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룡 화승코퍼레이션 대표는 “고무와 화학 소재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덕분에 전기차 전환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화승코퍼레이션
허성룡 화승코퍼레이션 대표는 “고무와 화학 소재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덕분에 전기차 전환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화승코퍼레이션

“무거운 배터리가 탑재되는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더 가볍고(경량화) 주행 소음이 적은(정숙성) 부품이 필요합니다. 화승코퍼레이션은 고무와 화학 소재를 직접 개발하는 화승소재를 자회사로 둔 덕분에 다른 부품사보다 전기차 전환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허성룡(62) 화승코퍼레이션 대표는 6월 9일 경남 양산에 있는 화승코퍼레이션 공장에서 “올 들어 지금까지 수주한 친환경차 부품 규모만 매출의 10% 수준인 800억~900억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양산시 교동 유산공단에 있는 화승그룹 공장은 바쁘게 돌아갔다. 거대한 배합기가 설치된 화승소재 공장에서는 새카만 고무 덩어리가 복잡하게 이어진 처리 기계를 끊임없이 통과했다. 매캐한 고무 냄새가 나는 공장은 축구장 정도 크기였는데, 작업자 없이 기계만 돌아가고 있었다. 기계를 통과해 가공된 고무 제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적재하는 것 역시 로봇의 몫이었다.

화승소재에서 생산된 고무 제품의 절반은 바로 옆 화승알앤에이(화승R&A) 공장으로 옮겨진다. 화승알앤에이는 화승소재로부터 넘겨받은 고무 제품에 260~280℃의 열을 가해 가공한 뒤 외부 소음, 빗물, 먼지의 차 내 유입을 막아주는 실링 제품(웨더 스트립)과 각종 오일류·유압원을 자동차 주요 장치에 전달하는 고무호스 제품을 생산한다.

호스를 생산하는 화승알앤에이 각 생산라인에는 현대차·기아·폴크스바겐·GM(제너럴모터스) 등 완성차 업체명이 쓰인 팻말이 붙어있었다. 호스를 규격에 맞게 자르고 부품을 붙여 조인 뒤 검수하는 과정이 이뤄진다. 생산 물량에 따라 일부 라인은 전 공정이 자동화됐고, 일부에서는 작업자들이 직접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화승알앤에이의 최근 공장 가동률은 80~90% 수준이다.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을 서두르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화승알앤에이는 오히려 일감이 크게 늘었다. 실링 제품은 전기·수소연료전지 등 친환경차에도 동일하게 탑재되는 데다, 호스의 경우 냉각 시스템이 내연기관차보다 더 복잡한 전기차의 특성상 수요가 오히려 몰려들었다.

화승알앤에이는 신소재 개발을 통해 수소차 모델 ‘넥쏘’에 장착되는 저이온 용출 냉각호스를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다.

1953년 고무신을 생산하는 동양고무로 출발한 화승은 1978년 동양화공(현 화승알앤에이)을 설립해 고무를 원료로 하는 자동차 부품 시장에 진출하며 사업을 다각화했다. 사업 규모를 확대하면서 경영진은 화학 소재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1996년 화승소재를 설립해 자동차 부품과 가전제품, 생활용품을 생산할 때 필요한 소재 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덕분에 화승그룹은 소재 개발(업스트림)부터 부품 생산(다운스트림)에 이르기까지 산업용 고무 분야의 탄탄한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

화승알앤에이는 최근 소재 경쟁력을 기반으로 미래 차 전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사업 구조를 개편하고 나섰다. 자동차 부품 사업은 분할 신설 법인인 화승알앤에이가, 산업용 고무·투자 등 비자동차 부품 사업은 존속법인 화승코퍼레이션이 담당하는 인적 분할을 단행했다. 신설 법인 화승알앤에이는 친환경 자동차 부품 사업을 강화하고, 화승코퍼레이션은 에너지 등 신사업 투자를 강화할 방침이다.

화승소재 대표이사 겸 화승코퍼레이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허 대표는 1985년 화승알앤에이에 입사한 이후 FL사업본부장을 지내고 화승소재 소재사업본부장을 지냈다. 다음은 허 대표와 일문일답.


호스 부품을 조립하고 있는 화승알앤에이 자동화 라인. 사진 화승코퍼레이션
호스 부품을 조립하고 있는 화승알앤에이 자동화 라인. 사진 화승코퍼레이션

화승의 주요 고객사는 어디인가.
“아직은 현대차·기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글로벌 수주를 확대해 해외 업체 납품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이미 상당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현지에 네 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현대차·기아와 상하이GM(제너럴모터스의 중국 현지 합작법인), 폴크스바겐 세 곳의 매출 비중이 각각 30%이고, 창청자동차·창안자동차·리샹 등 중국 현지 업체에도 부품을 공급하면서 고객사가 다변화되고 있다. 북미 시장에서도 스텔란티스와 GM, 폴크스바겐의 수주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의 전동화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화승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전환이 이뤄지면서 많은 부품사의 일감이 줄고 있다. 하지만 화승의 매출 중 엔진 관련 부품은 7% 정도다. 핵심 제품인 실링은 전기차에도 동일하게 들어가고 호스의 경우는 전기차에서 수요가 더 늘어난다. 수소차가 등장하면서 관련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비결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직접 소재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1위 CMB(고무 제품) 업체인 화승소재는 고무와 플라스틱 성질을 모두 가진 친환경 소재 TPE와 실리콘 등 1500여 종의 화합물(compound)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소재 분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지금 각 계열사 내 흩어진 연구개발(R&D) 조직을 통합해 그룹 통합 기술센터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재료와 생산 기술, 설비 연구 등 모든 분야를 통합한 연구 조직을 늦어도 올해 말에는 출범할 계획이다.”


화승코퍼레이션이 주목하는 미래 신사업은 무엇인가.
“에너지와 항공·방산 분야다. 산업용 고무를 재료로 전력 이송, 에너지 저장(ESS)에 필요한 부품을 개발했다. 해상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에너지 분야 신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있다. 해상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으로 얻어진 전력을 이송하는 전선보, 접속재, 부유식 부품과 ESS 쿨링 부품 등이 대표적이다. 항공·방산 분야에서는 헬리콥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고무 부품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해외 기업이 공급하는 헬리콥터 실링 부품을 국산화하기 위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과 협력해 국책 과제로 부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연선옥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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