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블레이클리 스팽스 창업자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 전 단카 팩스 방문 판매원, 2014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여성 100인’ / 사진 블룸버그
사라 블레이클리 스팽스 창업자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 전 단카 팩스 방문 판매원, 2014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여성 100인’ / 사진 블룸버그

“모든 직원에게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일등석 항공권 두 장과 여행에 쓸 1만달러(약 1200만원)를 제공하겠습니다.”

10월 22일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속옷 기업 스팽스(Spanx) 본사. 빨간 백팩을 맨 사라 블레이클리(Sara Blakely·50) 스팽스 창업자가 직원들 앞에서 예정에 없던 ‘보너스’를 발표하자마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에 몇몇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일부는 파티에 참석한 것처럼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블레이클리가 갑작스러운 선물을 준비한 건 스팽스 지분 매각 때문. 스팽스를 설립한 뒤 21년간 상장도 하지 않고 외부 투자도 받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 회사 블랙스톤에 지분 절반 이상을 매각했다. 블레이클리는 “앞으로도 주요 주주로 남아 스팽스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블랙스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때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로 불렸던 블레이클리의 여정은 1998년 시작됐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이 깨지고 말았지만, 그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창업자다. 그녀는 지난해 재산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미만으로 줄었지만, 올해 10월 블랙스톤에 스팽스 지분 절반 이상을 매각하며 또다시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다. 블랙스톤은 스팽스를 12억달러(약 1조4000억원)로 평가했다.


평범한 팩스 외판원, 보정속옷 만들다

블레이클리의 꿈이 원래부터 사업가였던 것은 아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변호사였고,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는 20대 중반 로스쿨 시험(LSAT)에 두 번이나 낙방한 뒤, 플로리다주 올랜도 디즈니월드에서 다람쥐 옷을 입고 안내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는 3개월 만에 지쳐 사무 기기 회사 단카(Danka)로 직장을 옮긴다. 맡았던 업무는 팩스 방문 판매원. 전기 콘센트가 없는 곳에도 직접 전기를 연결해주고 팩스를 팔 정도로 뛰어난 영업 실력을 보였으나, 일에 흥미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는 자신이 잘하는 건 무엇인지, 장점은 또 무엇인지 파악하는 시간을 보냈다.

블레이클리가 창업가로 변신한 계기는 27세 때 체형 보정을 위해 신었던 스타킹 때문이다. 파티에 가기 위해 크림색 바지를 입으면서, 튀어나온 살이 덜 보이게끔 스타킹 발목 부분을 직접 자른 뒤 이를 입었던 것. 그는 외출 내내 말려 올라가는 스타킹에 불편을 느꼈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기로 했다.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의 쇼에서 “스타킹을 신을 때마다 발이 불편해 발 부분을 잘라낸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발 없는 스타킹’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그렇게 낮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스타킹을 연구하는 삶이 시작됐다. 타인의 조언도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인은 물론 애인, 가족한테까지도 사업 아이템을 알리지 않고 ‘스텔스(비밀 유지) 모드’를 유지했다. 이전에 출시된 스타킹 디자인과 특허를 모두 뒤져 제품 출시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생산 공장을 찾기 위해 퇴근 후와 주말에는 플로리다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까지 모두 뒤졌다.

하지만 창업은 만만치 않았다. 여성 속옷 공장 운영자는 모두 남자였고, 여성이 신는 스타킹의 불편함에 공감하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정신이 나갔느냐” “그런 게 가능하겠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소량 생산을 맡기는 데다 패션 업계 경험이 없다는 점도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셀 수 없이 무시당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성이 입는 제품이기 떄문에 이를 잘 아는 여성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노력 끝에 한 속옷 공장 운영자에게 “딸들에게 물어봤는데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답변을 받았다. 생산해 보겠다”는 말을 들었다. 블레이클리는 특허 등록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접 특허를 신청하고, 수백 번의 시험 착용끝에 첫 제품을 생산해냈다.


스팽스의 임직원 대부분은 여성이다. 사라 블레이클리는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회사를 세운다는 목표를 이뤄냈다. 사진 스팽스·사라 블레이클리 인스타그램
스팽스의 임직원 대부분은 여성이다. 사라 블레이클리는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회사를 세운다는 목표를 이뤄냈다. 사진 스팽스·사라 블레이클리 인스타그램

발 없는 스타킹으로 억만장자 되다

2000년 발 없는 스타킹이 드디어 출시됐지만, 끝이 아니었다. 제품을 알리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비싼 광고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블레이클리는 여성 잡지 기자들에게 편지와 샘플을 보내 홍보했다. 각종 소매점과 유통 업체를 돌며 유통망을 뚫었다. 스팽스 제품은 여성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블레이클리는 7년간 다녔던 단카를 그만두고, 스팽스에 올인하기로 결심한다.

스팽스의 사업이 도약하는 데는 오프라 윈프리의 도움이 컸다. 블레이클리는 오프라 윈프리에게 손편지와 제품을 선물로 보냈다. 블레이클리는 “이 제품이 탄생하는 과정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 당신이 스타킹을 신을 때 발이 불편하다고 말한 것이 (상품을 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고 했다. 스팽스의 상품을 착용해본 오프라 윈프리는 ‘2000년 올해 가장 좋았던 제품’으로 이를 선정했고, 발 없는 스타킹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오프라 윈프리 효과는 대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물론 레드카펫에 오르는 기네스 팰트로, 비욘세, 에바 롱고리아 등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애용품이 되기도 했다. 스팽스는 월급쟁이로 일하면서 모은 5000달러(약 600만원)를 자기 자본으로 시작했으나, 3년 만에 1억달러(약 1200억원) 매출을 올릴 정도로 커졌다. 블레이클리는 스팽스 제품을 모방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더 많은 제품을 내놓기 시작한다. 보정속옷을 넘어 레깅스, 청바지, 수영복까지 판매하며 사업을 키웠고, 세계 1위 보정속옷 브랜드가 됐다. 블레이클리는 2012년 처음으로 ‘억만장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블레이클리는 이후에도 제품개발 회의에서 직접 속옷 신제품을 입어보면서 의견을 제시해왔다. 그와 임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스팽스는 미국 전역은 물론 50여 개국에 진출했으며, 제품 생산 방식을 다양화하면서 원하는 가격대와 품질을 얻어냈다. 그는 37세에 결혼한 뒤 네 명의 자녀가 생겼지만, 여전히 워킹맘으로 지내며 업무에도, 가정에도 충실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블레이클리는 창업 초기 마음먹었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브랜드’라는 목표를 계속해서 지켜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추구한다. 그는 스팽스의 수익 일부를 ‘지구상의 많은 여성’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그는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게 번영하고, 발명하고, 교육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공직에 출마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우리 모두 더 나은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는 억만장자로 또 한 번 올라서며 언론의 집중을 받을 때도 소셜미디어(SNS)에 “로스쿨 시험에서 떨어져 울던 시절의 나에게 ‘꽉 잡아라, 너의 인생은 네가 목표했던 것보다 크다’라고 속삭였다면, 확실히 울음을 멈췄을 것”이라며 “많은 여성이여, 멋진 성공을 추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라고 응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