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조병수건축연구소 소장 하버드대 건축학 석사, 전 연세대 교환교수,전 미국 몬태나주립대 건축학과 부교수,전 덴마크 오르후스대 석좌교수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조병수 조병수건축연구소 소장 하버드대 건축학 석사, 전 연세대 교환교수,전 미국 몬태나주립대 건축학과 부교수,전 덴마크 오르후스대 석좌교수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1월 25일, 서울시가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건축가 조병수를 위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7년부터 격년으로 개최돼온 비엔날레는 이전까지 한국인 건축가를 단독 총감독으로 위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서울시의 이번 결정에 대해 건축계에서는 “뽑을 만한 사람을 골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조병수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 종로 트윈트리타워, 부산 기장의 박태준기념관, 남해 사우스케이프호텔·빌라, 부산 키스와이어센터, 거제 지평집, 압구정 퀸마마마켓, 천안 현대자동차 글로벌러닝센터 등을 설계했다. 전 세계 건축 학도들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현대건축: 비판적 역사(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에 등재되기도 했다. 

조 소장이 2023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위촉된 날, 서울 반포동 조병수건축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조 소장과 인터뷰는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건축에 대한 생각과 예술관을 나지막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목소리는 땅에 뿌리를 내린 듯 단단하고 견고했다.


최근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임명됐다. 한국인이 단독으로 총감독을 맡은 것은 처음이라던데.
“운영위원회가 10명의 건축가를 추천받아 투표로 뽑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적인 건축에 중점을 두고 선정한 것 같다. 100년 후 서울시의 마스터플랜을 만들자는 목표로, 공간이 부족하지 않게 고밀도를 유지하면서도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지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회 비엔날레는 ‘공유’를, 2회는 ‘집합’, 3회는 ‘안전한 도시’를 주제로 삼아 다소 사회적인 이슈를 다뤘다. 나는 현장형·실무형 건축가이기 때문에 실제로 서울시가 갖고 있는 문제와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둘 예정이다. 실험적이고 이상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고 환경적·공간적 관점에서 서울시를 어떻게 개선해나갈지 고민할 것이다.”

용적률을 높이면서도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지게 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해둔 방향이 있는지.
“과거 조선왕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산 좋고 물 좋은 자연적 이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나. 우리 조상들이 꿈꿨을 생기 있는 풍경을 살리기 위해 물길과 산길, 바람길을 잘 연결해보고자 한다. 드론이라든지 전기차 같은 현대 기술을 잘 접목하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비엔날레의 슬로건을 ‘땅의 건축, 땅의 도시’로 정했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박태준기념관. 사진 조병수건축연구소
부산 기장군에 있는 박태준기념관. 사진 조병수건축연구소

지난해 12월 부산 기장에 고(故) 박태준 포스코 회장 기념관이 들어섰다. 기념관의 설계 콘셉트가 궁금하다.
“박 회장이 생전에 앉아서 책을 읽고 산책을 하던 나무와 농가 주택 3채를 감싸는 형상으로 설계했다. 기존 주택을 허물고 큰 기념관을 짓기보다는 알을 품듯 자연스럽게 둘러싸는 형태로 만들었다. 기념관 안을 돌다 보면 뻥 뚫린 벽 너머로 나무가 보이고 포스코에서 재료를 가져다 만든 철제 의자도 보인다. 박 회장이 걸었던 공간을 사람들이 함께 걸으며 체험할 수 있고, 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람들이 직접 앉아보고 걸어보며 그의 삶을 느끼고 명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건축 공간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형식적 측면에서 시각적으로 강하게 부각되는 건축물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시각적으로 아름다워도 돌아서면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그에 비해 경험적인 것은 훨씬 더 강렬하게 인지되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 건축은 이성적이고 시각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본질적·본능적 경험과 인지다. 석사학위 논문 주제도 ‘경험과 인식’이었다. 형태 너머에 존재하는 실체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데 무게를 둔 건축을 제시해, 해당 학기 최고의 졸업 논문 두 점 중 한 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졸업 논문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당시 나는 형태가 없고 경험만 존재하는 건축물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대학원 졸업 논문에서는 석고로 된 거대한 사각형 덩어리를 잘라 시루떡처럼 쌓은 뒤 구멍을 뚫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아래로 내려가면 구멍과 구멍이 연결되며 바깥으로 시야가 트인다. 내부에는 이 같은 시각적 경험 세계가 존재하지만, 외부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당시 교수들이 내 졸업 논문과 다른 논문 중 어떤 작품에 최고상을 줄지 3시간 반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내 작품은 결국 상을 받지는 못했다. 깊이는 있지만 ‘형태’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한 형태나 공간의 양감 그 자체에 집중해, 관람자가 특정한 시공간에서 작품을 인지하도록 유도한다. 미국 유학 시절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았는지.
“내가 건축을 공부하던 때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대세였고, 대학원에 진학할 때쯤에는 해체주의가 부상했다. 형태에 관한 사조였다. 나는 그보다는 경험적이고 인식적인 것을 좋아했다. 내 건축은 특정 예술사조보다는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데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서양 건축물은 형태에 따라 양식을 나누지만, 그건 결국 표면적 차이일 뿐 공간 내면의 본질적 요소는 늘 같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경험하느냐다. 부석사에 가보면 산과 건물, 사람의 몸이 어떻게 위치하냐에 따라 경험이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그것이 동양 건축이 서양 건축과 다른 점이다.”

조 소장의 건축 예술을 관통하는 비정형성을 ‘마구’의 준말인 ‘막’으로 정의했다. ‘막’의 뿌리가 무엇일까.
“즉흥성이다. 한국의 지형과 날씨는 너무 복잡하고 불규칙해 우리는 늘 즉흥적으로 적응해야만 했다. 막사발도 척박한 흙으로 그릇을 만들다 보니 탄생한 결과물이다.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온 민족이다 보니 빛과 그림자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고, 건축에서도 도드라지는 빛을 구현하지 않는다. 막은 일본의 ‘와비사비(わびさび·투박한 자연스러움과 미완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일본 미학)’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와비사비는 온전하고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뒤 옥에 티를 살짝 집어넣은 것이기에 한국인의 눈에는 의도적이고 인위적이다. 반면 한국의 막은 온전하지 않으며 자연스럽다.”

경기 양평 수곡리에 있는 ‘땅집’이야말로 조 소장의 예술관이 집약된 작품 아닌가.
“땅집은 땅과 더불어 살며 주변의 모든 것을 품고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건축이다. 집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엄마 품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땅집을 어느 정도로 개방하고 높낮이를 어떻게 할지는 미리 정하지 않았다. 해당 지역의 바람이나 햇빛, 풍토에 잘 어울리도록 짓는 것이 중요하다. 거제도에 지은 ‘지평집’도 마찬가지다. 뒤쪽이 완전히 바다 쪽으로 트여 있어, 한쪽에서 보면 지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지상 건물이다.”

전통적 건축의 현대적 해석이란 무엇일까.
“문화와 전통은 계속 진화해나가는 것이다.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전통이 아니라 ‘옛것’일 뿐이다. 전통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환경에 맞춰 계속 변화해야 한다. 전통적 건축도 계속 발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제시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