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준 차기 한국재정학회장 서울대 경제학,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현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전영준 차기 한국재정학회장 서울대 경제학,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현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현재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인 걸 누가 모르겠는가. 이 사실을 ‘펑펑 써도 된다’는 근거로 들면 진짜 양심이 없는 거다. 굉장히 무책임하다. 그러고도 자녀나 손주 얼굴 볼 면목이 있나.”

올해 4월 제43대 한국재정학회장에 취임(현재는 학회 부회장)하는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2월 23일 서울 한양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국가 채무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속도를 바탕으로 세수 기반의 급격한 붕괴가 머지않은 나라가 한국”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전 교수는 나랏빚 집계에서 빠진 국민연금, 사학연금, 금융 공기업, 건강보험 등의 부채를 언급하며 “전반적으로 한국의 부채 수준이 굉장히 과소평가돼 있다”라고도 했다.

전 교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 재정 건전성이 악화한 사실보다 재정 규율이 무너진 사실이 더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쉽게 예산을 증액하고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남발하는 게 언젠가부터 너무 당연시되고 있다”며 “재정 기강이 무너지면 그 국가는 파국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새 대통령은 인기영합적인 지출 기조에 편승하는 대신 어렵고 힘든 길이어도 재정 기강 바로 세우기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 교수의 조언이다. 3월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선출됐다.

그는 “단순히 재정 준칙을 도입하는 수준으로는 의미가 없다”며 “재정 건전성을 어떤 수단으로 이룰지, 지출을 어떻게 통제할지, 부채를 어디까지 관리할지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짜야 한다”고 했다. 또 “국가 리더가 그 재정 준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편성한 추경만 10번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추경 자체는 필요하면 해야 한다. 국가가 그 돈을 추경 목적에 맞게 쓴다는 조건만 제대로 지킨다면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10번의 추경 가운데 7번을 코로나19 사태 이후 편성했다. 코로나19 추경의 목적은 크게 방역 강화와 피해 계층 지원이었다. 그렇다면 문 정부는 추경 목적에 부합하게 돈을 잘 썼을까. 개인적으로, 정부가 추경 분배 전략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본다. 교수인 나를 예로 들어보자. 정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뿌린 덕분에 나도 수십만원을 받았다. 이게 적은 액수라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내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는 돈도 아니었다. 국가의 도움이 절실했던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원했어야 한다. 나라 곳간만 잔뜩 축내고 누구도 크게 만족하지 못한 결과를 냈다.”

약 17조원 규모의 올해 첫 추경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추경 규모가 너무 작다고, 30조원 이상 편성했어야 한다는 불만이 나왔다.
“예산 증액하고 재정 가져다 쓰는 게 언젠가부터 너무 당연시된다. 재정학 전공자로서, 문재인 정부에 와서 재정 건전성이 악화한 것보다도 재정 규율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더 씁쓸하다. 과거에는 재정 규율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지금은 경제 부처에 대한 정치권의 입김이 세지고 공무원의 생각도 변하면서 재정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는 듯하다. 특히 문 정권 때 재정 규율 붕괴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것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재정 기강이 무너지면 그 국가는 파국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

재정을 적극적으로 써도 된다는 쪽에서는 우리나라 국가 채무 비율이 OECD 평균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은 45.4%로, OECD 평균인 130.4%보다 낮다. 그런데 국가 채무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속도를 다르게 표현하면 ‘세계에서 세입은 가장 빨리 줄고 세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정도가 될 것이다. 세수 기반의 급격한 붕괴가 머지않아 다가오는 나라가 한국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현재 속도로 가면 우리나라의 채무 비율이 2030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80% 수준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2030년은 겨우 8년 후다. 2022년 현재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이 OECD 평균 이하인 걸 누가 모르겠는가. 이 사실을 ‘펑펑 써도 된다’의 근거로 드는 사람은 진짜 양심이 없는 거다. 굉장히 무책임하다. 그러고도 자녀나 손주 얼굴 볼 면목이 있나.”



한국 재정 상태의 민낯을 제대로 보면 이미 건강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던데.
“맞다. 나랏빚은 중앙·지방정부의 회계·기금 채무를 현금주의 기준으로 파악한 국가 채무(D1)와 일반정부 부채(D2), 공공부문 부채(D3)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본다. 발생주의 기준인 D2와 D3는 현금이 들어오고 나간 것만 파악하는 D1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다. 이 중 국제 비교 기준으로는 통상 D2가 쓰인다. 그런데 D2에는 국민연금 부채와 사학연금 부채가 빠져 있고, 금융 공기업 채무도 누락돼 있다. 그리고 건강보험은 국가 재정 범위에 들어가 있지도 않다. 지금 말한 이 모든 게 재정을 이미 갉아먹고 있거나 조만간 갉아먹을 ‘시한폭탄’이다. 그런데도 나랏빚을 논할 때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부채 수준이 굉장히 과소평가돼 있다는 말이다.”

새 정부는 재정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보나.
“일단 재정 규율부터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정부가 단순히 재정 준칙을 도입하는 수준으로는 의미가 없다. 재정 건전성을 어떤 수단으로 이룰지, 지출을 어떻게 통제할지, 부채를 어디까지 관리할지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짜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 리더는 그 재정 준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 이전 세대가 만든 빚더미에 깔려 등골이 휠 미래 세대를 생각한다면 인기영합적 지출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 기간에 후보들 공약을 보면 인기영합적인 지출 약속이 많았다.
“원래 공약이라는 게 비현실적일 때가 많지만 이번 대선은 특히 심했다. 예컨대 모든 국민에게 연 100만원씩 주겠다는 보편 기본소득 공약만 해도 매년 50조원이 필요하다. 50조원은 서울시 예산보다 큰돈이다. 그런데 연 100만원이면 한 달에 받는 돈은 10만원 미만이다. 10만원이 주는 가치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재정의 의무지출 부담 대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재정 지출을 지속해서 늘리자는 사람들은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한다.
“내 나이가 60에 가깝다. 솔직히 국가 재정이 적자여도 큰 문제 없이 살다가 간다. 그런데 우리 자녀와 자녀의 자녀는 어떤가. 버는 사람은 매우 적고 쓰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은 사회에 살게 된다. 지금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 모두 미래와 무관하다. 겉으로는 미래 세대를 위하는 척해도 자기가 겪을 일이 아니니 진지하지 않다. 이들이 재정 지출을 쉽게 늘리는 건, 쉽게 늘릴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해서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쉽지 않게 만들면 된다. 재정 규율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