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신임 총리가 7월 24일 취임 직후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총리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존슨 총리 뒤에 있는 문에 숫자 10이 붙어있다. 존슨 총리는 “10월 31일 ‘예외 없이(no ifs and buts)’ 브렉시트를 완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사진 블룸버그
보리스 존슨 영국 신임 총리가 7월 24일 취임 직후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총리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존슨 총리 뒤에 있는 문에 숫자 10이 붙어있다. 존슨 총리는 “10월 31일 ‘예외 없이(no ifs and buts)’ 브렉시트를 완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사진 블룸버그

“이 나라를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브렉시트에) 임하겠다.” “영국의 황금시대를 다시 시작하겠다.”

영국의 신임 총리 보리스 존슨이 7월 24일 의회 첫 연설에서 한 말들이다. 유럽연합(EU)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예외 없이 브렉시트를 추진하겠다는 의미였는데, 그의 이 취임 일성은 화제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보리스 존슨이 영국 총리가 된 것은 국제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 그가 트럼프를 필두로 시진핑, 푸틴, 마크롱 등으로 이어지는 ‘스트롱 맨’ 계보를 잇는 인물인 데다, 이탈리아‧헝가리 등 남동유럽, 브라질‧콜롬비아 등 중남미에서 득세하는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양대 축 영국에서 존슨이 총리가 됐다는 것은 글로벌 역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존슨은 트럼프와 외모, 정치 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닮았다는 의미로 ‘영국의 트럼프’라 불린다. 회오리치는 금발에 거구인 외형적 특성뿐만 아니라 돌출적 언행과 기행을 계속하는 독특한 캐릭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둘 다 영국 보수당, 미국 공화당에 속해있지만, 정통 보수와 거리를 둔 파격적인 행보로 정가에서 ‘아웃사이더’로 통한다. 또 유럽연합을 떠나 독자적으로 자생하겠다는 브렉시트의 기본 개념도 글로벌 동맹보다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당선 이후 행보도 비슷하다. 존슨은 의회 연설을 마치자마자 브렉시트파를 전면에 내세워 23명의 장관 중 17명을 새로 임명했다. 모두 브렉시트 강경파 일색으로 메이 전 총리와 악연이 있거나 메이에 의해 쫓겨난 인사들이었다. 트럼프가 2017년 취임 직후 42명을 교체하며 대대적인 인사 물갈이를 단행한 것과 비슷하다(2019년 4월 기준).

특히 보리스가 남동생 조 존슨을 비즈니스‧에너지‧산업‧교육장관으로 임명한 것도 화제가 됐다. 트럼프가 자신의 딸 이방카를 백악관에 보좌관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가족정치’를 시작했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존슨과 트럼프가 각각 윈스턴 처칠, 로널드 레이건의 ‘광팬’이라는 점도 특이한 부분이다. 존슨은 2015년 낸 평전 ‘처칠 팩터’에서 ‘유럽이 하나로 뭉쳐야 하지만, 영국이 유럽의 일부는 아니다’라는 처칠의 주장을 소개했다. 유럽과 협력은 필요하지만, 브렉시트는 추진해야 한다는 자신의 논리를 여기에 대입했다. 트럼프도 ‘레이거노믹스(레이건의 경제 정책)’에서 자신의 감세 정책, 보호무역 정책을 벤치마킹했다.


정책적으로는 親이민파인 것은 차이점

반면 두 사람의 정책과 방향은 차이가 있다. 존슨이 작년 부르카(온몸을 가리는 이슬람 전통 의상)를 입은 여성을 두고 “우체통, 은행강도처럼 보인다”고 말한 것이 여성‧인종차별 논란으로 번졌지만, 정책적으로는 친(親)이민파에 가깝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은 외국의 투자와 해외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비슷하게 막말을 일삼지만, 국경 장벽 건설을 핵심으로 하는 트럼프의 반(反)이민 기조와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또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세계와 무역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도 거리가 있다.

다만 존슨은 당분간 친미(親美) 노선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내 고립 정책을 자초하고 있는 영국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밀착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존슨의 강력한 브렉시트 정책을 지지한다. “존슨은 매우 잘하고 있다”며 꾸준히 호감을 표시해온 트럼프는 당선 확정 직후 “존슨은 터프하고 똑똑하다. 사람들이 그를 ‘영국 트럼프’라고 하던데, 영국인도 나를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두 사람은 지난해 영국과 미국 정치권과 재계를 뒤흔든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 스캔들’과도 연결돼 있다. 2016년 트럼프 선거 캠프에 고용된 영국의 정치 컨설팅 기업 CA가 페이스북 이용자 개인정보 8700만 건을 불법적으로 활용해 여론전을 펼친 사건이다.

이들은 개인정보 수집 목적의 심리테스트프로그램을 이용해 페이스북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당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겨냥해 ‘사기꾼 힐러리를 무찌르자(Defeat Crooked Hillary)’ 운동 등을 펼쳐 여론을 선동했다.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한 광범위한 초미세 표적 광고였고, 이는 트럼프의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 이 사태로 최근 CA는 폐업했다. 페이스북도 미국 정부에 50억달러(약 6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게 됐다.

CA는 트럼프와 존슨을 잇는 연결고리다. CA가 2016년 트럼프 선거 운동뿐만 아니라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친브렉시트파도 도운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영국 하원의 조사에 따르면 CA는 존슨이 이끄는 브렉시트 캠페인 ‘보트 리브(Vote Leave)’에 캐나다 관계사를 통해 선거 활동을 지원하는 식으로 관여했다. 존슨이 이번에 수석 보좌관으로 임명한 최측근 도미닉 커밍스가 이 일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lus Point

“쉬워보여도 괜찮아, 난 엘리트니까”

존슨 총리(왼쪽)가 외무장관이던 2018년 7월 10일 런던의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 옆은 팀 마틴 JD웨더스푼 회장이다. 사진 블룸버그
존슨 총리(왼쪽)가 외무장관이던 2018년 7월 10일 런던의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 옆은 팀 마틴 JD웨더스푼 회장이다. 사진 블룸버그

포마드로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올린 영국 정치인들 틈에서 보리스 존슨은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인물이다. 밑으로 뻗은 헝클어진 금발에 구겨진 양복, 익살스러운 표정과 우스꽝스러운 행동은 그의 막말, 실언, 망언과 어우러져 대중에게 ‘빈틈 많은’ ‘친근한’ ‘악동’ 정치인 이미지를 심어줬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이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전략이라고 본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권에 맞춘 커리어를 쌓아왔다. 보수당 지도자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이튼스쿨, 옥스퍼드대 출신인 데다, 옥스퍼드대 토론클럽 유니언 의장을 역임했다. 의장은 총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리로 유명한데, 그는 이 선거에 출마해 재수 끝에 당선됐다.

존슨 총리는 스스로를 ‘원맨 멜팅팟(One-man melting pot)’이라고 부른다. 멜팅팟(용광로)은 여러 인종이 함께 화합해 큰 힘을 발휘하는 사회를 빗댄 말이다. 원맨 멜팅팟이란, 존슨 총리라는 개인 자체(원맨)가 하나의 작은 멜팅팟이라는 의미다. 그는 영국계, 터키계,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등 다양한 혈통이 섞였다. 196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비교적 최근까지 미국과 영국 이중 국적을 유지했다. 미국 국적을 포기한 때는 2016년 브렉시트 논란이 가열된 시기와 일치한다.

대학 졸업 후에는 영국 일간지인 더타임스와 데일리 텔레그래프, 잡지 ‘스펙테이터’ 등 보수 언론을 거쳤다. 인용 조작과 가벼운 기사로 기자로서의 명성은 얻지 못했지만, 유럽연합(EU)에 회의적인 목소리를 높이며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를 계기로 BBC에서 시사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여기에서 뛰어난 언변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1년 보수당 소속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뒤부터는 승승장구였다. 2008년 44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런던시장으로 선출돼 런던 시내 공용 자전거 인프라 확장에 힘썼다. 시장직을 마친 뒤 의회에 복귀한 그는 2016년 브렉시트 논의를 주도하며 테리사 메이 총리 내각 외무장관을 맡았지만, 작년 7월 메이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 방침에 반발해 사임했다. 영국의 완전한 EU 탈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