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소비자학과 교수현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장, 유튜브 채널 ‘트렌드코리아TV’ 진행,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2008년부터 매년 출간)’ ‘더현대 서울 인사이트’ ‘마켓컬리 인사이트’ ‘트렌드 차이나’ 저자 사진 미래의 창
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소비자학과 교수현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장, 유튜브 채널 ‘트렌드코리아TV’ 진행,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2008년부터 매년 출간)’ ‘더현대 서울 인사이트’ ‘마켓컬리 인사이트’ ‘트렌드 차이나’ 저자 사진 미래의 창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 약자는 항상 포식자의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0월 5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트렌드 코리아 2023(미래의창)’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2023년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교토삼굴(狡兔三窟)’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개의 굴을 파놓는 토끼처럼 재난이 닥쳤을 때 피할 수 있는 플랜 B, 플랜 C를 마련해 내년에 예상되는 경제적·지정학적 위기를 극복하라는 뜻이다. 

2008년부터 매년 이듬해 트렌드를 관측하는 전망서로 출간되는 ‘트렌드 코리아’는 10가지 키워드의 두운을 합쳐 단어를 만들고, 그에 맞는 10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내년도 타이틀은 ‘RABBIT JUMP’다. 세계정세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며 부정적인 전망이 압도하고 있지만, 웅크렸던 토끼가 더 높이 점프하듯 비약적인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았다.


2023년 평균이 사라진다 

첫 번째 키워드는 ‘평균 실종(Redistribution of the Average)’이다. 소득의 양극화와 사회 갈등과 분열이 세계적인 현상이 되면서 중간이 사라지고 있다. 소비자는 초절약 상품을 찾으면서도 동시에 초고가 명품을 찾는다. 이에 따라 정규 분포로 상징되는 대중(mass)은 위축된다. 이 시기 우리는 무난하고 평범한 보통의 시각이 아닌 탁월함·차별화·다양성의 시각으로 무장해야 한다. 

김 교수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지던 전향성이 사라지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이 내년도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라며 “다수가 선호하는 매스 마켓(대량 판매 시장)이 아닌, 더 뾰족하게 나만의 타깃에 일치하는 시장을 파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불경기가 지속됨에 따라 무(無)지출과 조각구매, 공동구매 등 알뜰 소비를 추구하는 ‘체리슈머(Cherry-sumers)’도 부상할 조짐이다. 멤버십이 주는 혜택은 부지런히 따먹으면서 막상 구매는 하지 않는 얌체 같은 체리피커(Cherry picker)와 유사하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극한의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하나의 소비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불황기라고 저렴한 상품만 찾는 건 아니다. 불황기 소비자는 생존을 위해 사는 상품은 극도로 가성비를 따지지만, ‘사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는 상품에 대해선 자금을 총동원한다. 기업은 이에 대응해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만들고 불가항력적인 수요를 창출하는 ‘뉴 디맨드 전략(New Demand Strategy)’을 구사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오피스 빅뱅(Office Big Bang)’이 벌어질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일터로 복귀를 거부하는 ‘대사직(大辭職·Great Resignation)’, 최소한의 일만 하는 ‘조용한 사직(Quite Quitting)’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 조직과 개인은 새로운 방식의 일식을 고민해야 한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에게 보수나 복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성원이 성장해 나아갈 수 있는 회사다.

인간관계에선 밀도보다 스펙트럼이 중요한 ‘인덱스 관계(Index Relationships)’가 선호될 전망이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목적 지향적 만남이 대세가 된 지금, 소통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관계가 여러 인덱스(색인)로 분류되고 정리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인간관계의 층위가 기본부터 변하고 있다”라고 진단하며 “소비란 결국 관계의 문제다. 하나를 쓰더라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가 중요하다. 관계의 변화는 우리의 경제 트렌드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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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몰입으로 자기 발견 추세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과몰입하는 ‘디깅 모멘텀(Digging Momentum)’도 내년 10대 키워드로 선정됐다. 요즘 세대는 과도한 몰입을 통해 자기를 찾고, 발견하고, 표현하고, 과시한다. ‘디깅’이라는 말은 ‘채굴, 발굴’이라는 의미로, 특정한 대상을 깊이 파고들어가 종국에는 자기 존재를 발견하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을 뜻한다. 레고 블록을 모으거나 ‘해리포터’나 ‘마블 시리즈’에 몰입하는 식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MZ 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X·베이비부머·산업화 세대 모두 젊어지는 것을 최고의 미덕이자 지향점으로 삼는다. 일각에선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몰입을 택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일상과 적절히 어우러진다면 행복한 인생의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조언이다.

어리게 사는 걸 미덕으로 내세우는 경향도 주목된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는 모두가 젊은이로 남고자 하는 ‘네버랜드 신드롬(Neverland Syndrome)’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단지 외모를 젊게 가꾸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과 가치관 전반에 걸쳐 청년식 사고가 ‘추앙’되고 있다. 유아적이고 무책임한 자기중심주의가 아닌, 청년의 신선함과 발랄함을 활용해 개인과 사회 모두 진정한 성숙을 이뤄야 한다. 

내년에 주목할 세대로는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알파 세대(Alpha Generation)’가 꼽혔다. 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이 ‘엄마’가 아닌 ‘알렉사’일 만큼 순수 디지털 원주민이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두가 셀러브리티인 세대다. 김 교수는 “이 세대는 단순히 다음 세대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종족”이라며 “이들의 꿈과 정체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내년에 주목할 기술은 ‘선제적 대응 기술(Unveiling Proactive Technology)’이다. 지금까지 기술은 인간이 요구하면 그것을 해결해주는 형태로 발전해 왔으나 앞으로는 인공지능(AI)으로 개인화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요구가 있기 전에 필요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리란 전망이다. 

가상공간이 새로운 터전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공간의 힘’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김 교수는 사람을 모으고 머물게 하는 공간의 힘을 ‘공간력(空間力·Magic of Real Spaces)’이라 정의했다. 

공간 자체의 힘으로 사람을 끌어당기거나 가상과 실제 공간이 연계돼 효율성을 강화하고,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와 융합을 통해 지평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공간의 힘을 사용하라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