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전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 이사, 전 투아이 디지털 이사, 전 SHOWSCAN 엔터테인먼트(USA)부사장 / 사진 위지윅스튜디오
박관우
전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 이사, 전 투아이 디지털 이사, 전 SHOWSCAN 엔터테인먼트(USA)부사장 / 사진 위지윅스튜디오

물을 아끼느라 씻지도 않는 우주선 선장, 구멍 난 양말을 신은 조종사, 갱단 두목 출신 기관사, 세금 걱정하는 군사 로봇까지….

평범한 한국인이 우주를 구하러 나선다는 낯선 내용의 공상과학(SF) 영화 ‘승리호’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넷플릭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국내 첫 우주 영화로 꼽히는 승리호는 넷플릭스 공개 2일 만에 28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5일간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승리호는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총집합된 영화다. 할리우드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제작비를 가지고도, 화려한 CG(컴퓨터그래픽)와 VFX(시각특수효과)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한국형 SF 영화의 새 장을 연 승리호, 그 뒤에 숨은 기술력이 궁금해졌다. ‘이코노미조선’은 2월 16일 서울 신사동 위지윅스튜디오 본사에서 대한민국 CG 1세대인 박관우 위지윅스튜디오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CG·VFX 전문 제작사 위지윅스튜디오는 국내 7개 VFX사와 함께 승리호의 CG를 만들었다. 승리호 배급사인 메리크리스마스도 보유하고 있다. 디즈니 및 할리우드 영화에 참여할 정도의 기술력이 있다. 한한령(限韓令·한류 규제) 상황에도 ‘유랑지구(流浪地球·The Wandering Earth)’ ‘무한심도(無限深度⋅Infinite Depth)’ 같은 화제작을 제작하는 등 중국과의 관계도 탄탄하다. 잇따른 인수합병(M&A)을 통해 콘텐츠 IP(지식재산권) 기획부터 제작·특수효과, 배급·유통까지 아우르는 일괄제작 프로세스를 갖췄다.

박 대표는 “한국의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기술 기반 콘텐츠 공장을 만들어 K콘텐츠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승리호’는 2500컷 중 2000컷 이상 CG 작업이 이루어졌다. CG 작업에는 위지윅스튜디오, 덱스터스튜디오 등 8곳이 참여했다. 사진 넷플릭스
‘승리호’는 2500컷 중 2000컷 이상 CG 작업이 이루어졌다. CG 작업에는 위지윅스튜디오, 덱스터스튜디오 등 8곳이 참여했다. 사진 넷플릭스

승리호의 CG·VFX 제작, 배급을 맡았다. ‘완벽한 첫발을 내디뎠다’는 호평이 나오는데, 소감은.
“승리호는 ‘대한민국 최초 우주 콘텐츠’다 보니, 모두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다. CG·VFX에만 1000여 명이 10개월 이상 참여했는데, 다들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자’라는 의지가 넘쳤다. CG가 성공적으로 나온 데에는 제작사인 비단길과 조성희 감독의 역할이 컸다. 사실 국내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 바뀌는 것이 많아 준비했는데 버려지거나, 급하게 준비해야 하는 장면도 많은데 승리호는 이러한 점을 보완했다. 할리우드처럼 영화 내용을 미리 치밀하게 짜놓고 사전시각화된 동영상 콘티에 맞춰 진행해 효율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리도 어떤 장면이 필요하다고 계산할 수 있으니 다른 VFX사와 소통해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 국내 영화 제작 시장이 할리우드나 중국처럼 변화하고 있다고 느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승리호를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못한 것이 아쉽진 않나.
“승리호가 영화관에서만 개봉했다면 이렇게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기를 끌기 어려웠을 수 있다. 과거엔 훌륭한 작품을 만든다고 해도 유통채널이 방송국, 극장이 전부여서 우리나라 영화를 해외 관객이 보기 쉽지 않았다. 방송 시간, 스크린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OTT(Over the Top·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는 장벽이 없다. 언제든 전 세계 시청자를 만날 수 있어서 할리우드 영화와 얼마든지 맞붙을 수 있다.”

OTT로 공개하면 흥행하든, 흥행하지 못하든 수익이 같지 않나.
“K콘텐츠가 글로벌로 향하는 시작점이라고 보면 아쉽지 않다. 지금까지 세계인이 ‘미국이 지구를 구한다’는 스토리에만 익숙했다면, 승리호가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한국이 지구를 구한다’는 스토리에도 노출됐다. 많은 사람이 OTT를 통해 우리의 영화, 드라마를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 콘텐츠에 익숙해질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BTS도 유튜브를 통해 끊임없는 노출 전략을 활용했지 않나. 콘텐츠를 뿌려서 소통한 뒤, 더 큰 시장으로 향한 셈이다. K콘텐츠가 OTT라는 기회를 잡아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으면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수익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사실 영화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 흥행 여부를 모르는데, OTT와 협업하면 매출을 예상할 수 있다.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다음 콘텐츠를 계획할 수 있는 셈이다. 그간 영화 시장은 변동성이 커서 자본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투자자들이 영화 제작 산업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코로나19 타격은 없었나.
“타격이 크지 않았다. 이전부터 CG·VFX 기술 제작의 주요 영역이었던 영화나 드라마에 머물지 않고 전시, 광고 같은 뉴미디어 콘텐츠로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현재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래몽래인·에이치월드픽쳐스·이미지나인컴즈·더블유컬쳐), 뉴미디어(엔피·엑스온스튜디오), 공연(위즈온센·레드앤블루), 숏폼 콘텐츠(와이랩)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사를 가지고 있다. 영화 쪽은 타격을 입었지만 뉴미디어, 드라마 부문 덕에 양호한 실적을 냈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행사가 어려워지면서 하이테크 콘텐츠가 많이 필요해졌다. 대기업들이 코로나19 상황에도 계속해서 고객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브랜드 경험을 주려고 나서면서 관련 자회사가 덕을 봤다. 올해도 코로나19가 계속되고 있지만, 실적은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위지윅스튜디오는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종합 콘텐츠사로 키우고 있는 이유가 뭔가.
“미디어 환경이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서 순발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가지고 있는 IP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편집·CG 등 제작과 자사 콘텐츠 투자를 하려고 한다. 제작사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보다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갖고 유통과 협업 관계를 맺게 되면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도 봤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기업이었던 쿠쿠가 자사 상품을 만들어 시장을 석권했듯 우리도 콘텐츠 생산 역량을 갖추면 경쟁력이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면 우리의 기술력도 향상될 수밖에 없다. 위지윅스튜디오를 ‘기술 기반 콘텐츠 공장’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올해 자회사 2개를 상장한다. 상장 자금은 어디에 활용하나.
“래몽래인과 엔피는 올해 상장 절차를 추진할 전망이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원료를 확보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밸류체인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좋은 콘텐츠 회사를 인수하고 성장하려고 한다. 올해는 웹소설, 웹툰 등에 집중하려고 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K콘텐츠가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훌륭한 작가와 연기자, 감독이 있고, 세계적인 기술력도 있다.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OTT 시장이 열려 타이밍도 좋다. 글로벌 시장에서 상위 10위권에 드는 종합콘텐츠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