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왼쪽) 테슬라 CEO와 J.B. 스트라우벨당시 테슬라 CTO가 2016년 7월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기가팩토리에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스트라우벨은 현재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재유통 스타트업 레드우드 머티리얼스의 CEO를 맡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일론 머스크(왼쪽) 테슬라 CEO와 J.B. 스트라우벨당시 테슬라 CTO가 2016년 7월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기가팩토리에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스트라우벨은 현재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재유통 스타트업 레드우드 머티리얼스의 CEO를 맡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의 클라우드 기반 자동차 판매 플랫폼 스타트업 테키온(Tekion)이 설립 4년 만에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회사)’에 등극했다. 10월 21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테키온은 1억5000만달러(약 1714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1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 평가를 받았다. 테키온은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자동차 판매 전 과정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왔다. 특히 테키온의 플랫폼은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채택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온라인 판매 채널 확대를 모색하던 많은 글로벌 완성차 회사가 테키온의 가능성을 알아봤고 제너럴모터스(GM), BMW,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등이 이미 투자를 단행했다.

젊은 유니콘이 된 테키온과 함께 창업자도 주목받고 있다. 테키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제이 비자얀으로, 2012년부터 4년간 테슬라(Tesla)에서 일하며 정보관리책임자(CIO)까지 지낸 인물이다. 테슬라가 매출을 거의 내지 못하던 시절에 합류했고, CIO로서 일론 머스크 CEO에게 직접 보고하며 테슬라의 디지털 및 정보기술(IT) 시스템 기반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를 나온 직후인 2016년 2월 테키온을 차렸다. 테슬라에서의 경험이 테키온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테키온처럼 테슬라 출신이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공한 사례는 적지 않다. 테키온처럼 유니콘으로 성장하거나 테슬라의 경쟁사로 성장한 스타트업도 있다. ‘페이팔 마피아(페이팔을 떠나 벤처기업을 창업해 성공한 인맥 그룹)’ 중 한 명으로 전기차 시장의 새 지평을 연 머스크 CEO. 그의 뒤를 이어 ‘테슬라 마피아’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일까. 테슬라를 떠나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창업자와 스타트업을 세 가지 유형별로 살펴봤다.


테슬라 출신 임직원이 설립한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 모터스의 ‘루시드 에어’. 사진 루시드 모터스
테슬라 출신 임직원이 설립한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 모터스의 ‘루시드 에어’. 사진 루시드 모터스

유형 1│‘배터리’ 창업

테슬라 출신이 세운 스타트업은 대부분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포진해 있다. 스웨덴 노스볼트(Northvolt)가 대표적이다. 노스볼트는 테슬라 구매 담당 부사장 출신인 피터 칼슨 CEO가 유럽에도 ‘기가팩토리(테슬라의 배터리 공장)’를 세우겠다는 목표 아래 2016년에 공동 창업한 배터리 생산 회사다. 현재 폴크스바겐, BMW, 스카니아 등 유럽의 주요 자동차 회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현재까지 공장 건설 및 연구·개발(R&D) 목적으로 3조원 이상의 투자를 받았으며 2021년 양산 목표로 스웨덴에 연간 40(기가와트시) 규모의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2030년까지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25%를 차지한다는 목표다.

테슬라의 7번째 직원으로 알려진 진 베르디체브스키가 2011년에 창업한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Sila Nanotechnologies)도 주목받는 배터리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는 실리콘 기반 나노분자로 배터리 음극재를 만든다. 흑연 대신 실리콘 음극재를 쓰면 에너지 밀도(저장 능력)가 높아져 배터리 성능이 향상되며 생산 비용도 낮출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모기업인 다임러를 비롯해 삼성, 중국 배터리 회사 CATL이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에 투자했다. 2019년 4월 1억7000만달러(약 1942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창립 이후 누적 투자 유치액이 3억달러(약 3428억원)로 뛰었다. 당시 1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 평가를 받으며 유니콘이 됐다. 테슬라에서 배터리 기술자로 일했던 커트 켈리도 지난해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에 합류했다.

이 밖에 테슬라 출신이 창업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스타트업으로 스마트 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티베니(Tiveni), 스마트 충전 기술을 보유한 월박스(Wallbox) 등이 있다.


유형 2│협력사 또는 경쟁사

테슬라 출신이 대거 전기차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테슬라와 함께 새로운 전기차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 생태계 내에서 테슬라와 협력하는 스타트업도, 경쟁하는 스타트업도 존재한다. 테슬라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스타트업으로 레드우드 머티리얼스(Redwood Materials)가 있다. 테슬라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J.B. 스트라우벨이 2017년에 설립한 레드우드 머티리얼스는 전기차 배터리 셀 등에서 회수한 재료를 재활용·재유통하는 회사다. 머스크 CEO는 스트라우벨에 대해 “테슬라를 만들고 일으켜 세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는데, 스트라우벨이 회사를 떠난 뒤에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드우드 머티리얼스는 올해 테슬라 기가팩토리로부터 1 규모의 재료를 공급받아 재활용하는 계획을 세웠다. 테슬라 엔지니어 출신이 세운 시브로스(Sibros) 역시 테슬라와 협력하고 있다.

반면 ‘테슬라 대항마’를 자처하는 미국 전기차 회사 루시드 모터스(Lucid Motors)는 테슬라 출신이 설립했지만, 테슬라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루시드 모터스는 테슬라와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 오라클 출신 임직원이 2007년 설립한 아티에바(Atieva)에서 사명을 바꾼 회사다. 현재 CEO인 피터 롤린슨 역시 테슬라 수석 엔지니어 출신이다.

루시드 모터스는 지난 9월 첫 양산 승용차인 루시드 에어의 세부 사양을 공개하면서 내년 봄부터 차량을 인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회사는 루시드 에어가 ‘주행 거리가 가장 긴 전기차’라고 강조하며 1회 완충 시 최대 약 832㎞를 주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주행 거리가 가장 긴 전기차인 테슬라의 모델S(약 647㎞)를 겨냥한 전기차다. 루시드 에어 사양이 공개된 직후 테슬라는 미국 내 모델S 가격을 내렸다. CNBC는 “전 테슬라 임원 피터 롤린슨이 이끄는 루시드 모터스가 루시드 에어를 발표하자 테슬라가 가격 인하 조치를 내놓은 것”이라며 두 기업의 경쟁 분위기를 전했다.


카테라의 공사 현장. 카테라는 테슬라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마이클 마크스가 설립했다. 사진 카테라
카테라의 공사 현장. 카테라는 테슬라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마이클 마크스가 설립했다. 사진 카테라

유형 3│전기차 밖 도전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꼽히는 전기차 산업에 몸담았던 만큼 테슬라 출신의 창업 영역은 전기차 분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테슬라 내 에너지 사업부에서 일했던 아치 라오는 2018년 4월 테슬라에서 나온 뒤 같은 해 6월 주거용 스마트 에너지 패널 개발 스타트업인 스판(Span)을 창업했다. 테슬라 에너지 사업부 부사장 출신인 마테오 자라밀로 역시 2017년 에너지 저장 장치 개발 스타트업인 폼 에너지(Form Energy)를 공동  창업했다.

전기차와 동떨어진 분야에서 창업해 성공한 테슬라 출신으로 마이클 마크스도 있다. 그는 테슬라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으로 2015년 콘테크(contech) 스타트업 카테라(Katerra)를 세웠다. 콘테크는 건설(construction)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4차 산업 기술을 활용해 건설 공정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 기술을 말한다. 카테라는 IT 솔루션과 생산 공장을 활용해 건물을 문, 벽 단위의 반조립품 형태로 설계하고 필요한 자재를 사전에 계산해 즉시 조달하는 방식을 제안해 주목받았다. 2018년에는 소프트뱅크, 애플,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이 참여하는 비전펀드에서 8억6500만달러(약 9882억원)를 투자받으며 창업한 지 불과 3년 만에 기업 가치가 3조원대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