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상무 국민대 공업디자인학, 핀란드 알토대 MBA, 2003년 LG전자 입사, 전 생활가전(H&A) 디자인연구소 책임 / 사진 LG전자
김수연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상무
국민대 공업디자인학, 핀란드 알토대 MBA, 2003년 LG전자 입사, 전 생활가전(H&A) 디자인연구소 책임 / 사진 LG전자

LG전자가 올해 2분기 매출 17조1139억원, 영업이익 1조112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역대 2분기 중 최고 실적이며, 영업이익은 2009년 이후 12년 만에 1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이번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인 6536억원이 생활가전(H&A)에서 나왔다는 점을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LG전자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고, 그 판단은 옳았다. 그리고 그 전략의 최정점에는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가 있다.

붙박이 형태로 설치하는 ‘빌트인(built-in)’ 가전 중에서도 초(超)프리미엄 라인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는 차별화된 주방을 원하는 고객군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이를 디자인한 김수연 디자인경영센터 상무를 ‘조선비즈’가 최근 인터뷰했다. 김 상무는 1980년생으로, 지난 2019년 만 39세의 나이에 별을 달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30대 여성 상무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임원 발표가 난 2019년 11월 말쯤, 퇴근길에 직속 상사 비서실에서 다음 날 아침 일찍 면담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나간 면담 자리에서 상무 승진 소식을 들었다. 감사 인사와 다짐까지 말씀드리고 나왔지만, 방을 나오면서 손발과 다리가 떨렸던 기억이 난다. 예상치 못했던 소식에 놀랐고, ‘젊은 인재, 여성 인재’라는 타이틀에 대한 부담감이 몰려왔다. 기쁜 마음보다는 어떻게 잘해야 할지 걱정이 컸다. 내가 좋은 선례가 돼야 더 많은 후배가 기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상무 직위에 디자인 수석전문위원 타이틀을 함께 주셔서 ‘내가 잘하던 일을 더 잘하자’는 다짐을 했었다.”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선두를 달릴 수 있었던 본인만의 무기는 무엇인가
“너무 뻔한 답일 수 있지만, 전문성과 끈기라고 생각한다. 담당자 시절 해외 전시회를 다녀보니 당시 LG전자는 이미 세계적인 가전 업체였음에도 유명 인테리어 가게나 가구 매장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빌트인 비즈니스 없이는 글로벌 1위 가전 업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빌트인 가전을 제안하고 설득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처음 제안한 디자인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업적 관점에서 ‘숫자’ 공격이 들어오면 디자인의 감성적 가치는 쉽게 지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에서 디자이너들도 끊임없이 설득하며 디자인을 완성하는 집요함이 중요하다. 탄탄한 머리와 단단한 마음, 논리를 혼합해 최적의 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전문성과 끈기만으로 여성이 유리천장을 깰 수 있을까
“성별에 대한 장벽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포기할 수는 없다. 먼저 다가가 벽을 허물어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진정성 있게 업무와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요즘 우리 조직에서 자주 하는 얘기인데, 남녀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이 차이를 잘 살려야 한다. 각각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보완을 한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각각 다른 성향의 멤버들이 원팀으로 서로 신뢰하며 일할 때 시너지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여성으로서 꼼꼼하고 감성적인 강점을 최대한 강화하되, 약점인 감정적 모습은 평균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자인 임원은 특히나 다른 직군 임원 대비 차별화된 자질이 필요할 것 같다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창의력 그리고 그 창의력을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모두 좋은 것을 아는 힘으로 연결된다. 새로운 것을 봤을 때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오래된 것을 봤을 때 그렇게 오래갈 수 있었던 좋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느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것, 좋다는 것은 직접 접해보고 써보려고 한다. 좋은 것은 왜 좋은지, 나쁜 것은 왜 나쁜지, 어떻게 하면 좋아질지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이 습관이 창의력과 가시화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됐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영감을 주는 ‘질 좋은’ 재료를 찾는 방법 그리고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요즘은 핵심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능력이 되는 시대다. 그렇지만 일차적으로는 많은 정보를 접해봐야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흥미가 있어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이차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은 내 흥미를 업무와 연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들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결과물과 연결될 수 있다.”

신입사원 시절 챙기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나
“다시 20대, 또는 신입사원으로 돌아간다면 선배들과 교류를 늘리고 싶다. 요즘 선배들이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 10년생)의 성향을 공부하고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그들의 노하우와 경험에서 오는 직관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선배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 올드하고 진부한 것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현명하고 영리하게 선배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내 것으로 전환하면 좋겠다. 어릴 땐 나도 몰랐다. 똑똑하니까 나 혼자 다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여러 부류의 팀장님들, 선배님들을 겪어보니 각각의 장단점이 보였다. 훌륭하지 않은 선배에게도 장점은 있고, ‘저런 선배가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좋은 가르침일 수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선배가 있다면, 어떤 점을 배웠나
“모셨던 대부분의 리더로부터 많은 점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특히 퇴임하신 조성진 전 최고경영자(CEO)의 일관된 개발 전략과 제품에 대한 열정을 존경한다. 제품 개발 단계부터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퀄리티를 만들어 내고 일관된 노력으로 끝까지 성공시키는 힘을 직접 지켜보며 대단하다고 느꼈다. 당시 담당자였는데, 정기적으로 팔로우업 보고를 해야 해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큼 열심히 자긍심을 가지고 몰입해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30대에 임원이 되고 싶은 후배 직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30대에 임원 꼭 안 달아도 된다. 그러나 본인이 일하는 분야에서 빠른 업적을 남기고 싶은 후배들에겐 인생을 디자인해 볼 것을 권한다.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나를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내 인생을 더 진지하게 계획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업무 프로젝트는 계획과 리뷰, 수정을 반복하며 철저히 관리한다. 그러나 정작 내 인생과 내 하루는 제대로 계획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내 생활, 루틴을 체계화해 생활화, 습관화하는 것이다.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Plus Point

인사 혁신 거듭하는 LG전자…
순혈주의 깨고 ‘나이키 맨’ 영입

LG전자가 1980년대생 임원 발탁과 더불어 순혈주의를 타파하는 등 인사 혁신에 나서고 있다. LG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정순호·이성진 상무를 각각 생활가전(H&A) 온라인 영업 담당과 신사업 태스크(Task) 리더로 영입했다.

정 상무는 나이키코리아에서 15년간 디지털 커머스 업무를 담당한 인물이다. 온라인 중심으로 급변하는 시장 상황과 소비자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전자의 온라인 판매 비중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기준 25%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 중심으로 비즈니스 구조 전환에 성공한 나이키의 ‘한 수’를 벤치마킹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SK매직 출신 이 상무는 업계에서 ‘전략통’으로 꼽힌다. LG CNS와 SK네트웍스에서 신규 사업과 인수합병(M&A) 업무를 수행했다. SK네트웍스가 SK매직을 인수할 때도 주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는 LG전자가 외부 인재를 적극적으로 수혈해 그룹 내부를 역동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