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서울대 전자공학 학·석사, 매 사추세츠주립대 전자공학 석사,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박사, 전 IBM왓슨 연구원,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대표이사, 전 정보통신부 장관, 전 광운대 석좌교수, 전 카이스트 석좌교수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서울대 전자공학 학·석사, 매 사추세츠주립대 전자공학 석사,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박사, 전 IBM왓슨 연구원,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대표이사, 전 정보통신부 장관, 전 광운대 석좌교수, 전 카이스트 석좌교수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삼성전자를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국 반도체 산업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재직 시절 세계 최초로 개발한 16㎆(메가바이트), 256㎆ 디램(DRAM)은 오늘날의 삼성 반도체를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진 회장은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봉직하며 조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시켰다.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이끄는 투자자로 변신했음에도 ‘미스터 반도체’라고 불리는 이유다. 

최근 서울 양재동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진 회장을 만났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계속 집중하되, 비메모리 반도체 후(後)공정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한 산·학·연 협력에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으나, 시스템 반도체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설계 인력이 100~200명만 있어도 되지만, 비메모리 반도체는 1000명을 넘어 1만 명의 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많은 인력이 투입돼야만 앞서나갈 수 있는 영역이다. 현시점에서 온 나라가 뛰어든다고 해도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우리 기업이 퀄컴이나 엔비디아를 뛰어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압도적으로 잘하는 영역이 있지 않나. 바로 메모리 반도체다.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실제로 낸드플래시는 한·중 간 기술 격차가 2년밖에 안 된다는 얘기도 있다.
“6~7년 전부터 중국 정부가 나서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왔다. 메모리 중에서도 플래시 메모리는 한국 기업을 따라잡기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디램은 더 어렵겠지만, 그 역시 언젠가는 쫓아올 수 있다. 우리 기업이 굉장히 노력해서 격차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금방 따라잡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도 5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기업이 압도적으로 앞서갔지만, 지금은 거의 따라잡히지 않았나. 영영 따라잡히지 않는 산업이란 없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영역을 끊임없이 찾아내야 한다.”

우리 기업이 개척해야 할 새로운 영역이 무엇일까. 팹리스(설계)나 파운드리(위탁생산)에서 점유율을 높여야 할까.
“만약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 과감하게 투자한다면 메모리, 비메모리를 합쳐 1등 반도체 기업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파운드리나 팹리스를 잘하는 것이 과연 삼성에 이득만 될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퀄컴이나 엔비디아 같은 기존 고객사들을 경쟁자로 돌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팹리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 현재 중국에는 팹리스 기업 2000~3000개가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50~60개밖에 없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전자 제품 조립 시장인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시스템 집적회로(IC)들을 현지에서 조달한다. 자국 기업들이 싼값에 생산하니 한국 제품을 굳이 살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시스템 반도체 가운데 어떤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것이 좋을까.
“팹리스와 파운드리 같은 전(前)공정보다는 패키지, 테스트 같은 후공정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팹리스 시장 규모가 1000억달러(약 135조9000억원),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1500억달러(약 203조8500억원)인데, 패키징 시장 규모가 그에 못지않은 1000억달러나 된다. 매우 큰 시장임에도 우리 기업들은 거의 진출하지 않은 상태다.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하고 어려워질수록 투자 비용과 제조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후공정인 패키징 기술로 집적도를 높이고 전력 소모를 줄이는 등 보완적 수단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향후 10년 안에 후공정이 전공정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시스템화, 삼차원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세공정기술이 중요해질 것이다.”

최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향후 5년간 1조원을 투입해서 인공신경망처리장치(NPU) 기술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성이 있는 얘기인지 궁금하다.
“내가 10년 전부터 주장해온 바다. 그 당시보다 지금 훨씬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들어가는 시스템 대규모집적회로(LSI)를 설계할 때, 반도체만 설계하던 사람이 완성차 업체 전문가보다 더 잘 알 수 없다.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하다. 완성차를 만드는 사람이 반도체를 설계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가르쳐줘야 팹리스가 가능해진다. 여기서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끼리 자율적으로 협업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판을 만들고 돈을 투자해 대학을 유치하고, 인력을 육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가 (1조원이 아닌) 2조원을 댈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역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심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과 일본, 대만이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TSMC는 중국에 점령될 위험이 늘 있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 등에 분산 진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만과 상황이 다르긴 하나, 마찬가지로 미국이나 일본으로 이전해야 할 수도 있다. 남의 생존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 미·일·대만 동맹에 참여해야 한다.”

한국의 벤처·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자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며, 반대로 고질적인 문제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국내 중소기업 중 잘하는 회사는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대기업의 영향력 아래서 외주 협력 업체 형태로 성공하는 기업들이며, 다른 하나는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이다. 후자 가운데서 시가총액 1조원이 넘는 회사는 많지 않다.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으로 성장한 몇 안 되는 기업들도 대부분 글로벌 시장이 아닌 내수 시장을 겨냥한 유통 플랫폼이다. 의미 있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새롭게 부상하는 산업에서 한국 기업이 제대로 못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정부가 그 부분에 관여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매크로(거시) 환경의 악화로 비상장사들의 기업가치가 전반적으로 낮아진 상태다. 2000년 IT 버블 붕괴 때와 현 상황이 비슷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어느 정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시작된 후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더 많은 보조금이 시장에 풀렸고, 그 영향으로 최근 2년간 기업들의 몸값이 전반적으로 급등했다. 그 와중에 공급망은 훼손되고 실물 경제는 망가지고 있으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지속적인 물가 상승)의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위기가 언제쯤 해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기업들은 어떻게 버텨야 하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시기다. 현재의 위기가 내년 말까지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지속되면 인건비 인상 압력이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기업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 각자 영위 중인 사업 모델을 재점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기다. 향후 생존 가능할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기존 사업에 적용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