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사장 연세대 경제학, 전 국민기술금융 투자심사역, 전 현대전자 정보통신본부 팀장, 전 스틱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장(상무) 사진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사장 연세대 경제학, 전 국민기술금융 투자심사역, 전 현대전자 정보통신본부 팀장, 전 스틱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장(상무) 사진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본격적인 긴축 정책에 돌입하며 시중의 현금을 거둬들이자, 초유의 호황을 맞았던 스타트업들도 중요한 변곡점을 맞았다. 증권 업계에서는 2021년까지 데카콘(기업 가치 10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을 바라보던 스타트업들이 현재의 기업 가치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 관계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상장 주식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어도 비상장 시장은 올해도 활황을 이어나갈 것으로 본다. 비상장 시장에는 여전히 유동성이 넘치며, 스타트업을 제외하면 ‘큰손’들이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VC 관계자들의 낙관론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다. 2021년은 한국 스타트업 시장에 여러모로 기록적인 한 해였다. 벤처 펀드의 신규 결성액이 9조2000억원을 돌파하며 투자 재원이 41조원 넘게 쌓인 것이다. VC들의 곳간은 그 어느 때보다 알차고 든든하다.

2월 8일, 서울 대치동 LB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박기호 대표를 만났다. 범LG가(家) VC로 잘 알려진 LB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가장 눈에 띄는 투자 및 회수 성과를 낸 투자사다. 680억원짜리 펀드를 2024억원으로 불려 성공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완료했다. 박 대표는 올해 스타트업 시장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면서 VC들 사이의 투자 경쟁도 치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상위 스타트업에 투자금이 집중돼 기업 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며 ‘옥석 가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투자 성과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2011년 결성한 680억원짜리 펀드를 2024억원에 청산하며 내부수익률(IRR) 24.3%를 달성했다. 한 펀드에서 하이브, 펄어비스, 덱스터(영화 ‘신과함께’ 등의 시각 효과를 담당한 특수 효과 업체), 스타일쉐어, 직방 등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에 두루 투자해 좋은 성과를 냈다. 특히 하이브에 65억원을 투자해 20배 넘는 수익을 냈으며, 펄어비스에는 50억원을 투자해 780억원을 회수했다. 2014년 결성한 1159억원짜리 펀드도 2월 만기였는데 청산 전에 벌써 3000억원대 중반까지 늘었다. 지금까지 달성한 IRR만 20%가 넘는 셈이다. 2021년 말 상장한 바이오 기업 툴젠, 제넥신, 또 올해 상장할 컬리(마켓컬리 운영사) 등이 특히 우수한 성과를 냈다.”

최근 시중 자금이 워낙 많아 투자금을 집행하는 VC 간 경쟁이 치열했다. 올해도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될지.
“올해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연초부터 주식시장이 조정을 받고 있는데 비상장 시장에서는 전혀 아무런 조짐이 나타나지 않으며, 오히려 스타트업의 몸값은 더 오르고 있다. 본래 증시 상승기에는 상장사의 몸값이 오르면 비상장사의 기업 가치가 금방 따라 오르지만, 하락기에는 상장사·비상장사의 주가 조정 간 시차가 크다. 게다가 작년에만 9조원 넘는 펀드가 새로 결성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비상장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가 하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넘치는 유동성이 스타트업의 몸값 상승을 주도해나갈 것이라는 뜻인가.
“유동성도 원인이라고 볼 수 있으나, 비상장사 외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부동산 투자 기회는 규제 때문에 막혀 있으며 상장 주식시장은 이미 조정을 받기 시작했고 저금리는 지속하고 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지속한 2년간 우리 사회에는 큰 변화를 위한 힘이 농축돼왔는데, 그것이 결국 스타트업에 대한 기대를 더해 투자 수요의 증가를 낳고 있다. 2년 동안 확대된 유동성은 팬데믹 종식 이후에도 새로운 산업 영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팬데믹의 수혜를 본 모바일 서비스, 디지털 분야에는 계속 돈이 몰릴 것이다. 다만 최근 2~3년간 기업 가치가 지나치게 급등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일부 기업의 주가는 일시적으로 상승 폭이 작아지거나 어느 정도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가 조정받을 것으로 보는지.
“선두 그룹에 있는 스타트업들은 견고한 기업 가치를 유지할 것이다. 반면 하위 업체들의 몸값은 조정받을 수 있다.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2000년대 초 우리나라에 수많은 포털 기업이 있었지만 결국 살아남은 회사는 네이버와 다음뿐이다.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도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결국 카카오톡 하나만 남았다.”

스타트업 ‘옥석 가리기’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옥석은 어떻게 가릴 수 있나.
“핵심 경쟁력의 유무를 잘 살펴봐야 한다. ‘내가 이런 서비스를 남들보다 먼저 출시했다’는 것은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없다. 다른 업체에서 따라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닌 서비스를 ‘사는’ 사람이다. 종국에 성공적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반려동물의 분비물로 건강도를 측정하고 식품, 보험 서비스까지 연계하는 피펫이라는 곳이 있다. 이 회사는 2년간 동물의 분비물을 갖고 일일이 실험하며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를 뽑아냈다. 이것은 경쟁사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지난해 모바일 플랫폼과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산업이 압도적으로 성장했다. 올해는 어떤 영역이 주목받을지.
“종합 커머스가 아닌 특정 분야에 국한된 ‘버티컬(vertical) 커머스’가 성장할 것이다. 예를 들어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명품의 온라인 쇼핑 수요가 급증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트렌비에 100억원을 투자했는데 월 매출액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21년 12월 거래액이 연초(120억원)와 비교해 4~5배가량 늘었다.”

버티컬 커머스 외에 어떤 산업이 유망할까.
“암호화폐 산업 생태계가 결국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주식시장이 급변동하는 와중에도 플레이투언(P2E·돈 버는 게임)과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기술을 적극 도입한 게임 회사들은 주가가 대폭 올랐다. 팬데믹으로 급성장한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시장도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사이버 공간에서 구현된 세상과 다양한 서비스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메타버스에 필요한 핵심 기술부터 메타버스 안에서 작동하는 NFT 경제까지 암호화폐 생태계는 하나의 큰 축을 이루게 될 것이다.”

바이오 벤처·스타트업은 한국거래소 상장 심사 관문이 높아져 엑시트가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기술 특례 상장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져 바이오 스타트업의 엑시트가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통할 만한 핵심 기술을 가진 바이오 기업에는 지속해서 투자할 생각이다. 핵심 경쟁력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은 결국 옥석 가리기 게임을 넘어서 ‘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VC들도 그것을 믿고 끈기 있게 버텨주는 힘이 필요하다.”

LB인베스트먼트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
“선택하고 집중하는 투자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처럼 창업 초기 단계에서 한 번 연을 맺으면 상장 및 엑시트 이후에도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 펀드를 따로 결성해 상장한 회사 지분을 취득하곤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기업 센코는 상장하기 전에도 투자했는데, 2020년 상장한 후 또 투자하기 위해 257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펀드를 포스코와 함께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