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순 아일랜드박스 대표(오른쪽)와 공동 창업자인 전진호 대표. 박 대표가 전 대표의 과일 가게에 자주 찾아갔다가 함께 창업하게 됐다. 사진 아일랜드박스
박용순 아일랜드박스 대표(오른쪽)와 공동 창업자인 전진호 대표. 박 대표가 전 대표의 과일 가게에 자주 찾아갔다가 함께 창업하게 됐다. 사진 아일랜드박스

“농부들이 정성 들여 키운 농작물을 소비자가 최상의 상태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도 농부다.”

8월 20일 서울 강남에서 만난 박용순(51) 아일랜드박스 대표는 농부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그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농식품 창업 경진대회에서 발표를 마치고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고 했다. 박 대표는 자신을 “아일랜드박스라는 브랜드로 우수한 품질의 제주산 감귤을 전국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제주도 농부”라고 소개했다.

‘농부가 아니라 농산물 유통업자 아니냐’라는 질문에 그는 “농사를 짓는 사람뿐만 아니라 농산물을 유통하는 사람도 농부로 봐야 한다”며 “농부니깐 농식품부 주최 행사에서 사례를 발표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업과 인연이 없었다. 청소년기를 전주와 광주광역시 등 지방 대도시에서 보냈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난 뒤에는 삼성전자와 노키아 등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근무했다. 해외 근무도 많았다. 싱가포르에서만 10년 이상을 보냈다.

그는 2015년 아름다운 자연과 여유로운 삶에 반해 제주도로 정착지를 옮겼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글로벌 은행에서 외환 전문가로 일하던 아내는 완강히 반대했다. 그는 여러 해를 두고 아내를 설득했고, 결국 아내도 그의 의견에 따랐다.

박 대표는 “무위도식하는 제주도에서의 삶이 한동안은 편안했지만 무작정 쉬는 것도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민간 숙박 공유 플랫폼 ‘비앤비(BnB) 히어로’를 공동 창업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회사를 정리했다.


예쁘게 디자인된 종이 박스. 특수 소재와 공기층을 이용한 배송용 냉장 용기. 사진 아일랜드박스
예쁘게 디자인된 종이 박스. 특수 소재와 공기층을 이용한 배송용 냉장 용기. 사진 아일랜드박스

농업에 뛰어들게 된 이유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제주의 전통 산업 분야인 농수산물에 글로벌 기업에서 주로 맡았던 감성·경험·IT기술 등을 활용한 마케팅을 접목하면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사업 성공 가능성도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주도에서 감귤 유통을 하게 된 배경은.
“감귤 유통 사업은 감귤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시작했다. 나는 부모님께 드리기 위해 시지 않고 단 귤을 찾는 까다로운 고객이었다. 그러면서 과일 가게 주인과 친해졌다. 그는 품종별로 맛이 좋은 제철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맛 좋은 귤을 소개해줬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맛 좋은 제철 과일을 생산하는 농민과 최고의 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연결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에 대해 주변 반응이 좋았고 크게 실패할 사업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려서, 큰 부담 없이 사업을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
“농부가 나무에서 다 익은 감귤을 수확하면 이를 사서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소비자가 사 먹는 대다수 과일은 덜 익었을 때 수확된다. 유통 과정에서 익는다. 이를 후숙(後熟)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제주도 농부들은 감귤나무에서 다 익은 귤을 따서 먹는다. 하지만 서울에서 파는 과일은 유통되는 시간을 고려해 덜 익은 과일을 수확한다. 유통에 걸리는 시간이 짧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무에서 다 익은 과일과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익는 과일의 맛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크라우드 펀딩은 잘되나.
“처음에 주변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소비자 반응은 괜찮았다. 한 번 펀딩에 최대 4500만원 정도까지 모아봤다. 지난해 겨울부터 펀딩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5차 펀딩을 통해 총금액은 1억5000만원쯤 된다.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고객 만족도는 5.0 만점에 4.8 이상이다. 재구매율도 50%에 육박한다.”

질 좋은 귤을 어떻게 확보하나.
“제주에는 10종이 넘는 귤이 상품용으로 재배되고 품종별로 3~4개월 이상 시장에 나온다. 그래서 시기와 관계없이 제주도 시장에 가면 항상 귤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 유통되는 귤 중에서 품종별로 가장 맛있는 제철은 대부분 1~2개월 정도다. 시기에 따라 맛있는 귤이 다르다. 제철에 먹는 귤이 가장 향이 좋고, 달고, 신맛이 적다. 그래서 우리는 레드향·천혜향·한라봉·귤로향 등의 품종별로 가장 잘 익은 시기에 맞춰 1년에 한 번씩만 펀딩을 진행한다. 서귀포 위미농협의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 위미농협은 제주도 내 최대의 감귤 단위 농협으로 수확 전에 수시로 농가의 감귤 당도를 측정하며 품질을 관리해준다. 그리고 감귤이 다 익을 때가 되면 우리에게 품질이 우수한 귤을 생산한 농가를 추천해준다. 우리는 추천받은 농장을 방문해 농장의 위치별, 과일 크기별 샘플을 직접 맛보고 가장 맛이 좋다고 생각하는 과일만 구매해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최고의 과일이면 가격도 비쌀 것 같다.
“유통 과정이 복잡해지면 단계별로 가격 거품이 많이 끼게 된다. 우리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이어주기 때문에 유통 단계가 단순하다. 당연히 중간 마진도 적다. 때문에 우리가 파는 최상급 귤은 백화점보다 30%쯤 저렴하다. 우리는 농가에 주는 돈도 일반 수매 가격보다 10%쯤 높게 쳐준다. 우리가 챙기는 이문도 나쁘지 않다. 판매 금액의 30%쯤이 우리 몫이다.”

향후 계획은.
“앞으로 취급 품목과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1단계로는 제주도에서 많이 나는 겨울 당근이나 감자 등의 농산물을 비롯해 자리돔·옥돔·갈치 등의 생선도 취급할 생각이다. 이후에는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아일랜드박스가 직접 전국의 농산물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관리하는 회사나 개인을 선정해 이들이 해당 지역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지만 품목과 지역을 확대해도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감귤 관리법을 조언해 달라.
“귤은 껍질이 손상되면 빠르게 물러지고 주위의 귤까지 상하게 한다. 그래서 배송받는 즉시 상자를 열고 배송 과정에서 눌려 껍질이 손상된 귤이 있으면 모두 꺼내서 먼저 먹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귤은 20도 이상에서는 상하기 쉽고 영상 1도 이하에서는 맛이 변할 수 있으니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는 것이 좋다. 특히 하우스 감귤은 다른 품종보다 보관성이 떨어지므로 배송받은 이후 가능한 한 빨리 냉장고에 넣어 보관해야 한다. 귤은 또 시간이 지나면서 신맛이 빠져나가는 특성이 있다.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하면서 먹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정도의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룰 때 비닐백에 넣어 냉장고 야채 보관함으로 옮겨 놓으면 장기간 입맛에 맞는 귤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