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옛 일원 대우아파트 재건축)’ 단지 옥상 녹화 공간. 사진 현대건설
2021년 1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옛 일원 대우아파트 재건축)’ 단지 옥상 녹화 공간. 사진 현대건설
이상민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 주택설계팀장명지대 건축기획 석사, 전 현대건설 상품개발실 차장 / 사진 현대건설
이상민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 주택설계팀장
명지대 건축기획 석사, 전 현대건설 상품개발실 차장 / 사진 현대건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 현장을 둘러보던 당시 처음 든 생각은 ‘참 아름다운 땅이구나’였다. 하지만 약점은 있었다.”

이상민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 주택설계팀장은 7월 21일 아파트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말을 했다. 그의 눈엔 어떤 땅이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그리고 땅에 약점이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는 건축사이면서 시공기술사, 부동산 개발 전문가다. 20년 이상 개발, 설계, 디자인 업무를 두루 수행했다. ‘디에이치 라클라스’와 ‘디에이치 포레센트’ 등 그가 챙긴 서울 강남권 현장만 꼽아도 열 손가락은 거뜬히 넘길 정도였다.

이 팀장의 설명은 이랬다. “네모 반듯한 땅일수록 ‘예쁘다’고 표현한다. 라클라스가 들어서는 땅은 직사각형에 가까웠다. 이런 부지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대지의 폭이 좁고 긴 형태여서 출입 도로에서 보이는 단지 모습이 자칫 빈약하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넣은 것이 비정형 외관과 문주(門柱)였다. 3차원(3D) 기법을 활용해 설계한 문주는 16개의 대형 철제에 약 2400여 개 스테인레스 스틸 판넬을 이어 붙여 제작했다. 밤에는 문주에 1만2209개의 조명이 불을 밝힌다. 출입구에도 힘을 줬다. 한강 물결을 상징하는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입면 디자인으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고작 문 하나에 신경을 써봤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 하나를 만들면서도 수백 가지 고민을 한다. 그게 그 단지의 품격을 나타낸다.”

우리는 아파트의 품격을 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1970~80년대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 강남권에 대량 공급을 전제로 지어진 ‘복도식 아파트’는 재건축을 거치며 이제 고급화·차별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똑같은 모양의 성냥갑 아파트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이다.

그는 “리조트·호텔 같은 아파트가 선호되며 외관, 커뮤니티, 조경의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조망도 새로운 집값 결정 요인으로 편입돼 스카이라운지, 옥상 공간의 재탄생이 새 트렌드가 됐다”라고 했다.

요즘 그의 고민은 다음 세대의 아파트다. 이 팀장이 제시한 미래 아파트 설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는 ‘초연결’ ‘공간의 맞춤화·개인화’ ‘기술의 융복합’이다.


2021년 6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 아파트 재건축)’ 단지 특화 문주. 사진 현대건설
2021년 6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 아파트 재건축)’ 단지 특화 문주. 사진 현대건설

주택설계팀의 요즘 화두는
“미래 주택에 대한 고민이 많다. 사회 경제적 변화뿐 아니라 기후 변화 등 각종 트렌드를 예상해 상품에 더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한다.”

아파트 단지 설계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했나
“초기 아파트는 대량 공급을 전제로 한 복도식 아파트였다. 당연히 맞통풍이란 개념도 있을 리 만무했다. 온돌 난방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 것이 점차 한국화됐다. 서울 마포, 반포, 압구정, 목동, 경기 분당이나 일산신도시 등 시대에 따라 아파트 설계는 점차 도시 환경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리조트 같은 아파트, 호텔 같은 아파트가 선호되면서 외관, 커뮤니티, 조경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또 온난화, 미세먼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바이러스 전파 등 모든 환경 이슈에 대응하는 주거시설로 발전하고 있다.”

설계는 주거의 질뿐만 아니라 집값을 좌우한다.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첫째는 입지와 환경이다. 입지 및 환경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조망, 향, 인근 자연 요소를 단지 내외부로 확대시켜 입주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미래 트렌드다. 주택 설계는 시간을 앞서 가야 하는 일이다. 사회 변화와 환경 변화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입주 시점에도 기능적·디자인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해야 한다. 주택 설계의 핵심은 주거, 기능, 가치를 최적화·최대화하는 것이다. 통상 설계는 거시에서 시작해서 상세한 설계로 진행되는데, 주택 설계는 초기부터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동시에 고려한다. 단지 전체 환경뿐 아니라 가구별 환경을 모두 고려해 최대한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오래된 아파트를 사려는 수요자도 많다. 좋은 단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나
“안전이 최우선이니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축 아파트 중에서도 설립 연도에 따라 강화된 법이 적용된 단지와 비(非)적용 단지가 나뉜다. 지은 지 약 10여 년 된 아파트 중에는 초기 형태지만 커뮤니티 시설이 적용된 단지들이 있다.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과 자녀돌봄 시설 등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 면에서 창호의 성능과 기능도 중요하다. 에너지 소비량, 관리비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새 아파트와 옛 아파트의 다른 점은
“모든 입주민이 두루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는 과거엔 없던 요소다. 공동주택의 한계로 일부 가구는 집 안에서 남산, 한강 등 조망을 누릴 수 없으니 스카이라운지를 만들어 입주민 모두 조망권을 갖게 해주자는 것이다. 옥상 활용도 마찬가지다. 과거 공동주택들은 옥상을 활용할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옥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늘고 있다. 옥상부 건축 벽체를 활용해 영화 상영, 스포츠 응원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과 오픈파티를 할 수 있는 스카이가든을 조성하는 식이다. ‘디에이치 라클라스’와 ‘디에이치 포레센트’ 등에 적용됐다.”

‘아파트 브랜드’와 ‘특화 설계’가 점점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2015년에 디에이치(THE H)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일반적인 브랜드 아파트는 브랜드별 표준 디자인을 개발해 적용하는 반면 디에이치는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 아파트의 입지 환경, 상징성, 특수성, 조합원들의 요구를 조사해 단지별로 특장점을 담은 단지를 디자인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외관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디에이치 최초 단지인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는 좋은 입지 여건을 가졌다. 처음 현장을 둘러볼 때 ‘참 아름다운 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대지 폭이 좁고 긴 형상이라서 진입 도로에서 보여지는 단지는 너무나 좁아 보였다. 디에이치 단지의 존재감을 어떻게 외부로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외관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비정형 외관, 비정형 문주,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 커뮤니티를 적용하게 됐다.”

미래 아파트 설계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초연결’ ‘공간의 맞춤화·개인화’ ‘기술의 융복합’이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발달에 따라 아파트도 진화하고 있다. 집에서 차량을 제어하고 차량에서도 집을 제어할 수 있는 현대건설의 스마트홈 시스템 ‘하이오티’가 그 예다. 홈투카(home to car), 카투홈(car to home)의 실현이다. 1인 가구 증가 등 인구 사회 구조의 변화로 더 이상 획일적인 주거 시설로는 다양한 입주민의 요구에 대응할 수 없다. 공간의 맞춤화와 함께 한정된 공간을 다양하게 쓸 수 있도록 해주는 트랜스포밍 가구 등이 트렌드가 될 것이다. 기술 융복합도 키워드다. 다양한 기술을 적용해 미세먼지와 바이러스 등 환경 이슈에 대응하고, 유지 관리비가 적게 들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고, 친환경 소재를 적용하는 등 아파트의 상품 가치를 높이려는 경쟁이 점점 치열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