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베르디체브스키미 스탠퍼드대 기계 공학 학사, 스탠퍼드대 에너지 공학 석사, 전 테슬라 배터리 시스템 설계 리더
진 베르디체브스키
미 스탠퍼드대 기계 공학 학사, 스탠퍼드대 에너지 공학 석사, 전 테슬라 배터리 시스템 설계 리더

‘새로운 표준이 될 배터리 재료(Materials that set a new standard for batteries).’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Sila Nanotechnologies·이하 실라)가 내세우는 표어다. 2011년에 설립된 실라는 실리콘 기반 배터리 음극재를 개발,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이차전지인 리튬 이온 배터리는 음극재 소재로 흑연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를 흑연보다 에너지 밀도(저장 용량)가 높은 실리콘으로 대체하면 배터리 성능을 높일 수 있다. 이에 실라는 배터리 음극재 소재로서 흑연을 완전히 대체할 실리콘을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한다.

‘이코노미조선’은 1월 6일 서면으로 실라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진 베르디체브스키를 인터뷰했다. 그는 테슬라 창업 직후인 2004년 6월부터 테슬라에서 일한 ‘테슬라의 7번째 직원’으로도 유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실라에는 테슬라 직원이 많다. 실라 임원진으로 테슬라 초창기 배터리 팩을 설계했던 알렉스 제이콥스 공동창업자 겸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 테슬라에서 11년이나 일한 배터리 전문가 커트 켈티 자동차 부문 부사장이 있다.

‘배터리 혁신’으로 전기차 대중화를 이끈 테슬라에서 나와 또 다른 배터리 혁신을 꿈꾸는 실라의 수장 베르디체브스키는 “테슬라에서 일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창업자라면 정말 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욕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실라 창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대학교 1학년 때 미국 전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태양열 자동차 경주를 우연히 알게 돼 참가한 적이 있다. 당시 소비 전력이 1500W(와트), 그러니까 토스터기 수준의 자동차였는데도 그 차로 시카고부터 로스앤젤레스까지 3700㎞에 이르는 거리를 고속으로 달릴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이 나를 에너지 산업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빠지게 했다. 대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태양열 자동차 경주에 함께 참가했던 선배가 그 당시에는 듣도 보도 못 했던 한 전기차 회사에 입사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바로, 테슬라였다. 나는 테슬라에서 배터리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을 했고, 고성능 전기차를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테슬라의 첫 전기차인 로드스터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4년 정도를 일하고 나니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터리 분야에서 화학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실라를 창업했다. 리튬 이온 배터리 화학반응은 1991년 소니가 상용화한 뒤 현재까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성능도 매년 1~2% 개선되는 데 그치면서, 리튬 이온 배터리가 휴대전화부터 전기차까지 다양한 분야에 쓰일 수 있는 잠재력을 억제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생각했다.”


실리콘 기반 음극재가 적용된 리튬 이온 배터리 셀. 사진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
실리콘 기반 음극재가 적용된 리튬 이온 배터리 셀. 사진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

실리콘 기반 음극재는 무엇인가.
“실라의 첫 번째 제품이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 흑연을 대체할 실리콘 기반 음극재다. 실리콘을 쓰면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20% 높아지는데, 이는 향후 40%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리튬 실리콘 배터리는 현재 연구소 개발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실라는 리튬 실리콘 배터리를 상용화해서 가전제품부터 운송수단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흑연을 실리콘으로 대체해도 기존의 리튬 이온 배터리 공정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 제품을 쓰더라도 파트너사와 고객사는 생산 공정을 조정하는 데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고성능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장 경쟁력은 무엇인가.
“고성능 배터리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휴대전화부터 전기차 그리고 전력망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배터리 산업은 그러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배터리 혁신’이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이는 연구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실라의 배터리 기술은 이미 검증을 받았다.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 캐나다 연기금, 셔터 힐 벤처스 등으로부터 3억2500만달러(약 3572억원)를 투자 유치했다. 또한, 메르세데스-벤츠 모기업 다임러와 BMW 등 주요 완성차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올해 주요 사업 계획은?
“올해는 일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가전제품을 통해 실라의 기술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향후 주요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애초에 전 세계 전자제품과 자동차 시장을 염두에 두고 실라를 창업했고, 전 세계 수요를 맞추기 위해 확장성이 높고 실용적인 재료를 도입했다.”


Plus Point

튬 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차세대 배터리’는?

1991년 일본의 소니가 상용화한 리튬 이온 배터리는 현재 휴대전화부터 전기차까지 가장 널리 쓰이는 이차전지다. 전해질에 있는 리튬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면 전기가 발생한다. 하지만 폭발 위험성이 있고 내구성도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할 ‘차세대 배터리’로 리튬 실리콘 배터리를 비롯해 리튬 메탈, 리튬 황, 리튬 티타늄 화합물, 전고체 배터리 등이 꼽힌다.

리튬 메탈 배터리는 흑연 기반 음극재를 리튬 금속으로 대체한 배터리다. 리튬 메탈 배터리 에너지 밀도는 리터당 1000Wh(와트시)로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의 한계로 여겨지는 리터당 800Wh를 뛰어넘는다. 

LG화학은 양극재에 황탄소 복합체, 음극재에 리튬 메탈 등 경량 재료를 사용한 리튬 황 배터리를 차세대 배터리로 개발하고 있다. 이 배터리는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와 비교해 에너지 밀도가 1.5배 이상 높고, 희귀 금속을 사용하지 않아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는 양극재로 희귀 금속인 니켈, 코발트, 망간을 주로 쓴다. LG화학은 향후 무인기(드론)와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AM) 등에 리튬 황 배터리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리튬 티타늄 화합물 배터리는 흑연 기반 음극재 대신 리튬 티타늄 화합물을 사용해 더 무겁다. 하지만 가격이 싼 데다 초고속 충전이 가능하고 배터리 내구성이 높아 영하 날씨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한다. 수명도 길다. 일본 제조 업체 도시바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한 배터리다. 효율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전기차 보급을 크게 앞당길 수 있는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선두 주자는 일본의 완성차 업체 도요타다. 도요타는 2008년 차세대 배터리 연구소를 세우면서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전 세계 전고체 배터리 특허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안에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시범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