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는 10대 소년, 소녀가 눈길을 뚫고 데이트를 하는 스토리를 통해 안전성을 강조했다. 사진 유튜브
벤츠는 10대 소년, 소녀가 눈길을 뚫고 데이트를 하는 스토리를 통해 안전성을 강조했다. 사진 유튜브
매슈 룬 비즈니스 컨설턴트 현 포천 500대 기업 비즈니스 컨설턴트, 전 픽사 스토리 제작자, ‘픽사 스토리텔링’ 저자 사진 제프 제이콥슨 에이전시
매슈 룬 비즈니스 컨설턴트
현 포천 500대 기업 비즈니스 컨설턴트, 전 픽사 스토리 제작자, ‘픽사 스토리텔링’ 저자 사진 제프 제이콥슨 에이전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 한 중년 남자가 아들인 10대 소년을 차에 태우고 캄캄한 도로를 달린다. 소년은 여자친구와 영화관에서 데이트할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하지만 도착한 영화관엔 아무도 없고, 소년은 실망하며 돌아서려 한다. 그때 멀리서 차 한 대가 눈길을 헤치고 달려와 영화관 앞에 멈춘다. 조수석에는 소년이 기다리던 여자친구가 타고 있다. 소년을 만나기 위해 여자친구도 아버지를 졸라 약속 장소까지 온 것이다. 어린 연인들은 ‘궂은 날씨’라는 역경을 뚫고 만나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가 2018년 제작한 광고 영상 ‘눈 오는 날의 데이트(Snow Date)’ 내용이다. 벤츠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안전하게 달린다’는 메시지를 10대 연인의 데이트 스토리로 전달했다. 스토리 제작 전문가 매슈 룬은 2월 17일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기업도 훌륭한 스토리가 필요하다”면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담긴 스토리는 단순한 수치보다 브랜드 홍보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했다.

룬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에서 20년간 근무한 베테랑 스토리 제작 전문가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업’ 등 초대형 히트작 스토리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는 페이스북 등 포천 500대 기업에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2021년엔 미국 유명 강의 플랫폼 ‘빅스피크(Big-Speak)’에서 ‘올해의 최고 강연자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2022년 1월 국내에 출간된 ‘픽사 스토리텔링(원제 The Best Story Wins)’ 저자이기도 하다. 다음은 룬과의 일문일답.


기업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스토리를 보고, 듣고, 말하고 싶어 한다. 콘텐츠를 그대로 암기하면 내용이 5%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 반면, 스토리에 녹이면 65%나 남는다. 인지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에 따르면, 사람은 스토리를 통해 정보를 접할 때 기억력이 22배나 향상된다고 한다. 스토리는 단순히 콘텐츠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소비자로 하여금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깊은 유대감까지 느끼게 만든다. 보석을 사지 않는 사람도 ‘티파니 블루(티파니를 상징하는 연한 푸른색)’를 보면 로맨스를 떠올리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처럼.”

아디다스의 팔리 슈즈는 해양 폐기물을 자원으로 활용해 환경 보호에 동참한다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사진 셔터스톡
아디다스의 팔리 슈즈는 해양 폐기물을 자원으로 활용해 환경 보호에 동참한다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사진 셔터스톡

소비자들의 감흥을 불러일으킨 기업 스토리텔링 사례를 든다면.
“아디다스를 예로 들 수 있다. 바다를 떠도는 버려진 그물망은 해양 생태계를 해치는 주범으로 꼽힌다. 아디다스는 폐(廢)그물망을 소재로 한 팔리(Parley) 슈즈를 출시하면서 해양 쓰레기를 생체 공학적 소재로 탈바꿈시킨다는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이 스토리를 공유하는 팔리 슈즈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환경 보호에 동참하고 있다는 긍지를 가진다.”

책에서 훌륭한 스토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낚는 ‘후크(hook·갈고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집중력이 지속되는 시간은 고작 8초라고 한다. 스토리에 8초 안에 관심을 집중시킬 강력한 후크가 없다면, 사람들은 금세 흥미를 잃고 지루해한다. 강력한 후크는 독특하고, 예상하기 힘들며, 듣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픽사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은 ‘만약 슈퍼히어로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후크를 내걸었다. 스티브 잡스는 2001년 아이팟을 소개하면서 ‘만약 여러분들이 주머니 속에 수천 곡을 넣고 다닐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도발적인 후크를 사용했다. 영화 업계든 비즈니스 업계든 간에 사람들이 자신의 스토리에 귀 기울이도록 하려면 8초 안에 승부를 가릴 후크가 필요하다.”

매혹적인 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변화(change)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
“우리는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와 마주하길 바란다. 변화는 어렵고, 골치 아프다. 어떤 결정을 내렸는데, 그 결과가 우리 예상과 다르게 나타날 땐 당혹스럽다. 실제 생활에서 변화를 반기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스토리 속 등장인물들이 변화를 겪을 때 환호한다.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지 않고서도 간접적으로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기네 브랜드와 제품이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만약 소비자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떤 부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변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선 잠재 고객을 겨냥한 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잠재 고객들이 어떤 출신·성장 배경을 지녔는지, 가족이 있는지 싱글인지,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운동 외 다른 취미가 있는지 등등을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스토리에 잠재 고객들의 공통된 경험과 적절한 은유·비유를 녹여서 고객이 공감하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소비자는 기업이 들려주는 스토리를 통해 제품이나 아이디어 안에 숨겨진 콘셉트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반드시 특정 대상을 겨냥한 이야기만 만들 필요는 없다.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는 세계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먹힌다.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 안전에 대한 욕구 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영웅담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인기 스토리다. 기업은 영웅담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고객과 소비자를 영웅으로,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솔루션·아이디어를 영웅의 위대한 여정을 도와주는 조력자로 보는 것이다. 영웅담에선 영웅이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 아디다스 스토리에선 고객을 환경 보호라는 커다란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영웅으로, 친환경 소재로 만든 신발은 영웅이 목표를 달성하는 조력자로 볼 수 있다.”

탁월한 기업인은 훌륭한 스토리텔러라고 했다. 예시를 들어줄 수 있나.
“스티브 잡스는 2007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처음 아이폰을 선보이던 날, 탁월한 긴장과 이완의 기술(up-and-down tension and release)을 이용해 청중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그가 ‘오늘은 내가 2년 반 동안이나 기다린 바로 그날’이라고 운을 떼자, 청중은 기대에 차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잡스는 ‘지금까지 나온 스마트폰은 전혀 스마트하지 않았다. 오히려 멍청했다’고 해 고조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가 싶더니 바로 다음 순간엔 ‘반면 우리의 스마트폰은 컴퓨터만큼이나 스마트하다’는 말로 다시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를 전하고 싶다면 이처럼 청중을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워야 한다.”

창의적인 스토리를 생산하기 위해선 어떤 업무 환경이 필요한가.
“구성원들이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혁신적인 문화가 필요하다. 또한 직원들이 항상 조직 밖에서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접할 수 있어야 쉽게 번아웃되지 않고 활력에 넘칠 수 있다. 훌륭한 스토리는 이런 환경에서 탄생한다.”

오윤희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