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제(왼쪽) HGI 재무이사 전 어니스트앤드영 한영회계법인 공인회계사 남보현(오른쪽) HGI 대표이사 전 SK행복나눔재단, 전 LG전자 주임연구원, 전 SK커뮤니케이션즈 대리
진홍제(왼쪽) HGI 재무이사 전 어니스트앤드영 한영회계법인 공인회계사
남보현(오른쪽) HGI 대표이사 전 SK행복나눔재단, 전 LG전자 주임연구원, 전 SK커뮤니케이션즈 대리

ESG 홍수의 시대다. ESG 투자는 환경, 사회적 가치, 지배구조와 같은 비재무적 가치를, 수익률과 같은 재무적 가치와 함께 고려하는 투자 전략이다. 금융권 큰손인 정책 펀드를 비롯, 국민연금과 공제회에선 ESG 기준을 마련한 금융사에 자금을 맡기겠다고 했다. 금융사들은 앞다퉈 ESG 협의체를 만들고, 자체 등급으로 기업들을 줄 세운다.

강남과 여의도의 금융권이 시끌벅적한 사이, 성수동에선 ESG 투자 원조가 유유히 저변을 넓혀나가고 있다.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아들 정경선씨가 설립한 벤처캐피털(VC) 에이치지이니셔티브(HGI)다. HGI는 사회적 변화(임팩트)를 만드는 비상장사에 투자한다. 이런 기업은 소셜 벤처, 이에 투자하는 VC는 임팩트 투자사라고 불린다. 총운용자산은 913억원, 투자 기업에서 8배 수익을 올린 경험이 있다.

지난해 정경선 창립자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5년 전 투자팀장으로 HGI에 합류했던 남보현 대표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SK커뮤니케이션즈와 LG전자에서 정보기술(IT) 프로젝트를 담당하다가 행복나눔재단에서 2011년부터 소셜 벤처를 도우면서 임팩트 업계에 합류한 그다. 그를 만나 임팩트 투자의 정공법을 물었다. 인터뷰에는 진홍제 재무이사도 참여했다.


HGI는 어떤 기업에 투자하는가.
남보현 “현존하는 사회 문제와 미래에 예상되는 문제에 솔루션을 만드는 기업에 투자한다. 2014년부터 본계정으로 20여 개 기업에 투자했고,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펀드를 조성했다.”

그간 투자한 기업을 소개해달라.
진홍제 “취약계층을 고용해서 이커머스 물류 플랫폼을 운영하는 두손컴퍼니가 대표적인 투자 기업이다. 두손컴퍼니는 네이버와 페덱스 등의 이커머스 부문과 협업하고 있어서, 앞으로 이커머스 분야에서 성장이 기대되는 회사다. 이 기업은 투자 6년 만에 기업 가치가 50배 상승했다. HGI는 일부 지분을 매각하면서 8배 수익을 올렸다. 째깍악어도 대표가 혼자서 운영할 적부터 지켜본 회사로, 일하는 부모를 위한 시간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이 기업도 투자 이후 가치가 50배 상승했다.”

투자 기업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남보현 “다른 VC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규모, 기업의 성장성, 엑시트(exit·출구 전략) 가능성 등을 본다. 중요한 점은 임팩트 스크리닝을 한 번 더 거친다는 것이다. 기업가가 가장 중요한데 재무적 성공과 엑시트에 대한 욕심만 있는 사업가보단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기업가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 6개월이 걸렸던 건도 있다. ‘나중에 주주로서 함께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사업 모델이 바뀌어도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의지가 있느냐’ 등을 중요하게 본다. 이외에도 HGI는 투자 기업이 주류, 담배, 유흥, 오락 사업을 영위할 가능성은 없는지, 럭셔리 사업처럼 사회적 양극화를 불러일으킬 사업은 아닌지 점검한다. 기업가가 노동자 인권을 해하지 않겠다는 윤리 서약도 받는다. 추가로 기업가들이 본인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정리하고, 이를 정관에 반영하도록 돕고 있다. ”

기존 VC 업계와 임팩트 투자 업계가 융합하는 경우도 있나.
남보현 “투자 단계에서 HGI를 투자사로 초빙하는 기업이 종종 있다. 유아 대상 인터랙티브 미디어·교육 콘텐츠 개발 기업인 엔비져블이라는 회사 투자에 네이버, KTB네트워크와 참여한 것이 대표적 예다. 엔비져블은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하는 기업이기에, 재무적 성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본질적 가치에 공감하고 함께 논의할 투자자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HGI는 최근 대성창업투자와 메가인베스트먼트와도 함께 정책 펀드를 구성했다. 임팩트 투자사와 기존 VC가 시너지를 내는 첫 사례라고 한다. 양 업계 간 이해도가 깊어졌다고 본다.”

금융권에서 ESG 투자가 화제다.
남보현 “투자에 ESG 공시나 등급이 필수적인 상황이 오고 있다. 보통 좋은 ESG 등급을 받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에 집중하는데, 초기엔 의미가 있겠으나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중요한 지점은 ‘왜 ESG를 실행하는가’에 대한 기업의 철학이다. 기업이 사업 모델 전략에 철학을 반영하고 명시하는 것, 주요 영역에서 사업 모델이 잘 시행되는지 실사를 진행하는 것, 구체적인 정보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VC와 같은 투자사도 ESG 등급만으로 기업을 판단하지 말고, 함께 사회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이끌어나갈 능력이 있어야 한다.”

투자 기업에 대한 후속 평가가 철저히 이뤄져야 할 것 같다.
남보현 “HGI는 기업 임직원이 함께 참여하는 ‘임팩트 체인’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 중간 단계에서, 기업 조직원이 미션을 달성하려면 어떤 결과를 목표로 삼을지, 이를 위해 핵심성과지표(KPI)를 무엇으로 잡을지 논의하고, 사업 모델과 관련된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를 인터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성과를 관리하도록 트레이닝하는 과정이다. 투자 기업이 해외에서도 원활히 투자를 받도록 국제적 임팩트 기준인 IMP의 ‘다섯 가지 차원의 임팩트(5 Dimensions of Impact)’를 차용해서 평가한다.”

임팩트 투자를 받은 업체 중에서도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진홍제 “사실 일반 기업보다 어려울 것이다. 공부(재무성과)도 잘하고 인품(소셜임팩트)도 좋은 다재다능한 기업이어야 하니까. 다만 앞서 언급한 두손컴퍼니와 같이 네이버 등과 협력하면서 사업의 저변을 넓혀가는 기업들이 있어 긍정적으로 본다. 임팩트 펀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조성된 것이 2018년이고, 투자받은 기업들의 시리즈는 A~C 정도다. 현재 국내 유니콘의 업력이 10년 내외더라. 이를 고려하면 향후 4~5년 안엔 유니콘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HGI가 앞으로 주목하는 산업군은.
남보현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적응하기 위한 기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급속한 고령화와 가족 구성의 변화를 볼 때 노인과 관련된 헬스케어, 주거 등의 영역도 유망하다고 본다. 이 맥락에서 HGI는 최근 대성창업투자와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525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하였고, 다음 달 메가인베스트먼트와 저출산 초고령화, 산업구조 양극화, 사회 격차 심화 해결에 집중하는 205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HGI도 1인가구를 위한 공유 주거 공간을 운영하는 MGRV를 자체 설립했는데,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서 시니어를 위한 공유 주거 공간을 기획 중이다. MGRV와 시너지를 낼 만한 회사도 눈여겨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