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대 원화 환율이 맥없이 무너져 내려 한때 1000원 저지선마저 불안케 했다.

환율전문가들은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 글로벌 달러, 외환당국, 외국인 투자세력, 국내 펀더멘털, 경상수지 5가지를 들고 있다. 전문가 5인을 통해 이들 변수의 향방을 짚어봤다.



1 절대변수 ‘글로벌 달러’



정미영 삼성선물 과장

 국내 금융시장에서 ‘글로벌 달러’가 테마로 등장한 것은 몇 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전에도 글로벌 달러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어 왔지만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글로벌화한 것은 IMF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변동환율제도와 외환 자유화 환경에서는 세계 경제의 흐름 및 국제 자본시장의 동향, 주요 국가들의 환율 정책 및 흐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달러/원 환율을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가 없다.

 ‘글로벌 달러’란 미국 달러의 주요 통화에 대한 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글로벌 달러 강세 또는 약세는 미 달러가 주요 통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강세를 나타내는가, 약세를 나타내는가’에 대한 표현이다. 기축 통화인 달러의 가치는 미국의 이해 또는 주요 선진국의 합의에 따라 커다란 추세를 형성해 왔다.

 1973년 변동환율제도가 도입됐으나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 금리 상승 등으로 자본 유입이 급증하면서 달러 가치가 급등했고, 미국의 경상 적자가 악화되자 1985년 선진 5개국은 소위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러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한 적극적이고 공조적 시장 개입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3년 동안 달러 가치는 무려 46% 가까이 하락한다. 이후에도 달러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 10년여 간의 달러 약세가 펼쳐지는데, 달러/엔 환율은 85년 260엔대에서 95년 4월 역사적 저점인 79.80엔까지 무려 70%가량 급락하기에 이른다.

 달러/엔 환율이 하락하는 기간 동안 일본은 장기 침체를 겪게 되고, 달러 약세가 일본이나 미국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95년 4월 선진 7개국은 엔저(円低)를 유도하는 소위 ‘역플라자 합의’를 도출한다. 또한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은 강한 달러(strong dollar)를 원한다’는 의지를 보여 줌으로써 달러/엔은 99년 8월 147엔까지 급등하게 된다. 95년 4월 이후 미 달러는 2002년 초까지 강세 기조를 이어 갔다.

 달러 강세는 미국의 경상 적자를 악화시키지만 미국으로의 해외 자산 유입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미국 주도의 IT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전 세계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집중, 자본 수지가 경상 적자를 보전하고 인플레 압력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관계가 유지됐던 것이다.

하지만 2000년 초 IT 버블이 붕괴되면서 미국의 자산시장에 대한 신뢰가 약화됐고, 회계 불신, 테러 위협 증가 등으로 ‘안전통화’로서의 미 달러 입지가 흔들리게 된다. 2001년부터 시작된 FRB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 회복세가 미미한 반면 어느덧 미국의 경상 적자는 한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인 GDP의 5%선에 육박하자 2002년 초부터 미 달러는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한다. 경상 적자를 보전해 온 자본 유입이 감소하자 경상 적자 문제가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달러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은 미국으로 하여금 달러 하락을 ‘용인’하게 만든다. 미국 성장 둔화로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가운데 달러 가치 하락은 수출 증가 및 수입 감소를 통해 경상 적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01년 1월부터 13차례에 걸친 금리 인하로 미국의 기준 금리인 Federal Funds Rate가 6.5%에서 사상 최저치인 1%로 낮아진 것도 달러 약세의 한 원인이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는 30% 가까이 하락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달러 약세의 특징은 우선 선진 각 국의 환율에 대한 이해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경상 적자 축소를 위해 달러 약세를 선호하는 반면, 일본은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려는 시기에 엔화 강세가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엔 강세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시장 개입에 나선다. 2003 회계연도에 일본의 총 개입 규모는 무려 33조엔(330조원)에 달한다. 한편 1985년 이후 달러의 급락이 일본과 독일의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었던 기억은 미국으로 하여금 섣불리 달러 약세를 ‘추구’하지는 못하게 하고 있다. 또한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자국 통화 강세를 막기 위한 시장 개입은 이들 국가의 미국 국채 대량 매입으로 이어져 미국의 경상 적자를 보전해 주고 있어 미국도 시장 개입을 눈감아 주는 암묵적인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시기에 달러 약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초 대비 유가는 150%, 원자재 가격(CRB지수 기준)은 50% 이상 급등했다. 달러 약세 자체가 이들 가격의 상승에 기여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원자재와 원유 가격이 모두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그 효과를 제외하더라도 이들 가격의 급상승에는 중국의 거대한 수요 및 지정학적 위험 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달러 약세는 거의 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즉 달러 약세 → 미국의 수출 증가/수입 감소 → 경상 적자 감소의 메커니즘이 작용하지 않고, 달러 약세/원자재 가격 상승 → 수입 증가/미국 수출 제자리(유가 급등으로 세계 경제 둔화) → 경상 적자 증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들어 미국의 금리 인상 기대로 반등을 꾀하던 미 달러는 최근 미국 경제가 기대보다 부진하고 특히 유가 급등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에다 경상 적자는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반면 해외 자본 유입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자 10월 들어 다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부시 행정부가 케리 후보보다는 자유 무역을 선호하지만 미국의 경상 및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달러 약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유럽과 일본도 원유와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덜기 위해 얼마간의 자국 통화 강세를 수용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GDP의 6%에 육박하는 경상 적자를 고려할 때 장기적인 달러 약세는 불가피해 보이지만 환율 조정을 통한 경상 적자 해소가 적절한 해법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향후 달러의 향방에는 미국의 환율 정책 이외에 유가 및 원자재 가격 동향과 FRB의 금리 인상 속도를 가늠케 할 미국의 경제 지표가 중요한 변수들이다. IMF 이후 최저 환율인 1100원 저지선을 뚫고 내려간 현 시점에서의 글로벌 달러의 움직임이 절대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서울 환시의 소방수 ‘외환당국’



이종혁 연합인포맥스기자

 국제통화기금(IMF)은 외환시장의 개입 지침으로 ‘무질서한 상태’(disorderly condition)에 있는 환율 변동을 조정하기 위해 개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질서한 상태’는 투기적 자본 이동, 외환의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이나 시장 심리의 불안으로 환율이 급변동해 시장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서울 환시에서 개입할 수 있는 당국은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다. 두 곳 모두 당국자의 입을 통해 시장에 시그널을 보내기도 하고 직접 시장에서 달러를 매매해 가격에 직접 영향을 주기도 한다. 또한 두 곳 모두 이때 사용하는 자금을 쌓아두는 곳간을 가지고 있는데, 재경부는 300억달러가 넘는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을, 한은은 발권력 자체를 재원으로 쓸 수 있어 원론적으로 개입 여력은 무한대인 셈이다.

 외환당국은 개입 시기와 강도에 대해 충분한 시장 경험과 거시경제 전반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판단하려고 고심한다. 환율이 장단기적으로 물가, 경제 성장, 금리, 통화량 등의 거시 변수뿐 아니라 정치 상황, 지정학적 위험 등 많은 요인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두 기관의 성격이 달라 개입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기도 한다. 외국환 거래 규정상으로 재경부와 한은은 각각 외환 개입에 대한 책임과 운용을 나눠 맡고 있다. 또 재경부는 경제 성장을 중요시해 주로 수출 경쟁력의 담보를 목적으로 삼는다. 반면 한은은 통화 정책 측면에서 ‘물가 안정’에 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런 차이는 당국 내부의 정책 충돌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시각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는 추의 역할도 한다.

 지난해 9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회의에서 서방 선진국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에 ‘유연한 환율 정책’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환율 전쟁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곧 아시아 통화 가치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급격하게 절상됐고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 경제 보호라는 총대를 메고 개입에 나섰다.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단기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지만 장기적으로 각 국의 인플레이션율이나 국제 수지 상황 등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한다. 하지만 시장 기대나 예상치 못한 정보의 출현에 좌우되기도 하고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에 휘둘리기도 한다. 밴드왜건 효과는 서커스단 퍼레이드의 선두에 선 악대차를 구경꾼과 광대들이 뒤따르듯이 투기자들을 쫓아 시장 거래자들이 동시에 같은 매매 방향으로 치닫는 일종의 ‘쏠림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환란을 겪은 후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과 함께 급속하게 자유화 및 개방화를 추진했다. 이 여파로 서울 환시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 크기가 작고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올해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경상 GDP 대비 일평균 거래 금액 비율은 3.1%로 조사됐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허브로 자리 잡은 싱가포르, 홍콩 등이 각각 136.4%, 64.3%인 것에 비해서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또 미국 4.2%, 일본 4.6%, 독일 4.9%, 프랑스 3.6%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도 낮다. 외환시장에 거래 규모가 크고 참여자가 두터우면 외환시장의 종심이 깊다는 것이고 이는 외부 충격에도 그만큼 버텨낼 체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 우리나라는 자원이 빈약하고 경제 구조상 무역 의존도가 크다. 이는 수출에 대한 경제 성장 기여도를 무척 높여 놓았는데, 특히 최근 내수 부진의 골이 깊어지면서 서울 환시의 안정성 담보가 수출 산업뿐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커졌다.

주변국들을 둘러보면 아시아에서 수출 경쟁에 나서고 있는 국가들 중 자유변동환율제도를 가진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자유변동환율제도 아래에서 기업들은 환 위험 변동에 많이 노출된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의 경쟁력을 담보하기 위해 사실상 미 달러화에 대한 페그제나 관리변동환율체계를 운영하는 상황이다.

 ‘벼룩 이야기’는 개입의 부작용을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다. 유리뚜껑을 덮은 유리컵 안에 갇힌 벼룩은 몇 번을 높이 올랐다가 머리를 맞고 떨어지면서 마침내 나가는 것을 포기한다. 한참 후 유리뚜껑을 제거한다. 벼룩은 여전히 튀어 오르지만 예전에 유리 뚜껑이 있던 그 선 아래까지만 오른다. 유리뚜껑이 벼룩의 도약 능력을 쓸모없게 만든 것처럼 당국의 개입은 시장의 자율성과 시장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지난 10월 말에는 당국 개입에 의해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던 1140원선이 갑자기 깨지면서 달러/원 환율이 폭락했다. 글로벌 달러 약세에도 이 선이 지켜질 것으로 믿고 있던 수출업체들이 쌓아 뒀던 달러를 급하게 털어냈던 것이다. 이는 개입 부작용의 다른 양상이다.

 10월에 열린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국정감사의 이슈 중 하나는 재경부의 막대한 개입 손실(?)과 고환율 유지에 따른 경기 부진이었다. 지난해 두바이 G-7 회의 무렵부터 올해 4월까지 재경부는 달러/원 환율의 하락을 방어할 목적으로 개입에 나섰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1∼8월 중 외국환 평형 기금 채권의 이자 지급액이 3조1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약 1조8000억원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재경부가 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실탄이 부족하자 레버리지 효과가 큰 차액 결제 선물환(non-deliverable forward)과 외환 스왑 등의 파생상품 거래에 뛰어들었다가 본 손실이라고 추궁하고 나섰다.

 이번 국정감사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개입의 몸통이 내외신을 타고 공개됐다. 이후 역내는 물론 역외의 세력에도 당국의 위상은 추락하고 말았다. 당국은 개입 명분을 잃고 시장의 신뢰도 얻기 힘들어졌다. 결국 지난해 G-7회의 이후 주춤했던 글로벌 달러 약세가 재개하면서 지난 1년간 단단하게 지켰던 1140원선이 깨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당국의 개입에 대한 공과와 실효성은 지금 당장 가려질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프리드먼(Friedman)은 개입보다 일관성 있는 재정 및 금융 정책이 필요하다는 반면, 무사(Mussa)는 외환시장 개입의 실효성을 개입에 따른 이익 실현 여부에 의해서만 평가할 수 없으며 개입으로 손실을 보더라도 여타 국내 경제 부문에서 보다 유익한 보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환당국은 다시 시장 개입에 나서기 껄끄러운 상황에 놓였다. 국회가 환시 개입에 대한 폐해와 손실 쪽에 포커스를 고정하고 감시하는 한 경제적 필요성에 앞서 국회와 국민의 공감대를 먼저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앞서 당국도 시장의 흐름을 틀어막거나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자만을 갖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후 국제 외환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다. 미국의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쌍둥이 적자(재정 적자+경상 적자)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글로벌 달러 약세가 재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원화의 급속한 절상은 우리나라 경제에 이롭지 않은 면이 분명히 있다. 한쪽 손이 묶였지만 당국의 시장 안정 의지는 계속될 것이다. 서울 환시의 공식 소방수는 외환당국뿐이기 때문이다. 재경부는 이미 내년 외환시장 안정용 국고채 발행 한도를 대폭 늘려 신청해 놓았다. 기획예산처에서 승인한 환시채 발행 한도는 올 18조8000억원에서 3조1000억원 증가한 21조9000억원이다. 일단 안전판은 마련한 셈이다.



3 외환시장의 큰 손 ‘역외세력’



이진우 농협선물 리서치팀장

 지난 1997년 겨울에 들이닥친 외환 위기를 겪은 뒤 우리는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라는 국제기구 명칭을 ‘고통스러운 시기’ 또는 ‘국가 부도에 준하는 위기 상황’이라는 의미로 사용해 왔다. 대차대조표상으로 ‘자산=부채+자본’이다 보니 남의 빚도 내 재산이라는 인식이 은연중 지배하던 차에 단기 외채에 대한 상환 요구가 이어지고 빌린 자금의 연장(roll-over)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단돈 10만달러가 아쉬워 은행과 기업들이 부도(default) 위기에 몰리고 국가 부도나 다름없는 모라토리움(moratorium; 상환 유예 조치)이라는 단어까지도 회자됐다. 800~900원대 환율이 한 달 만에 2000원 가까이 치솟는 일진광풍이 한국을 휘몰아칠 때 우리 국민들은 금 모으기에 나서며 실제적 효과 이상의 감동(?)을 세계인들과 나누었으며 거덜 난 경제를 이어받은 국민의 정부는 이런저런 노력 끝에 집권 기간 중 ‘IMF 졸업’을 선언했다.

 IMF 외에도 우리 기억에 강하게 남는 그 시절의 유행어는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협력개발기구)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경제 성장, 저개발국 원조 및 세계 무역의 확대 등을 추구하기 위해 1961년 9월30일 기존의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를 발전적으로 해체, 창설한 국제기구인 OECD에 우리나라는 1996년 말에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은 두 번째, 세계에서는 29번째 가입국이 되면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창설 주요 목적으로 통화 가치(외환 시세)의 안정 유지를 먼저 꼽는 OECD 가입 이듬해에 한국에는 외환 위기가 닥쳤으며 그로 인해 우리는 듣도 보도 못한 환율과 시중 금리, 주가 수준을 경험했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국가이며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가 발전한 나라임을 의미하는 ‘OECD 가입’ 이후 한국인들만의 리그였던 국내 주식시장, 채권시장, 외환시장, 부동산시장 등은 국제 투기자본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됐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출근하자마자 뉴욕 증시 동향과 미국채 금리, 그리고 글로벌 달러 시세 등을 먼저 점검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그리고 지난 7년간의 시장 흐름을 되짚어 보면 IMF 이후 국내 금융시장의 주도권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넘어갔고(거래소 시가 총액의 43%를 외국인이 보유), 고비마다 이뤄진 거래의 결과는 외국인들이 큰 수익을 내는 쪽이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으로 투자한 달러를 높은 환율에 원화로 환전해 싼값의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그렇게 해서 값이 오른 주식 등을 처분한 뒤 달러로 바꿔 나갈 때에는 환율마저 낮아져 있었기에 플러스알파로서의 막대한 환차익마저 누려 왔다. ‘IMF 외환 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은 한마디로 외국인들이 놀기에 좋은 물이었으며 구조적으로 그들이 벌 수밖에 없는 시장이 된 셈이다.



외국인 투기에 환시장 출렁

 외환시장으로 눈을 좁혀 보더라도 외국인, 이른바 역외세력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매일 일상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 기업들의 수급(需給)은 사실 그 내용이 뻔하다. 요즘처럼 월 20억달러 내외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중이라면 결제 수요보다 네고 물량이 많아 하루 평균 1억달러 정도의 달러 공급 우위 장세가 이어지기 마련이고(월 중 시기별 수급이 차이를 보일 수도 있고, 자본 수지상으로는 순유출이 될 수도 있으며, 잉여 달러가 거주자 외화 예금 등으로 숨을 수도 있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 전체가 시장에 공급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는 곧 조금씩이나마 환율이 하락할 여지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증시에서 연일 1000억~2000억원대의 주식 순매수를 기록하며 주식 매수 자금이 환시에 공급된다면 평소보다 늘어난 달러 공급으로 인해 환율에는 하락 압력이 가중되고 그들이 순매도로 돌아선 뒤 본국으로의 역송금을 위한 달러 매수에 나서면 환율이 급하게 오르기도 한다.

 실수급 규모의 몇 배에 이르는 투기적 거래가 수반되기 마련인 외환시장에서 결정적인 수급요인을 쥐고 있는 역외세력이 공격적 투기에 나서면 시장은 출렁거리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환율이 움직여 왔다. 원금을 교환하지 않고 한 달 후 또는 몇 개월 뒤 만기일에 가서 원래 거래환율과 만기일의 정산환율 차이에 따른 차액만 결제하는 역외 선물환(NDF, Non-Delivery Forward, 차액 결제 선물환) 거래의 경우만 하더라도 비거주자인 역외세력이 국내 금융기관에 NDF 매도를 행하면 국내 금융기관은 NDF 거래에서 발생한 롱(달러 매수 초과) 포지션을 그냥 무방비 상태로 한 달 이상 끌고 갈 수 없기에 현물시장에서 헤지(hedge) 목적의 숏(달러 매도 초과) 포지션을 일으키며, 이는 곧 역외 매도세(매수세)가 서울 외환시장에 즉각적인 환율 하락(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이유이다.

 이외에도 역외세력의 움직임이 서울 환시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배경을 몇 가지 더 들 수 있다. 해외 투자은행(IB)과 펀드를 의미하는 역외세력은 일단 국내 금융기관들보다 훨씬 큰 규모의 포지션을 운용함으로써 시장 장악력을 지니고 있다. 즉 씨름판에서는 덩치 큰 선수가, 농구 경기에서는 키 큰 선수가 아무래도 유리하듯이 역외세력은 한 번 움직일 때 크게 시장을 휘둘러 장세를 주도한다. 거기에다 시장을 공략하는 레벨이나 타이밍을 잡는 데 확실히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으며(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의 움직임,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환율정책 등에 대한 정보 획득에서 그들은 국내 기관들이 따를 수 없는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또 그들은 각개전투식이 아닌 탄탄한 결집력을 보이며 한국 시장을 공략할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그 예측의 정확도와 신뢰성에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 및 금융기관들은 해외 IB들의 리포트에 크게 의존하고 또 실제 영향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시장의 폭과 깊이 키워 나가야 

 지금까지의 논의는 결국 한국의 OECD 가입 이후 서울 외환시장이 외국인들에게 공개되면서 환율의 등락에 외국인 동향이 절대적으로 작용해 왔고, 이는 그만큼 한국민의 입장에서 국부 유출을 우려할 만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울 외환시장이 국제 금융시장의 일부분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원화가 국제화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비용 내지 국가적 손실이라 하겠지만 이제 좀 더 역외세력과 역내 참여자들 간의 대등한 싸움을 기대해도 될 만한 시점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지금으로서는 서울 환시에서 역외세력을 뜨끔하게 할 수 있는 카운터 파티로는 외환당국밖에 없다. 근래 들어서는 역외세력의 의도와 상치되는 당국의 환율정책 내지 직간접 시장 개입에 역외조차 당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당국만이 외국인들의 상대가 되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장의 폭과 깊이를 키워 나가야 한다는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시장 참여자의 저변 확대가 시급하다. 수적으로 몇 안 되는 역외세력의 공략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서울 환시가 되려면 보다 많은 기관 및 기업들이 환시에 참여해야 한다. 외환 자유화 방침에 따라 증권, 보험 등 비은행권 금융기관들도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를 할 수 있음에도 아직 그 분야에서의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들이라면 수시로 등락하는 환율에 무방비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적정 이익을 보장하는 레벨에서의 헤지 매수 또는 매도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환리스크 관리도 할 뿐 아니라 시장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충격을 완화시키는 범퍼 역할도 감당할 수 있다.

 해외 투자은행이나 연구기관의 전망 리포트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도 바람직하지 않음은 이미 언급했다. 국내 연구기관이나 관련업계의 리포트도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며, 그것은 곧 국내 외환 전문가의 양성이 국가적으로도 기업적으로도 꾸준히 이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환율이 크게 움직일 때에만 반짝 관심을 보이고 표피적인 분석 및 향후 전망에 그치는 언론도 주식, 금리, 외환의 3대 금융시장의 한 축인 외환시장의 평소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분석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당국 또한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시장이 얕보는 당국, 믿을 수 없는 당국으로 그 위상이 추락한다면 한국 외환시장에 파수꾼은 없는 셈이다. 아직 낙후된 서울 환시의 체질 개선을 위해 할 일은 참 많다.



4 외환수급 결정하는 ‘경상수지’



김영익 대신경제연구소, 투자전략실장

 최근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2000년 10월 이후 4년 만에 1110원대로 하락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환율에 대한 관심이 높다. 환율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살펴보고 앞으로 환율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물가 차이가 환율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한 나라의 물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떨어지면 그 나라의 돈 가치가 오른다. 맥도널드의 ‘빅맥’ 가격을 예로 들어 보자. 빅맥 같은 품질이 비슷한 상품은 ‘일물일가’의 법칙에 따라 어디서나 가격이 같아야 한다. 얼마 전까지 빅맥이 우리나라에서는 3200원에,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2달러90센트에 팔렸다. 이로 보면 우리 돈 3200원이 미국 돈 2달러90센트와 가치가 같게 된다. 즉 미국 돈 1달러는 우리 돈 1103원과 그 가치가 같고 1달러당 원화 환율은 1103원이 적정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맥도널드는 우리나라에서 빅맥 가격을 3200원에서 2500원으로 내렸다. 이제 우리 돈 2500원이 미국의 2달러90센트와 가치가 같게 되고 빅맥 지수를 적용해 보면 적정 환율은 862원으로 떨어진다. 빅맥 가격이 떨어진 만큼 우리나라의 원화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둘째, 한 나라의 생산성이 환율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 국가의 생산성이 높으면 그 나라로 다른 나라의 자금이 몰려들게 된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2년까지 미국의 생산성이 일본이나 유로에 비해서 높았다. 그래서 일본과 유로 지역의 자금들이 미국으로 들어갔고, 이에 따라 높은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미 달러 가치가 오를 수 있었다.

셋째, 수출 경쟁국의 환율도 그 나라의 환율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원화 환율은 일본 엔화 환율과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많은 수출 상품이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정책 당국의 환율 정책도 환율에 영향을 준다.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던 루빈은 지속적으로 ‘달러 강세’ 정책을 표명했는데, 그 시기에 달러 가치가 올랐다. 또 다른 예를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4월 이전까지는 엔 강세를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다. 내수가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계속 오르면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출이 감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이후로는 일본의 정책 당국이 외환시장에 거의 개입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최근 일본 중앙은행은  2005년에는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이 네 가지와 더불어 환율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존한다. 외환시장에서 수급은 주로 자본수지(특히 경상수지)가 결정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로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1997년 말에 외환 위기를 겪었는데,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외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1997년까지 누적 적자가 568억달러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우리 외환시장에서 달러가 크게 부족해졌고 원/달러 환율이 한때 2000원에 근접하는 등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그러나 1998년부터는 경상수지가 대규모의 흑자로 전환되고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만큼 우리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이 풍부해졌기 때문에 달러 가치는 떨어지고 원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오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경상수지에 영향을 주고 환율은 어떤 방향으로 변동할 것인가? 경상수지는 저축률과 투자율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한 나라의 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면 경상수지가 흑자를 이루고 그 반대의 경우는 적자가 난다. 1990~1997년 동안 우리나라의 저축률이 연 평균 35.6%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사실 저축률이 이 정도 높은 나라는 대만과 싱가포르 등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기간 동안 기업들의 과잉 투자로 국내 투자율이 평균 37.2%로 저축률을 훨씬 웃돌았다. 그러나 보니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IMF 경제 위기’ 이후 상황이 크게 변했다. 저금리로 가계의 저축률이 낮아지긴 했지만 기업의 투자가 크게 위축되면서 투자율이 저축률을 밑돌게 되었다. 1998~2003년 동안 저축률은 평균 33.7%였는데, 투자율은 이보다 훨씬 낮은 28.9%였다. 경제 환경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1998년 이후로 경상수지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외환 보유액이 늘어나면서 환율의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환율 결정 요소를 보면 앞으로도 원화 가치가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먼저 우리 원화 환율은 일본 엔화 환율과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왔는데, 앞으로 엔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미국의 지속할 수 없는 경상수지 적자를 조정하기 하기 위해서는 달러 가치가 하락해야 한다. 또한 일본 경제가 1990년부터 시작된 장기 불황에서 탈피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엔화 가치가 더 상승할 수 있다.

 우리 경제 측면에서 보면 1998년부터 저축률이 투자율을 넘어섰는데, 이는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인 현상으로 판단된다. 경제가 선진화할수록 소비 증가로 저축률은 낮아진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기업의 투자가 양에서 질 위주로 변화하면서 투자율은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원화 가치는 계속 오를 것이며, 앞으로 2년 이내에 원/달러 환율이 다시 세 자릿수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5 한국 고유의 국가위험

이상재 현대증권 리서치센터 경제조사팀장

 환율이란 두 국가 화폐 간의 교환 비율로서 원/달러 환율은 미국 달러화를 우리 돈으로 바꿀 때 적용되는 교환 비율이라 할 수 있다. 변동환율제도 아래에서 환율은 기본적으로 외환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며, 외환의 수요와 공급은 이론적으로 양국 간 기대 성장률 및 실질 금리 차, 양국 간 경상 수지 등의 경제 여건 변화와 양국 간 정책 협조에 의해 결정된다.

 원/달러 환율 역시 한국의 경제 성장이 미국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거나, 한국의 실질금리가 미국의 실질금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될 때, 그리고 한국의 대미 경상 수지 흑자규모가 확대될 경우 하락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한국 투자의 기대 수익률 상승이 기대되는 경제 여건이 형성되면 국제 투자자금이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달러화 공급이 많아지게 되고, 이는 원화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남북 간 대치’라는 한국만의 고유한 국가 위험도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데, 북한 핵 문제와 같은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원/달러 환율은 한미 간 경제 여건 변화의 영향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가 엔화나 유로화와 달리 거래 규모가 작은 지역 통화에 불과함에 따라 환율 결정 이론에 나타난 경제 여건의 변화 요인보다는 외환당국의 환율 정책 및 수출 경쟁국인 엔/달러 환율에 동조화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첫째, 한미 간의 기대 성장률 차는 원/달러 환율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올 하반기를 예로 들면 동 기간 중 미국 경제는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고용 회복을 바탕으로 경기 회복세 지속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반면, 한국 경제는 장기간의 내수 부진으로 인해 경기 침체 우려가 확대되었다. 이런 경우 한미 간 기대 성장률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10월 중순 이래 원/달러 환율은 반대로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최근 원/달러 환율의 하락이 한미 간 기대 성장률 격차와 무관하게 진행된 것이다.

 둘째, 원/달러 환율은 한미 간의 실질금리 차와도 별 관계가 없었다. 올 하반기 중 미국 경제는 연방기금 금리 인상 정책을 추진한 반면, 한국은 지난 8월에 이어 11월 중 두 차례 콜금리 인하를 단행함으로써 정반대의 금리 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한국은 고유가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연간 4%대를 상회할 정도로 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여전히 소비자 물가가 2% 미만에서 안정되었다. 따라서 한미 간 실질금리 격차 측면에서 보면 국제 투자자금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출될 여건이 형성됨으로써 외환시장에서는 미 달러화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인해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력이 높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 이후 원/달러 환율이 1150원대에서 횡보세가 유지된 데 이어 10월 중순 이후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 점은, 한미 간 실질금리 격차 역시 원/달러 환율에 대한 영향력이 미미함을 시사한다.

 셋째, 펀더멘털 측면에서의 나머지 원/달러 환율 결정 요인인 한국의 경상 수지도 큰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론적으로 한국의 경상 수지 흑자 규모가 확대되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공급이 확대됨으로써 원/달러 환율은 하락하게 된다. 외환 위기 이후인 1998년 이후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지속한 점은 동 기간 중 한국 경상 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지속한 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경상 수지는 비교적 원/달러 환율의 추세와 상관관계가 높은 변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04년 1~3분기 중 분기 평균 68억달러 흑자를 보였던 경상 수지가 4분기 이후 그 규모가 축소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0월 중순 이래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 점은, 경상수지 측면에서도 원/달러 환율의 하락세를 완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 것이다.

 한편 원/달러 환율은 경제 여건 변화와는 별개로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국가 위험 요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채무 상환 불이행 위험이 고조되었던 1997년 말 외환 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의 폭등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으로서는 국가신인도가 악화되는 구조적 위기 요인이 발생하면 외국인 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출 우려가 야기됨으로써 원/달러 환율이 급등세로 반전되었던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 경상 수지 흑자시대가 진행되면서 한국의 외환 보유액이 1700억달러를 상회함에 따라 1997년 말과 같은 외환 보유액 고갈에 의한 제2의 외환 위기가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두 가지 측면에서 국가신인도 하락에 의한 상승세로 반전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남북 간의 긴장 고조 가능성이다. 남북 간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더라도 6자 회담이 무산되거나 미국의 대북 강경 정책이 강화됨으로써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된다면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달러 흐름과 관계없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일 것이다. 10월 중순 이래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달러 약세에 동조하여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북한 핵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급격한 상승세를 보일 수 있는 요인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 확대로 인한 금융 위기 가능성이다. 지난 2000~2001년 당시 대기업 유동성 위기가 확산되면서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 확대에 의한 금융 위기 가능성이 고조되어 1140원 내외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1250원대로 급격히 상승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 수출 호조가 지속되면서 대기업의 유동성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내수 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화 및 부동산시장 침체로 인한 가계 대출 부실화 가능성이 현실화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급등세로 반전될 수도 있다.



원/달러 환율, 고유한 국가위험 증가 가능성 상존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원/달러 환율은 한미 간 경제 여건보다는 엔/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한 하락 추세가 불가피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내수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중소기업 및 가계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짐으로써 금융 위기 우려로 인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북한 핵 문제의 전개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여지도 남아 있다. 비록 원/달러 환율이 엔/달러 환율 및 외환 정책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한국 고유의 원화 가치 하락 요인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