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겨울, 한국 사회는 요동치고 있다. 마치 좌와 우로 나뉘어 중도의 설자리가 없는 형국이다. 경제를 둘러싼 상황도 이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뉴딜정책, 재벌출자제한총액제도, 부동산 대책 등 여러 경제정책들에 대해 의견이 극명히 갈려 있다. 이는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귀결된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한 강연회에 참석해 “나는 분배론자가 아니며 성장도 중요하지만 분배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한 것뿐이다. 참여정부도 좌파라는 오해를 받지만 사실은 중도파다”라는 취지의 기조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조순 전 부총리가 ‘분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충고해 언론의 화제가 된 것도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 전부총리는 인터뷰 내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강조해 어느 한쪽으로 크게 기울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 전부총리는 분배에만 치중하고 있는 현 정부에 성장을 좀 더 강조해 균형을 이루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조 전부총리가 성장주의자로 비쳐지는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불황이란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한국 경제의 진로를 찾고자 국내 대표적인 경제학자인 조 전부총리의 서울 구기동 사무실을 11월15일 방문했다. 조 전부총리는 그곳에서 민족문화추진회 회장을 맡고 있다.

 조 전부총리는 한국 나이로 일흔일곱이지만 여전히 정정했다. 악수를 건네는 손아귀 힘이 웬만한 청년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래도 기자는 먼저 건강부터 물었다.



▶ 바깥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습니다. 건강은 어떠하십니까.

 좋습니다. 등산으로 건강을 지키고 있어요. 매일 아침 집(봉천동)에서 서울대를 가로질러 뒷산에 올라 맨손체조를 하고 돌아옵니다. 그러면 1시간 40분 정도가 걸리죠. 조찬모임이 있는 날만 빼면 매일 산에 오릅니다.



(기자가 96세의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본지와의 인터뷰(52~59쪽 참조)에서 “힘이 없어 보이지만 아직도 산책을 즐길 정도로 다리 힘이 좋아. 그리고 이것(늙는다는 것)은 전염병이 아니야”라는 말을 했다고 건네자 조 전부총리는 산신령 같은 웃음을 지으며 “어, 그래요. 그분의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죠. 맞아요”라며 갈브레이스 교수의 말에 맞장구쳤다.)



▶ 사실 나라의 건강이 더 걱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우리 경제가 어디로 치닫느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습니다. 이 나라의 경제를 진단하자면 어떤 상황일까요.

 나라 건강이나 개인 건강이나 비슷한 면이 있어요. 중심을 잡고 균형이 잡혀야 건강한 건데 균형을 잃으면 건강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한쪽 끝에서 끝으로 치닫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 경제를 막론하고 어두운 면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두 다 문제를 가지고 있지요. 미국 경제, 중국 경제 모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물론 예외가 아닙니다. 다만 그 문제를 그때그때 풀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한국의 문제는 생겨난 지 오래됐습니다. 그래서 고질화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문제의 근원은 지나친 관치경제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나는 늘 시장경제를 주창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개발 연대에는 투자, 산업, 금융이 다 관치였습니다.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 많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성과도 있었습니다만 균형을 잃었죠. 관치경제의 폐단은 80년대에 치유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오히려 확대가 됐습니다. 90년대에 글로벌화가 되면서 경제 운영 방식은 진정으로 달라져야 했는데 문민정부도, 국민의 정부도 경제 운영 방식은 여전히 개발경제 방식이었습니다. 구조 개혁을 한다는 것도 개발 연대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봅니다. IMF를 졸업했다고 했지만 완전한 졸업이 아니었습니다. IMF 이후로 경쟁력은 계속 약화되고, 성장 동력은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당황한 정부가 잘못된 카드 정책 등 내수 진작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했습니다. 그 또한 인위적인 데다가 균형을 잃을 정도로 너무 지나쳤던 거죠. 이 정부도 역시 기본 방식은 여전히 개발경제 방식이라고 나는 봅니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이탈하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 <이코노미플러스>가 12월호에서 한국의 주요 대학 경제·경영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60~64쪽 참조)한 바에 따르면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 즉 분배에 치중하는 정책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분배만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 않죠. 성장이냐 분배냐를 떠나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관치가 많아요. 컨트롤 마인드가 강한데 이걸 없애야 합니다. 경쟁을 고취하고 시장경제 원리를 확고히 유지,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분배다, 10대 성장 동력이다’라고 하는 건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방식을 연상케 합니다. 물류 허브, 금융 허브 또한 현실성이 희박합니다. 정부의 희망대로 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정책들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현실에 맞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부 의지로만 밀고 나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개발 연대 때에는 글로벌 시대가 아니었고 우리 국내의 문제여서 어느 정도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문제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인간의 창의성과 시장경제 원리에 맡겨야 합니다.



▶ 갈브레이스 교수는 인터뷰에서 “기업이 권력을 다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빈부 격차가 심화되기 때문에 정부가 분배에 치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요.

 뭐든지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성장과 함께 분배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동차가 방향을 바꾸자면 굴러가면서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한꺼번에 분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합니다. 물론 관치경제 때 재벌에 힘이 몰리고 재벌 위주의 경제가 운영됐던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문에 중소기업이 약해졌죠. 외국의 경우 중소기업이 자라 대기업이 됩니다. 파괴와 창조가 항상 일어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30년 동안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대기업은 계속 대기업이고 작은 기업은 항상 작아야 한다면, 그것은 경쟁경제가 아니라는 근거입니다. 경쟁이란 게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쟁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이 경쟁 시스템을 도입해 성공한 것 아닙니까. 중국에 가 보니까 11명인 팀에도 개별 성적표를 만들어 놓고 평가를 합니다. 서로 경쟁하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죠. 평등주의 아래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 요즘 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내놓은 정책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리고 불황의 골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금리를 내리고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신설하고 있습니다만, 보다 급한 것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민들의 경제활동을 진작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입니다.

내년 하반기에 뉴딜정책을 대대적으로 벌인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 할 일이 많습니다. 종부세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종부세를 보면서 ‘야! 신난다’라고 말할 국민이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국민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합니다.‘이제 내가 안심하고 잘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국민이 마음 놓고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책상 좋은 것 사 주고 최신 컴퓨터 사 준다고 공부 잘하게 되는 것 아니거든요. 공부 안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게 해 주어야죠. 경제도 결국 사람들 마음에 의해 움직입니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줘야 합니다.



▶ 내년도 경제 성장률은 몇 퍼센트나 달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출에 달려 있습니다. 내수 회복은 어렵다고 봐요. 빚진 사람들이 많거든요. 신용 불량자가 400만여 명인데 여기에 소득이 줄고 세금이 오르면 돈이 생기더라도 저축하려고 하지 누가 쓰려고 합니까. 기업도 투자를 안 합니다. 투자와 소비 둘 다 크게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수출인데 중국도 긴축 기조이기 때문에 수출도 올해보다는 힘들 겁니다. 그렇다면 4%도 잘 하는 거죠.



▶ 환율도 1100원까지 무너졌습니다. 수출도 더 힘든 것 아닌가요.

 그렇죠. 환율을 지키겠다고 정부에서 개입한다는데 그것은 한계가 있어요. 세계적으로 달러가 약세입니다. 한국은행에서 세계적인 추세를 막겠다는 건데 그건 양쯔강 물을 막겠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불가능합니다.



▶ 최근 한국은행에서 경제 활성화의 한 방편으로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적절했다고 보시는지요.

 (금리 인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금리 인하는 기업들의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금리를 인하한다고 해서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어요. 기업들이 돈이 없어서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기업들 금고에 현금이 쌓이고 있어요. 투자를 해봤자 수익을 기대하기 힘드니까 안 하는 거예요. 금리를 인하하면 중산층과 노년층의 금융소득만 줄어드는 결과만 낳습니다. 시중 자금이 부동산 투자로만 몰리고요.



▶ 어떻게 해결해야 약화된 경쟁력이 강해질 수 있습니까.

 답답한 규제를 풀고 중소기업에 대한 세를 줄여서 숨통을 터 줘야 하죠. 한마디로 기업 할 수 있는 토양과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거죠. 지병이 30~40년 됐기 때문에 단기 처방으로는 어렵습니다. 중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시장경제가 뿌리 내리게 해야 합니다.

(조순 전 부총리는 인터뷰 중간 중간 ‘IMF를 졸업한 게 아니다. IMF 때문에 한국 경제가 더 침하됐다’는 논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행간에는 외국 자본이 한국을 싼값에 사고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런 의미는 조 전부총리가 사외이사로 있는 SK(주)를 소버린이 끊임없이 인수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는 현상과 오버랩됐다.)



▶ SK(주)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학문을 하시던 입장에서 기업 현장으로 들어가 보시니까 어떠신지요.

 열심히들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SK가 제대로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영 상태가 좋으니까 경영권 도전을 더 받는 결과를 초래하더군요. 외국인 지분이 1년 전보다 더 늘었어요.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우호세력이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데 출자 제한 때문에 그러지를 못하고 있어요. 출자 제한을 풀어 줘야 합니다. 뒤늦은 이야기지만 자본시장 개방을 천천히 제한적으로 했어야 했습니다. IMF 요구 이상으로 자본시장을 열었습니다. 당시 기업에 부채비율을 200% 안으로 제한하니까 기업체에선 결국 있는 걸 내다 파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외국인들이 헐값으로 한국을 사 버린 겁니다. 단시간에 대한민국의 주요 회사들의 소유권들이 외국인에게로 넘어간 거예요. 국민은행도 외국인 지분이 70%니까요. 이게 다 한꺼번에 무언가를 하려는 균형 잃은 정책의 소산입니다.



▶ 외국 자본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외국 자본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극에서 극으로 가는 건 옳지 않다는 거죠. 내내 막다 한순간에 열었던 극단적인 정책과 현상을 비판하는 겁니다. 대외 개방을 하려면 먼저 안에서 자유와 자율을 줘 경쟁체제를 갖추도록 도와야 하는데, 안에서는 규제만 하다 IMF를 맞아 지나치게 개방하니까 기업과 건물들이 헐값으로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결과만 초래했어요. 이런 현상을 외국인 투자로 환영만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 그렇다면 정부가 경제 회생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펴야 합니까?

 기본 방침을 명확히 하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겁니다. 그게 바로 시장경제 원리입니다. 여기에 우리 현실에 맞는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정책을 덧붙이는 겁니다. 일부만 열광하고 일부는 증오하는 정책은 안 됩니다.



▶끝으로 사회가 양극화되는 갈등 구조가 극심합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조화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어디든 찬반으로 분열되고…. 해결책은 국민이 공감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전략을 세워서 일관성 있게 가는 겁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믿기 시작하면 의외로 일은 쉽게 풀릴 겁니다. 이율곡 선생이 선조에게 ‘제가 추천하는 정책을 3년만 해 보십시오. 그것이 효과를 못 내면 신이 죄를 받겠습니다’라고 상소한 적이 있습니다. 개혁은 한순간에 성취되는 게 아닙니다. 대처 영국 전 수상도 10년이 걸렸고 덩샤오핑의 개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초인 국민의 신뢰를 얻는 건 3년이면 된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취재진에게 조순 전 부총리는 “지난주 일요일에 서울대에서 열린 바둑대회에서 조훈현 국수에게 4집을 두고 이겼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국 경제의 얼굴에 그런 미소가 언제쯤 떠오를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었다.

이창희 편집장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