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서울대 항공공학 학·석사, 프랑스 폴사바티에대 대학원 자동제어학 석·박사, 전 항우연 달탐사사업단장 /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서울대 항공공학 학·석사, 프랑스 폴사바티에대 대학원 자동제어학 석·박사, 전 항우연 달탐사사업단장 /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 항공우주 역사 30년 만에 우주 독립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우리 로켓(발사체) 기술로 화성 궤도선을 쏘아 올리는 일도 가능해질 겁니다.”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원장은 9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NH농협캐피탈빌딩에서 가진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한국의 독자 기술로 11년에 걸쳐 완성한 최초의 국산 로켓 ‘누리호’가 10월 2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예정이다. 항우연을 중심으로 한국항공우주(KAI), 한화, 두원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300여 개 기업이 누리호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면 한국은 미국·러시아·유럽(EU)·중국·일본·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로 자신의 힘으로 인공위성과 우주선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국가가 된다. 로켓은 현재 우주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미국 스페이스X 등이 열어젖힌 민간 우주 개척 시대의 흐름에도 한국이 뒤처지지 않고 쫓아갈 수 있게 됐다.

누리호는 아리랑·천리안처럼 1t 이상의 무게를 가진 실용 위성을 우리 힘으로 쏘아 올리기 위해 2010년 3월부터 개발했다. 2009년 8월 러시아 기술과 부품을 빌려 만든 로켓 나로호가 첫 발사에 실패한 후, 장기적으로는 로켓 독립이 필요할 거라는 공감대가 정부와 업계에서 형성돼 누리호 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누리호는 내년부터 가벼운 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우선 활용된다. 2026년엔 민간 기업 주도로 만들 약 500㎏ 무게의 차세대 중형 위성 3호를 실어 발사한다. 한국도 미국 스페이스X처럼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우주 로켓과 인공위성, 우주선 개발을 주도하는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다. 민간 기업이 로켓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항우연은 내년부터 기업과 공동으로 누리호 개량 작업을 수행해 실제 발사용 로켓 4기를 제작할 예정이다. 이 원장은 “한국의 스페이스X 탄생 시점을 예상할 순 없지만, 확실한 건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로켓 기술은 어느 국가도 알려주지 않는 전략 기술이다”라고 강조했다. 일단 기술을 확보하면 산업·국방·학계 분야의 국가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혼자서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는 기술 확보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2010년 누리호 개발을 시작했을 당시 한국은 설계와 제작은 물론, 수많은 부품의 성능을 각각 시험할 인프라조차 갖추지 못했다. 필요한 기술을 차례로 확보해나가는 동안 어느덧 11년이 흘렀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 세워진 누리호.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 세워진 누리호.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 원장은 “어떤 장치들은 수치 계산으로 최적화된 구조를 구할 수 없고 선진국에도 정해진 해법이 없었다”라며 “무작정 설계하고 실패하고 다시 설계하는 정공법으로 극복해야만 했다”라고 회상했다.

연소 불안정 문제가 그랬다. 연소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로켓의 추진에 차질이 생긴다. 연료가 타들어 가는 연소실은 3300~3400℃, 60기압이 작용하는 극한의 공간이다. 연소실 외부에 보관 중인 액체 연료를 필요한 만큼 연소실 안에 주입해야 하는데, 내부 상태가 이렇다 보니 제대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원장은 “특별한 해결법은 없었다. 12차례의 구조 설계 변경과 20여 차례의 시험을 거쳐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연소 불안정 문제는 연소실이 클수록 발생하기 쉽다. 누리호가 300t의 추진력을 내는 1단 엔진을 75t급 엔진 4기로 나눠 만든 후 하나처럼 작동하도록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을 적용한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클러스터링 역시 고난도 기술이라 누리호 개발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됐다.

4기의 개별 엔진에 동시에 연료가 공급되고 점화돼 화염을 내뿜어야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1기라도 연소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4기의 추진력이 불균형해져 발사에 실패할 수도 있다. 4기 엔진이 하나처럼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종합연소시험’은 누리호 개발의 최고난도 과정으로 평가받았고, 지난 3월 이 시험을 통과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 개발 완료를 의미한다”라고 선언했다.

이 원장은 “추진제 탱크 제작 과정도 도전의 영역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연료와 산화제를 보관하는 추진제 탱크는 3.5m의 지름에 2~3㎜의 얇은 두께로 만들어져야 했다. 로켓이 최대한 많은 연료를 실으려면 추진제 탱크를 포함한 본체 무게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선박의 경우 본체를 아주 조금 더 두껍고 무겁게 만들더라도 안전하게 만드는 게 최우선이지만 로켓은 안전성만 강조하면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라며 “그래서 극한의 조건까지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누리호 개량 모델은 2030년 예정된 한국 최초의 달 착륙선 발사에도 쓰일 예정이다. 우주선을 달 궤도에 보내는 걸 넘어 지상 착륙까지 시키는 일은 미국·러시아·중국 3개국만 성공한 한 차원 더 높은 로켓 기술인데, 9년 후 한국도 누리호를 통해 이 반열에 오르겠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화성 착륙은 시기상조지만 화성 궤도선 발사는 무게만 어느 정도 타협하면 현재 누리호나 개량 모델로 가능할 것”이라며 “특히 아랍에미리트(UAE)도 성공한 일을 한국이 못 할 이유가 없다”라고도 했다. 항공우주 분야에선 한때 UAE의 스승이었던 한국이 자극을 받고 누리호를 통한 우주 탐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UAE는 2009년 한국 기업 쎄트렉아이의 도움을 받아 첫 소형 위성 ‘두바이샛 1호’를 쏘아 올리고 12년 후인 올해 2월, 달 탐사를 건너뛰고 곧바로 화성 탐사에 성공했다.

이 원장은 민간 우주 시대에도 여전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마련한 우주 인프라가 없었다면 오늘날 스페이스X도 없었다”라며 “한국 정부도 최근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을 시행하고 우주개발 거버넌스인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로 승격하는 등 우주 산업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누리호는 본체와 연료를 합친 총무게 200t, 길이 47.2m, 최대 지름 3.5m 규모로, 1~3단에 각각 75t급 엔진 4기·1기·1기를 탑재한 3단 엔진으로 구성된다. 1.5t 무게의 가짜 위성을 싣고 600~800㎞ 상공에 발사된다. 성공하면 같은 모델을 다시 만들어 내년 5월 1.3t의 가짜 위성과 180㎏의 실제로 작동하는 위성을 싣고 한 번 더 발사해 성능을 재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