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정재봉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회장이 지난해 골프 의류 브랜드 ‘사우스케이프’로 패션 업계에 복귀해 주목받았다. 정 회장은 현대백화점그룹 패션 계열사 ‘한섬’의 창업자로, 2012년 회사를 약 4200억원에 매각했다.

창업자들의 인생 2막은 어떨까. 손수 일군 회사를 매각해 수백억에서 수조원대 자금을 한 번에 거머쥔 이들은 몇 년 후 동종 업계로 복귀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창업에 재도전하는 등 다양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본업 복귀로 주목
‘한섬’ 정재봉·‘카버코리아’ 이상록

정 회장은 1987년 한섬을 세우고 마인, 타임, 시스템 등 고급 의류 브랜드를 잇달아 선보여 연 매출 5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규모로 일궜다. 그는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에 한섬 지분 34.6%를 약 4200억원에 매각했다. 그렇게 패션계를 떠난 정 회장은 이듬해 경상남도 남해에 골프 리조트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을 세웠다. 당시 정 회장은 한섬 매각 대금 대부분을 이 리조트 건설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골프 사업에 주력하던 정 회장은 2018년부터 서울에 사무실을 꾸리고 골프 의류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그가 2020년 내놓은 사우스케이프 의류는 최고급(하이엔드) 브랜드를 표방한다. 사우스케이프는 백화점에 입점하지 않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 도산공원 근처에 있는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 ‘메종 사우스케이프’와 남해 리조트 내 프로숍, 자체 온라인몰 ‘사우스케이프숍’을 통해서만 제품을 판매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골프 산업이 호황을 맞은 가운데 정 회장의 사업도 탄력받고 있다. 사우스케이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18% 급증한 93억원을 기록했고, 매출은 469억원으로 전년 대비 46% 늘었다.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도 본업인 화장품 시장 복귀 가능성이 주목된다. 이 회장이 1999년 설립한 카버코리아는 대표 브랜드 AHC의 ‘이보영 아이크림’ 등이 홈쇼핑을 통해 인기를 얻으며 연 매출 4000억원 규모 업체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2016년 베인캐피털과 골드만삭스 컨소시엄에 지분 60.39%를 약 4300억원에 매각한 데 이어 2017년 글로벌 생활용품 업체 유니레버에 남은 지분 35%까지 넘겼다. 당시 유니레버는 카버코리아 지분 95.39%를 22억7000만유로(약 3조600억원)에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1조원 규모의 현금을 거머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후 엔터테인먼트 사업, 부동산 매입 등에 주력했다. 그는 현재 자신이 지분을 100% 보유한 투자 회사 ‘너브’를 통해 간접적으로 화장품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 너브의 최홍진 대표는 패션·화장품 전자상거래 업체 ‘피피비스튜디오스’의 최대주주(61.12%)인 위더코어 대표를 겸하고 있다. 또 너브가 지분 88.2%를 보유한 ‘필트’는 지난 1월 화장품 브랜드 ‘코에티카’를 출시,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필트는 마스크 ‘에티카’를 제조하는 업체다.


재창업 도전
‘락앤락’ 김준일·‘공차코리아’ 김여진

‘자수성가’의 대명사로 꼽히는 김준일 하나코비 회장은 회사 매각 이후 국내외에서 활발한 경영 행보를 이어왔다. 그는 1978년 락앤락의 전신인 주방생활용품 유통기업 국진유통을 설립해 몇 차례의 사명 변경을 거친 후 락앤락을 연 매출 5000억원대 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2017년 사모펀드(PEF)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락앤락 지분 63.56%(3496만1267주)를 약 6300억원에 팔았다. 매각 당시 김 회장 소유 지분은 2903만5919주로, 5200억원 규모(주당 1만8000원)였다.

이후 김 회장은 베트남에서 인생 2막에 도전했다. 락앤락의 전신인 ‘하나코비’를 되살리고 베트남에서 코비원(부동산 개발), 코비인(외식업), 코비로지스(물류업), 코비홈(인테리어 자재 및 가구 쇼핑몰) 등 4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기술 스타트업 투자에 주력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환경가전 전문 기술 기업인 ‘코비플라텍’ 대표이사에도 올랐다.

김여진 전 공차코리아 대표는 무려 두 번의 엑시트(매각 또는 상장을 통한 자금 회수)를 성공시키면서 ‘엑시트의 귀재’로 평가받는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 전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처음 접한 밀크티에 반해 2012년 공차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는 2년 만에 200개가 넘는 점포를 내며 성공 궤도에 오른 공차코리아 지분 100%를 2014년 사모펀드 운용사 유니슨캐피탈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340억원 규모였다.

이후 육아에 전념하던 김 전 대표는 돌연 실내 스포츠 테마파크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2016년 경기 용인시 죽전에 트램펄린 전용 테마파크인 ‘바운스 트램폴린 파크’ 1호점을 냈고,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입점해 지점을 5개까지 늘렸다. 이후 2018년 김 전 대표는 바운스 지분 100% 전량을 건설·건자재 기업 아이에스동서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235억원 규모다. 이로써 김 전 대표는 총 500억원대 수익을 냈다. 그는 이후 아직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남은 계열사 경영
‘까사미아’ 이현구

회사 매각을 계기로 경영 뒷선으로 물러난 창업자도 있다. 가구 업체 까사미아의 이현구 전 회장은 1982년에 설립한 까사미아를 2018년 유통 대기업 신세계백화점에 매각했다. 매각 지분은 본인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 전량(92.4%·681만3441주)으로, 총대금은 약 1837억원이었다. 이 회장은 이후 두 아들과 특판용 가구 전문 업체 우피아와 라까사호텔(서울·광명), 보관 서비스 업체 까사 스토리지(라까사웍스) 등 남은 계열사를 운영해왔지만, 경영 전면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기준 라까사웍스 지분 43.86%를, 2019년 12월 기준 라까사호텔 지분 36.15%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 매각으로 구설수에 오른 창업자도 있다. 정현식 해마로푸드서비스(현 맘스터치앤컴퍼니) 전 회장은 파파이스에서 근무하다 독립해 2004년 회사를 세웠고, 대표 브랜드인 햄버거 프랜차이즈 ‘맘스터치’를 성공적으로 일궈냈다. 정 전 회장은 2019년 10월 제7대 프랜차이즈산업협회장에 당선됐는데, 이후 한 달여 만인 2019년 11월 보유 지분 62.71% 중 57.85%를 PEF 운용사인 케이엘앤파트너스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약 2000억원 규모였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회사 안팎으로 잡음이 터져나왔다. 직원들은 고용 불안 등을 호소하며 노동조합을 설립했고, 현재까지 사측과 노사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프랜차이즈협회장, 선거 출마 적절성을 두고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정 회장은 여전히 협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임기는 2022년 12월까지다.

정 전 회장은 현재 주방·세탁세제 제조 업체인 슈가버블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해 2월 해마로푸드서비스 계열사였던 슈가버블 자본 100%(1620만주)를 250억원에인수했다.

이선목 조선비즈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