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희 스톰벤처스 창업 파트너 겸 대표 하버드대 응용수학, 시카고대 법학 석사(JD),전 벤처 로 그룹(Venture Law Group) 변호사 사진 스톰벤처스(Storm Ventures)
남태희 스톰벤처스 창업 파트너 겸 대표 하버드대 응용수학, 시카고대 법학 석사(JD),전 벤처 로 그룹(Venture Law Group) 변호사 사진 스톰벤처스(Storm Ventures)

많은 스타트업 관련 도서가 창업 후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로 ‘제품-시장 최적화(Product Market Fit·이하 PMF)’를 꼽는다. 넷스케이프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은 PMF를 “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사업하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특히 신사업으로 승부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PMF 달성이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런데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은 PMF 달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PMF를 이룬 뒤 영업과 마케팅 자원을 급격히 늘렸지만, 신규 고객은 제자리인 반면 현금은 점점 소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벤처투자자 남태희와 스타트업 창업가 밥 팅커(Bob Tinker)는 “번창 단계로 가기까지 빠진 고리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시장 진출 최적화(Go-To-Market Fit)’라고 명명했다. 그들은 “B2B는 시장 진출 최적화에 성공해야 비로소 ‘생존’에서 ‘번창’ 단계로 도움닫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태희는 B2B 기업 중심 투자사 ‘스톰벤처스’ 창업 파트너 겸 대표다. 12개 유니콘(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 기업)을 포함해 기타 성공적인 기업들의 초기 투자자로 유명하다. 2007년엔 국내 게임회사 ‘컴투스’ 코스닥 상장 후에도 투자를 계속해 2013년 약 1100% 수익률을 기록한 바 있다.

밥 팅커 메타모프 파트너스 대표 파트너 버지니아 주립대 시스템 공학과,스탠퍼드대 MBA, 전 모바일 아이언 창업 CEO 사진 스톰벤처스(Storm Ventures)
밥 팅커 메타모프 파트너스 대표 파트너 버지니아 주립대 시스템 공학과,스탠퍼드대 MBA, 전 모바일 아이언 창업 CEO 사진 스톰벤처스(Storm Ventures)

밥 팅커는 모바일 시큐리티 회사 ‘모바일 아이언’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로, 현재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B2B 스타트업 메타모프 파트너스(Meta-morph Partners) 대표 파트너다. 모바일 아이언은 회계 법인 딜로이트가 매년 북미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500대 기술·미디어 기업을 뽑아 발표하는 ‘패스트 500 (Fast 500)’에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선정된 바 있다. 둘은 작년 12월 국내 출간된 ‘생존을 넘어 번창으로(Survival to Thrival)’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이코노미조선’은 3월 11일 두 저자를 화상 인터뷰했다. 다음은 저자들과의 일문일답.


시장 진출 최적화란 한마디로 무엇인가.

남태희 “‘행복한 소비자’가 있는지 여부다. 행복한 소비자란, 당신의 제품을 좋아하고, 제품에 대한 충성심이 높으며, 이탈률이 적은 소비자다. 또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반복 가능한 성장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시장 진출화의 요건이다.”


시장 진출 최적화를 거쳐 성공한 사례를 들어달라.

밥 팅커 “두 가지 사례를 들겠다. 하나는 내가 창업했던 ‘모바일 아이언’이다. 2008년 모바일 시큐리티 분야를 개척해 설립했고, 2014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2010년 시장 진출 최적화를 달성한 것이 성공의 기폭제가 됐다. 한 분기에 10명 정도였던 고객이 그 당시 4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내게는 그것이 시장 진출 최적화를 알리는 신호였다. 두 번째는 한인 교포 에이프릴 고(29)가 이끄는 ‘스프링 헬스’라는 정신 건강 관리 스타트업이다. (상담, 인지 행동 능력 치료 등) 정신 건강 관련 서비스를 거대 기업에 제공한다. 이 회사는 최근 1억9000만달러(약 2350억원)를 유치한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번창하는 스타트업이 되려면 영역 리더(category leader·해당 산업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존재)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남태희 “시장 컨설턴트나 ‘가트너’ 같은 리서치 회사가 당신의 비즈니스를 새로운 시장이라고 부르고, 당신 회사를 시장을 선점한 초기 리더라고 명명하면 투자자들이 몰려올 것이다. 투자금이 들어오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해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고, 이는 시장에서 영역 리더로서의 당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쿠팡 같은 회사가 대표적 사례다. 승자가 되기 위해 영역 리더로서 입지를 빨리 굳혀야 하는 이유다.”


스타트업은 언제 (번창을 위한) 속도를 내고, 언제 속도를 줄여야 하나?

밥 팅커 “우선 ‘영역 리더가 될 기회가 있고, 속도를 내야 할 명분이 있는가?’를 고려해 봐야 한다. 만약 그 대답이 ‘예스’라면, 두 번째로 회사가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고 시장을 주도하는지, 고객 수가 늘어나는지를 봐야 한다. 세 번째로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은 영업 담당자를 구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다. 흥미롭게도 영업 담당자를 수월하게 구할 수 있다는 건 회사가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속도를 낼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스타트업이 생존을 넘어 번창 단계로 들어가면 구성원의 역할과 기업 문화 등 모든 것이 바뀐다. 이때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

밥 팅커 “마인드셋 변화가 필요하다. ‘생존’이 ‘어떻게 하면 안 죽고 살아남을까’를 생각하는 단계라면, ‘번창’은 ‘어떻게 하면 승리할까’를 생각하는 단계니까.”

남태희 “생존 단계에서는 투자 자본 수익률(ROI)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비용 지출을 막기 위한) 절약(frugality)이 필요하다. 하지만 번창 단계에 접어든 스타트업은 이미 많은 돈을 펀딩했다. 이제는 선두 주자로 치고 나가기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계산된 무모함(calculated recklessness)이 필요하다. 또 하나 거론하고 싶은 것은 번창 단계에선 스타트업 초기 구성원의 역할과 성격이 모두 바뀐다는 점이다. 영업 부사장을 예로 들어보겠다. 스타트업 초기에 영업 부사장 두 명이 영업 전반을 다 맡아 했다고 치자. 회사가 커지면 영업 부사장 밑에 영업 직원이 50명, 나중엔 500명씩 늘어날 수 있다. 스타트업 초기 단계 부사장은 지도도, 보급품도 없이 새로운 길을 뚫는 개척자다. 반면 50명의 영업 직원을 둔 부사장은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멜 깁슨 같은 전사 리더(warrior leader)가 돼서 경쟁자들과 직접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러다 500명의 영업 직원을 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면 대규모 군대를 관리, 감독하는 장군 같은 영업 부사장이 필요하다.”


스타트업 몸집이 커지면 초기에 회사를 만들었던 핵심 인력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때도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나.

밥 팅커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사실 기업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이다. 초기 멤버들이 회사에 기여한 부분은 충분히 존중하고 그들이 변화한 조직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만일 당사자가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회사 밖엔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그들은 스타트업 초기 시작 단계를 거친 유경험자들의 조언과 지혜를 필요로 한다. 이런 기업을 돕는 것이 많은 예비 창업자를 위한 재능의 재활용이 될 것이다.”


스타트업이 번창 단계에 들어가면 과거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들이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이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하다.

밥 팅커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 투자자들과 상담해서 자신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스타트업 리더를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멘토를 찾는 것이다. 이 멘토는 비교적 최근에 당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스타트업 리더들이어야 한다. 2~4년 정도 앞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적합하다. 셋째, 다행히도 요즘엔 책이나 영상 콘텐츠를 통해 많은 정보를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리더가 언제나 ‘이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What’s next)’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 환경을 비교한다면.

남태희 “미국은 (성장에서 번창까지 가는) 각 단계에 해당하는 다양한 스타트업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갓 시작해서 초기 자금을 확보하고 고객 모집에 나선 스타트업은 많은 반면, 번창 단계로 들어간 곳은 적은 편이다. 특히 B2B 부문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윤희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