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저녁 홍대입구역 일대에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다. 사진 조강휘 인턴기자
4월 21일 저녁 홍대입구역 일대에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다. 사진 조강휘 인턴기자

4월 21일 오후 7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일대. 서울을 대표하는 상권답게 평일인데도 수많은 인파가 달이 뜨길 기다렸다는 듯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서로를 경계하던 최근 모습과 사뭇 달랐다. 시민들은 지인과 반갑게 포옹하고 안부를 물으며 한동안 단절했던 교분(交分)을 다시 쌓았다. 비 온 뒤 찾아온 꽃샘추위도 화요일 저녁 홍대 나들이를 방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신을 휴학생이라고 소개한 박민화(24)씨는 “약 3개월 동안 사회적 거리 두기 권고를 잘 지켰다”라며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러 나와 기분이 좋다”고 했다. 박씨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조심해서 놀면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걷고 싶은 거리’로 불리는 어울마당로를 따라 6호선 상수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에 공영주차장이 길게 늘어선 그 길이다. 태양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였으나 거리 곳곳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수시로 마주쳤다. 이들 상당수는 마스크 대신 담배 연기로 입을 가렸다. 연남동에서 가방 매장을 운영한다는 서강우(36)씨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건 아니어도 한창 심각했을 때와 비교하면 유동인구가 많이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KT&G 상상마당 건물 앞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21)씨는 “매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발표를 보는데 한국에서는 코로나19가 확실히 끝나가는 듯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씨 말대로 신규 확진자 추이만 놓고 보면 코로나19가 한국을 서서히 떠나가고 있는 듯하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4월 18일부터 꾸준히 1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19일(8명)과 21일(9명)에는 한 자리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 희소식은 오랜 사회적 격리에 지친 사람들을 집 밖으로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막판 방심이 바이러스 재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부 경고에도 사람들은 ‘참을 만큼 참았다’며 외출을 감행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주요 상권을 돌며 분위기를 살피기로 한 이유다.

이날 낮에 방문한 지하철 2호선, 신분당선 강남역 일대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는 듯했다. 강남GT타워 로비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41)씨는 “재택근무를 끝내고 며칠 전부터 정상 출근하기 시작했다”며 “점심시간에 건물 밖에 나가보면 많은 식당이 예전처럼 다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있던 회사 동료 박모(43)씨는 “업무 특성상 계속 정상 출근을 해왔는데 한동안 지하철에도, 식당에도 사람이 적어서 좋았다”며 “요즘엔 다시 지옥철 문이 열렸다”고 했다.

홍대입구역과 강남역 일대에서 목격한 인파는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수도권 지하철 509개 역 승하차 인원을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제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 투표 당일인 4월 15일 유동인구가 가장 많았던 지하철역은 홍대입구역(8만9854명)이었다. 강남역(7만9656명)은 잠실역(8만1117명)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공휴일 유동인구 추이는 4월 4일(토) 685만4942명에서 4월 18일(토) 776만3131명으로 13% 증가했다. 주말에 사회적 거리 두기 대신 번화가 나들이를 택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들 상당수가 홍대와 강남역을 향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른 번화가의 유동인구 증가는 명동과 무관한 소식처럼 들린다. 외국인이 사라진 명동 거리는 여전히 썰렁하다. 사진 조강휘 인턴기자
다른 번화가의 유동인구 증가는 명동과 무관한 소식처럼 들린다. 외국인이 사라진 명동 거리는 여전히 썰렁하다. 사진 조강휘 인턴기자

길에 사람은 많은데…

그렇다면 늘어나는 유동인구에 맞춰 번화가 상권도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을까. 4월 17일부터 21일까지 만난 자영업자 대다수는 “아직 매출은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힙지로(영단어 힙(hip·유행에 밝은)과 을지로를 합친 말)’라 불리는 을지로 3가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최모(35)씨는 “3월 매출이 2월과 비교해 40%가량 떨어졌는데 4월 들어 딱히 오른 건 아니다”라며 “코로나19 이슈와 무관하게 늘 장사진을 이루는 일부 가게를 뺀 대부분의 업장은 여전히 한겨울을 견디고 있다”라고 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바(bar)를 운영하는 김지형(43)씨도 “뉴스를 보면 사회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은데, 영업 현장에서 받는 인상은 조금 다르다”고 했다. 김씨는 “분명 길에 사람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들이 좁은 가게 안으로 들어와 긴 시간 머물면서 밥과 술을 즐기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며 “자영업자의 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을지로나 성수동은 명동에 비하면 양반에 속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외국인 입국 제한 조치가 ‘외국인 관광객의 성지(聖地)’ 명동을 을씨년스럽게 바꿔놨기 때문이다. 외교부와 법무부는 4월 13일부터 외국인들에게 발급한 단기 비자(사증) 효력을 잠정 정지했다. 앞서 4월 4일에는 한국으로 입국했거나 한국에서 출국한 중국인 숫자가 ‘0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코노미조선’이 명동 일대를 돌아다닌 4월 20일 오후에도 휑한 거리 풍경은 그대로였다. 예전 같으면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볐을 중앙대로는 보행자를 쉽게 셀 수 있을 정도로 썰렁했다. 많은 음식점과 카페가 아예 문을 닫았고 문을 연 가게도 개점휴업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비 오는 날씨였다는 점을 고려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무표정한 종업원들이 힘없이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국산 화장품 브랜드 매장에서 근무 중이던 점원 A(35)씨는 “손님의 8할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인·일본인 관광객이 오지 않으니 종일 멍하니 서 있다가 퇴근한다”며 “다른 번화가와 달리 명동은 외국인이 돌아올 때까지 시련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맛집으로 유명한 한 식당에는 십여 명의 손님이 있었다. 모두 한국인으로 보였다. 이곳 종업원 B(57)씨는 “그나마 이 지역에서 꽤 알려진 식당이다 보니 한국인 손님이라도 이렇게 찾아온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