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주 눔 대표와 한국인용 눔 애플리케이션. 사진 눔
정세주 눔 대표와 한국인용 눔 애플리케이션. 사진

“다이어트가 아니라,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 “심리학과 작은 목표로 습관을 바꾼다.”소비자들이 먼저 나서 칭찬하는 건강 관리, 체중 감량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 헬스케어 기업 눔(noom)이다. 눔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100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이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매출액이 1200만달러(약 135억원)→6100만달러(약 689억원)→2억3700만달러(약 2678억원)→4억달러(약 4520억원)로 늘어나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다.

눔을 향한 투자자의 러브콜도 잇따른다. 실버레이크와 노보홀딩스, 오크 HC·FT, 세콰이어캐피털, 삼성벤처스 등 내로라하는 벤처투자사들이 5월 26일(현지시각) 눔에 5억4000만달러(약 6100억원)를 투자했다. 누적 펀딩 금액은 6억5730만달러(약 7427억원)에 달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눔은 현재까지 37억달러(약 4조원)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은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다. 1년 안에 100억달러(약 11조원) 규모의 IPO(기업공개)를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눔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지만, 토종 한국인과 우크라이나 출신 기술자의 합작 스타트업이다. 두 사람은 창업 13년 만에 눔을 5000만 회원의 ‘건강 관리 동반자’로 키워냈다. 식생활과 생활 습관 등을 분석해 건강을 관리해주는 모바일 앱을 선보인 덕이다. 창업자인 정세주 눔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은 더 건강하게 먹고, 더 많이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더 나은 수면을 하기를 원하지만, 쉽지 않다”며 “투자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업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중퇴 후 무작정 떠난 美서 창업

정 대표의 창업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는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난 여수 토박이다.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의대 진학을 꿈꿨으나 실패한 후 방황했다. 1999년 홍익대 전자전기공학과에 진학했지만 공부보다는 헤비메탈에 빠졌다. 당시에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음반이 없어서 노래를 못 듣는 상황일 때도 있었다. 해외 희귀 음반을 수입해 유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 반짝 잘됐지만, 경쟁이 치열해졌고 병역특례를 하게 되면서 접었다.

정 대표의 터닝포인트는 아버지의 암 판정이었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암 발병으로 무너지고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해 고민했다. 아버지는 병상에 있을 때, 그에게 ‘돈을 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무엇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인지’ 등 질문을 던지곤 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세주가 무엇을 하려고 하든 밀어줘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2005년 대학을 중퇴하고 무작정 뉴욕으로 떠났다. ‘많은 도전을 하며 내 재주를 발견해야겠다’는 목표였지만, 타지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공연 사업을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도망치듯 슬럼가로 이사해야 했고 라면 하나를 몇 끼에 걸쳐 나눠 먹을 정도로 힘든 생활을 견뎠다. 영어를 못한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생계 유지를 위해 때밀이수건, 수세미, 블라인드 판매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텼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사촌동생의 모임에서 구글 엔지니어 아텀 페타코프(Artem Petakov)를 만났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페타코프와 그는 금세 친해졌다. 혁신적인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두 사람은 함께 창업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페타코프는 그의 끈기와 인내심을 믿는다며, 주식을 팔아 마련한 창업 자금과 집 열쇠를 건넸다.

창업 아이템으로 ‘헬스케어’를 생각해낸 건 아버지를 떠올리면서였다. 아버지는 환자들을 위해 점심도 거르면서까지 진료하는 사람이었다. 미국은 의료 접근성이 한국보다 더 낮아 병원에서 치료받기도 어려운 환자가 많았다. 그들의 진료를 돕지는 못하겠지만, 예방을 돕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술 발전에도 큰 변화가 없는 업종 중 하나가 헬스케어 분야이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섰다. 2008년 눔의 전신인 ‘워크스마트 랩스’를 세웠다. 적은 비용으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도 만들었다. 2년 넘게 투자 한 번 받지 못하자, 투자자들에게 ‘뭘 고쳐야 할 것 같냐’고 물으며 사업 모델을 보완했다.


눔 인기 비결은 ‘데이터·심리파악 코칭’

사업 모델이 완성되기까지 시행착오도 있었다. 처음에 선보인 앱은 운동 관리 앱이었다. 러닝머신을 뛰며 TV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으나 반응은 좋지 않았다. 2008년 만보기·GPS 바탕의 운동량 측정 앱 ‘카디오 트레이너’를 만들자, 고객이 모였다. 정 대표와 페타코프는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살펴보다 고객들이 과체중 때문에 걷기 운동을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됐다. 또 고객들의 관심사가 ‘피트니스’가 아닌 ‘다이어트’라는 것을 알아냈다. 두 사람은 2011년 운동과 식단, 습관, 심리를 모두 살피지 않으면 지속성이 없다는 판단하에 건강 관리 앱 ‘눔 다이어트’를 선보였다.

눔은 단순히 살을 빼는 것을 넘어 올바른 습관을 형성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눔은 성별과 나이, 키, 몸무게를 적고 목표 체중을 정하면, 하루 섭취할 식단과 운동을 소개해주는 방식을 활용했다. 과일, 채소 등 저칼로리 식품은 초록색, 닭고기와 칠면조, 해산물은 노란색, 피자,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나 간식, 당이 첨가된 음료 등은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메뉴나 먹는 양, 운동량을 추천해 체중 감량 동기부여를 강화한다. 과도한 목표 설정이나 저칼로리 강요 대신 좋은 습관을 만들어준다. 이용자들이 편하게 식사량을 기록할 수 있도록 데이터 구축부터 시작했다. 영양사를 고용해 사용자가 입력한 음식의 종류와 칼로리를 측정하고 음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정 대표는 “체중 감량은 만성질환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며 “식욕을 한 방에 떨어뜨리는 주사나 약이 아니라 좋은 습관을 기르는 서비스를 만들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눔은 또 개인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추면서도 기업과 건강보험사 등으로 고객층을 넓혔다.

눔의 인기 비결은 일대일 코칭에 있다. 눔은 2015년 인공지능(AI) 기반 코칭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눔은 정규직 코치를 고용해 인간 코칭을 추가했다. 일대일 상담 시스템을 만들어 공감과 동기부여, 책임감, 목표 설정, 조율, 피드백 등에 성공했다. ‘다이어트할 때 치킨, 맥주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걸 모르고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용자를 질책하기보다는 문제점 파악과 응원, 해결책 고민에 힘쓴다.

눔은 AI를 사람 코치 보조로 활용한다. 반복되고 일상적인 대화는 AI가, 정서적 교감은 사람 코치가 담당하는 식이다. AI는 고객들의 질문에서 우선순위를 분류해 답장 순서를 정하고, 식단 기록을 올리지 않는 회원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월 사용료가 10달러(약 1만1300원)에서 56달러(약 6만3000원)로 올랐는데도 고객들은 눔에 지갑을 열었다.

눔은 앞으로의 헬스 앱 시장 전망을 낙관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 공중보건대학(HSPH)에 따르면, 미국 20세 이상 성인 중 40%가 비만이며 과체중까지 포함하면 이 비중은 71.6%로 늘어난다. 비만으로 인해 생기는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심혈관계 질환 등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눔은 체중 감량을 넘어 스트레스·수면 관리,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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