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박사,현 서울연구원 자문위원, 전 캘리포니아주립대 노스리지캠퍼스 경제학과 조교수,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전 한국외대 경제학부 부교수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박사,현 서울연구원 자문위원, 전 캘리포니아주립대 노스리지캠퍼스 경제학과 조교수,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전 한국외대 경제학부 부교수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우리나라 경제에 쉽지 않은 시기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난과 미·중 패권 다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국의 공격적인 긴축 행보, 중국 경기 둔화 우려 등이 갈 길 바쁜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녹록지 않은 대내외 환경에 국내 소비자물가는 6%대로 치솟았고,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300원을 돌파했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전이던 1996년의 기록을 넘어섰다.

윤석열 정부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요약되는 ‘3고(高) 복합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의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머리를 맞대기 위해 수시로 회의를 여는 배경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한국은행의 독립적인 정책 운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8월 3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 게페르트 남덕우 경제관에서 만난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책 간 코디네이션(coordination·조화)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며 “통화·재정 정책 당국이 자주 만나 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존 통념이나 하나의 정책만 가지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기에 글로벌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는 게 허 교수가 정책 간 조화를 강조하는 이유다.

1978년생인 허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 생활을 하기 전에는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거시경제와 통화·재정 정책에 대해 폭넓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나.
“물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밥상·생활 물가 등 세부적 지표에 대한 우려가 크다. 생활필수품은 가격 탄력성이 낮다. 외출하려면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가격이 올랐다고 샴푸를 안 살 수는 없으니 말이다. 더구나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나 식량 가격 급등 등은 하루아침에 확 좋아지기 어려운 이슈다.”

고물가 흐름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치솟는 물가와 달리 경기는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통화 정책 기조에서는 경기가 둔화 흐름을 나타내면 금리를 내려 총수요를 부양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고물가 때문에 금리를 내리기 힘든 상태다. 경기 부양의 아주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금리 정책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측면에서 현 물가 추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묵직하고 부정적이다.”

일각에선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을 고려해 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치솟는 물가를 잡지 못했을 때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비용은 너무나 많이 든다. 그리고 그 비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물가 대응을 위해 금리를 올리는 정책 기조는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와 별개로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은 높다. 가계부채가 고물가 제어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정책 당국에 딜레마를 안기는 건 사실이다.”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책과 정책 간 코디네이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통화와 재정 정책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통념을 보자. 통화 정책은 금리 조정을 통해 물가 안정에 충실하고, 재정 정책은 소득·자산 구조를 너무 왜곡하지 않으면서 경제를 안정화하면 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둘을 따로 분리하면 안 될 것이다. 정책 한쪽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겠다’고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겠다’는 식으로 맞물릴 필요가 있다.”

통화 정책을 펴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지 않을까.
“내 말을 독립성 침범의 범주에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글로벌 경기를 둘러싼 환경과 어떤 경제 현상을 야기하는 인과가 너무 복잡하게 얽힌 시대다. 통화·재정 정책 당국이 자주 만나 대화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어떤 방향을 향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무엇이며,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어떤 정책을 우선순위에 둬야 할지를 개별 정책이 각개전투해선 안 된다.”

정책 간 조화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나.
“물론이다. 인간이 만든 하나의 정책이나 익숙한 기존 사고만으로 컨트롤하기에는 세계 경제 구조가 점점 힘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글로벌 공급난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같은 사태가 끝나더라도 세계는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던 과거의 세계화 흐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덜 효율적이더라도 이념적으로 비슷한 그룹끼리 뭉쳐 블록화된 경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각자도생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서는 당연히 정부 정책도 힘을 합쳐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평가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시장을 되도록 건드리지 않으면서 시장이 그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자는 기조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면서 시장에 주도권을 맡기는 이런 구조는 낯설지 않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확산한 신자유주의 정부와 유사하다. 윤 정부 정책의 성패를 논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미·중 상황을 어떻게 보나.
“우선 중국부터 말하겠다. 올해 초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도시 봉쇄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현재 중국 경기 상황은 좋지 않다. IMF도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3%로 낮췄다. 하반기까진 부진하겠으나 내년 중국 경제는 반등할 수 있다고 본다. 오는 10월 공산당 대회에서 중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미국 경기는 상방보다는 하방 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간 미국 경제가 선방한 건 견조한 소비 덕분이었다. 미국은 소비가 GDP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오랜 시간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자산 시장 활황을 이끌었다. 이는 가계에도 순자산 효과를 안겼다. 그런데 지금은 금리 상승 속도가 굉장히 가파르다. 현재는 가계가 버티지만, 어느 순간 고금리가 자산 시장에 영향을 주면 소비가 줄고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가 볼 때 미국은 그런 둔화의 초입에 들어선 것 같다. 올해 하반기를 비롯해 내년 상반기까지는 미 경제가 하방 압력을 계속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자금 유출 우려에 대한 의견은.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를 급진적으로 빨리 올릴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미국 금리와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격차를 적당히 유지해 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양국 금리 역전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종종 나오는데 현 상황에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지구상에 한국과 미국 두 나라만 존재하는 게 아니고, 투자 포트폴리오 관점에서도 글로벌 자금이 모두 미국을 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장기 금리가 그렇게 낮은 편이 아니다. 한국의 투자 매력도가 급격한 자금 유출을 야기할 만큼 떨어진 건 아니라는 말이다. 단기 외채, 외화 보유고 등을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국가 신용도는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