전체가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란 으레 출구가 있게 마련이고, 이런 경우 그 출구는 국회 원내(院內) 전략을 책임지고 이끌어 온 천 대표 쪽이 될 공산이 크다. 실제 여당 내에선 이런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돌고 있다. 4개 쟁점 법안에 대한 국민 여론의 반대가 높고, 한나라당과의 협상도 여의치 않은 만큼 ‘국보법 폐지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여당 안에서조차 다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면서 이른바 여당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그 주변에선 “열린우리당이 4대 입법에 실패하고, 예산안 등 민생 현안도 여권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천정배 대표가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 만약 천 대표가 지금의 전선을 성공적으로 돌파한다면, 그의 정치적 위상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명실상부한 여당의 리더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 확실히 진입할 것이다.



 ‘천·김’ 대형 제로섬게임으로 치닫아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도 비슷한 처지다. 천 대표가 창이라면, 김 대표는 방패다. 천 대표가 공격하면 김 대표는 막아야 한다. 박근혜(朴槿惠) 당대표 역시 이미 여러 차례 “모든 것을 걸겠다”는 말을 했다. 국보법 폐지 등 여권의 4개 법안을 ‘국가 정체성’ 차원으로 격상시킨 장본인이 박 대표다. 그런 만큼 지금 박 대표에겐 물러설 자리가 없다. 천 대표가 선봉에 선 여권의 공격을, 야당은 박·김의 수비 대오로 막고 있는 양상이다. 만약 방어선이 뚫린다면 박·김 두 사람 모두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내 상황이 심상치 않다. 당내 영남권 의원들과 수도권 비주류 의원들은 오래전부터 박·김 체제를 향해 “대여(對與) 유화책의 환상에 젖어 있다”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도 지금의 당 지도부를 미덥지 않게 여기는 눈치다. 그래서 이번 12월 전투에서 박·김 두 사람은 퇴로 없는 수성(守城)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여야의 대표 장수라고 할 수 있는 천정배·김덕룡 두 대표는, 정치 입문과 성장 과정에 공통점을 찾기 힘든 인물들이다. 전남 목포 출신인 천 대표의 이력서에는 늘 ‘1등 합격, 1등 졸업’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당내 개별 대책팀에 맡겨 놓았던 국보법 폐지안 등 4개 쟁점 법안의 성안 작업을 본인이 직접 했을 정도다. 다른 동료 의원들이 하는 일이 미덥지 않았던 것이 큰 이유다. 천 대표는 지난 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전문가 영입 형식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천 대표의 정치적 동지라고 할 수 있는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신기남(辛基南)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도 이때 함께 정치를 시작했다. 흔히 여권 내에서 ‘천·신·정’으로 불리는 이들 세 사람은 재선에 성공한 16대 국회부터 ‘바른정치모임’이라는 당내 개혁 소장파 모임을 주도하면서 정풍운동의 기치를 올렸다.

 천 대표는 2002년 대선 때 현역 의원 중 최초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고, 2003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당 과정을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17대 총선 직후에 치러진 지난 5월 열린우리당 원 내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당시 천 대표의 공약은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이었다. 당시 천 대표에게 경선에서 패한 인물이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다. 이처럼 천 대표의 정치 경력은 늘 공격하는 쪽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권 내에서조차 야당과의 대화나 협상에는 적임이 아닌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반면 김덕룡 대표는 1960년대 이후 굴곡 많은 한국 정치사의 현장에서 호흡해 온 인물이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부산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13대부터 지금까지 서울 서초을에서 내리 5선을 기록하고 있다. 13대부터 서울에서 같은 지역구에서 쉼 없이 5선을 기록한 또 다른 정치인이 이해찬 총리(서울 관악을)다. 호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한계 등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서 늘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김 대표가, 한나라당의 리더 역할을 본격적으로 맡은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심지어 자신의 정치적 사부인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2선으로 물러나 있었다.

 반면 천정배 대표는 늘 무대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 왔다. 이런 성장 과정의 차이 탓일까? 천·김 두 대표는 지난 6개월 동안 이렇다 할 협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치 궁합이 맞지 않는 듯 이들의 만남은 늘 어색했고, 뚜렷한 성과를 낳지 못했다. 12월 전투가 여야의 대(大)타협으로 막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나 전망이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다. 대형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천·김 두 대표, 더 나아가 여야 중 승자는 누구일까.

박두식 조선일보 정당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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