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민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석·박사, 현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심장예방재활센터 소장,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심장내과 부교수 사진 서울아산병원
안정민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석·박사, 현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심장예방재활센터 소장,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심장내과 부교수 사진 서울아산병원

지난 6월 말 서울아산병원에 80대 여성 환자가 실려 왔다. 심장혈관 곳곳이 좁아져 있었고, 대동맥에서 심장 밖으로 피가 나가는 관문인 ‘판막’이 딱딱하게 굳어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 되는 상태였다.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안정민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이 환자에게 ‘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타비 시술)’을 진행했다. 특수 제작된 그물망(프레임)을 사용해 딱딱해진 판막을 벌린 뒤 인공판막을 설치하는 시술이다. 좁아진 심장혈관에는 스텐트(stent)를 넣었다. 혈액순환이 원활해지자 환자는 빠르게 회복했고, 입원 2주 만에 걸어서 퇴원했다.

타비 시술은 가슴 절개 없이 사타구니에 있는 대퇴동맥을 통해 삽입한 인공판막으로 딱딱해진 판막을 대체하는 치료법이다. 나이가 들면서 칼슘이 부족해진 판막은 점점 딱딱하고 두꺼워진다. 이를 ‘대동맥판막협착증’이라 하는데, 타비 시술을 통해 고칠 수 있다.

우리 몸속 피는 좌심실에서 대동맥을 통과해 온몸으로 퍼진다. 대동맥에 있는 판막이 잘 열리고 닫혀야 혈액순환이 잘 된다. 판막이 굳으면 심장이 피를 보내기 위해 무리해서 세게 뛰어야 한다. 그 결과 가슴 통증, 숨 가쁨, 실신 등 증상이 나타난다.

대동맥판막협착증을 오래 방치하면 말초신경까지 피를 전하지 못하는 심부전증이 올 가능성이 크다. 심부전증 환자 10명 중 6~7명이 발병 5년 안에 목숨을 잃는다. 웬만한 암보다 높은 사망률이다.

10여 년 전에 이런 환자들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전신마취 후 가슴을 절개해 심장 안에 인공판막을 넣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환자 나이가 너무 많거나 심장 기능이 떨어져 전신마취가 어려우면 수술이 불가능했다. 반면 타비 시술은 인공판막을 동맥에 삽입할 작은 구멍 하나만 뚫으면 돼 환자 부담이 훨씬 적다. 시술 후 회복까지 걸리는 기간도 짧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2010년 국내 최초로 타비 시술을 위한 장비와 시설을 도입, 올해 7월까지 1300건 넘는 시술 경험을 쌓았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타비 시술을 받은 환자들 평균 연령은 80세를 넘지만 성공률은 96%에 이른다. 안 교수팀은 이러한 시술 데이터를 종합해 가슴 절개 수술과 타비 시술의 경과를 비교하는 논문을 준비 중이다.

안 교수는 ‘논문 잘 쓰는 의사’로 통한다. 지난 2015년 심장혈관 여러 곳이 막힌 환자 치료에 가슴 절개술과 스텐트 시술이 비슷한 효과를 보인다는 내용의 논문을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게재했다. NEJM은 1812년 창간한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다. 심장학 분야 최고 학술지라 평가받는 미국 ‘심장학회지’에도 4편의 논문을 실었다. 안 교수를 7월 20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회의실에서 만났다.


‘대동맥판막협착증’에 대해 설명해달라.
“대동맥 판막은 좌심실에서 바깥 혈관으로 피가 나가는 통로에 있는 종이 두께의 얇은 막이다. 판막이 제때 열리고 닫혀야 심장 안팎의 압력 차이가 유지되면서 피가 한쪽으로 원활하게 흐른다. 이 판막이 딱딱해져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병이 대동맥판막협착증이다.”

어떤 것 때문에 생기는 병인가.
“노화가 가장 주된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칼슘이 부족해진 판막이 딱딱하고 두꺼워진다. 이러면 심장이 수축하며 피를 짜내도 판막이 열리지 않으니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이 죽는 병인가.
“대동맥판막협착증이 중증으로 번진 환자들은 2명 중 1명이 2년 안에 죽는다. 피가 나가는 통로가 잘 열리지 않으니, 심장은 더 세게 뛰어서 피를 내보낼 수밖에 없다. 심장에 지속적인 무리가 간다는 뜻이다. 초반에는 가슴 통증, 숨 가쁨 정도에서 끝나지만, 나중에는 실신하거나 심부전증이 올 수도 있다. 심부전증 환자 10명 중 8명은 부정맥 등 심장 기능 저하로 목숨을 잃는다. 치료받지 않으면 사실상 무조건 죽는 병이다.”

그 병을 ‘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로 고치는 건가.
“그렇다. 다른 말로 ‘타비(TAVI·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 시술’이라 부른다. 팔이나 사타구니 등에 있는 동맥에 시술 도구를 삽입할 작은 구멍을 뚫은 뒤, 그곳으로 딱딱하게 굳은 기존 판막을 벌릴 ‘프레임’을 먼저 넣는다. 이후 인공판막을 넣어 설치하면 시술이 끝난다. 몸에 상처 자국이 거의 남지 않고 부분마취만으로도 진행이 가능해 환자 부담이 적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6월 말쯤 일이다. 80세 여성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병원에 실려왔다. 전부터 대동맥판막협착증을 앓다가 다른 병원에 계셨는데, 거기선 수술을 못 하겠다고 해서 우리 병원으로 오셨다. 판막은 완전히 굳어있었고 심장혈관은 곳곳이 쪼그라들어 혈액순환이 안 되는 상태였다. 결국 인공판막에 혈관 스텐트까지 설치하는 대수술을 거쳤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2주 정도 지나니 그 나이 든 사람이 두 발로 걸어서 퇴원하더라. 최근에 치료한 환자라 기억에 크게 남는다.”

타비 시술 관련 논문을 준비 중인 걸로 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타비 시술을 도입한 게 2010년이다. 지금도 우리 병원에 계신 심장내과 박승정 석좌교수가 처음 집도했다. 이후 올해 7월까지 12년간 1300건 넘는 환자에게 타비 시술을 진행했다. 아시아에서 타비 시술을 1000건 넘게 집도한 건 아산병원이 유일하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문을 준비 중이다. 전신마취 후 가슴 절개 수술을 받은 환자에 비해 타비 시술을 받은 환자들 경과가 얼마나 더 좋았는지 비교해볼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같은 주제로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한국인 환자 대상으로 데이터를 비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 같은 세계 최고 학술지에도 논문을 실었다.
“2015년 논문이다. 이번에 준비 중인 논문과 비슷한 맥락의 주제를 갖고 있었다. 당시엔 심장혈관 여러 곳에 협착이 생겼을 때는 가슴을 절개해 혈관을 떼고 붙이는 식으로 위치를 조정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수술법을 가장 많이 썼다. 그런데 같은 증상으로 우리 병원을 찾아 절개 없이 동맥을 통해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은 환자들 경과를 보니, 절개 수술을 받은 환자들과 사망률 차이가 없었다. 그 데이터를 모아 발표했고, 좋은 성과를 거뒀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논문까지 쓰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병원 교수들은 정말 다들 열정적이다. 후배들은 밑에서 뼈가 빠지게 일하고, 선배들은 나보다 더 열심히 논문을 쓴다. 그러다 보니 나도 그 분위기를 따라가게 된다. 병원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환경적 요인이 크다고 본다.”

의사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내 환자가 편히 오래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