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KAIST 전산학 중퇴, 전 에빅사 대표,  전 엔써즈 대표 사진 소프트뱅크벤처스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KAIST 전산학 중퇴, 전 에빅사 대표, 전 엔써즈 대표 사진 소프트뱅크벤처스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는 스타트업·벤처 업계에서 잘 알려진 연쇄 창업가 출신 투자 심사역이다. 카이스트(KAIST)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1년 컴퓨터 원격 제어 소프트웨어 업체 에빅사를 창업해 LG데이콤(현 LG유플러스)에 매각했고, 2007년에는 동영상 솔루션 업체 엔써즈를 창업해 KT에 팔았다.

두 개의 회사를 세워 매각하며 업계에 이름을 알린 이 대표는 2015년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전업했다. 엔써즈를 이끌던 시절 소프트뱅크벤처스의 투자를 받은 것이 인연이 됐다. 회사에 선배 심사역들이 많았지만, 전임자였던 문규학(현 비전펀드 아시아투자총괄파트너) 전 대표는 후임으로 이 대표를 낙점했다. 

이 대표가 사령탑을 맡은 4년 동안 소프트뱅크벤처스는 괄목할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가 초기에 투자한 영상 메신저 업체 하이퍼커넥트는 ‘틴더’를 운영하는 미국 매치그룹에 인수됐고, 당근마켓은 기업 가치 3조원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으로 컸다. 차량 공유 업체 쏘카는 연내 상장을 앞두고 있다.

서울 서초동 소프트뱅크벤처스 사무실에서 최근 이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올해 스타트업 시장이 작년과 같은 호황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벤처캐피털(VC)들이 피투자사 간 인수합병(M&A)이나 기술 제휴를 능동적으로 지원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야 생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투자 실적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총 8611억원 규모의 벤처 펀드를 새로 결성했다. 투자 금액은 6082억원이었으며, 총 5034억원을 회수했다. 펀드 결성, 투자, 회수 금액 모두 예년과 비교해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창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하이퍼커넥트가 매각되면서 약 30배의 수익을 가져다줬다. 그 외에도 카카오에 매각된 웹툰 플랫폼 래디쉬를 통해 11.4배 수익을 올렸고, 최근 인도네시아 이커머스 업체 토코피디아의 프리 IPO(기업공개) 과정에서 보유 지분 중 극히 일부를 90배 정도에 매각했다. 정신없이 펀드를 만들고 투자해 열심히 수확한 한 해였다.”

요즘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산업이나 섹터는.
“지난해 인공지능(AI) 분야의 혁신적 기업들과 로보틱스(로봇공학) 기술을 가진 회사들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대표적인 예가 노르웨이 스타트업 아쿠아바이트다. 미국의 글로벌 VC인 NEA가 초기 투자를 한 뒤 우리가 시리즈B 투자를 주도했다. 이 회사는 AI와 로보틱스를 수산업에 적용해, 양식장에 있는 연어 수십만 마리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물 온도와 먹이를 자동으로 조절해준다. 연어 양식 시장 규모가 수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아쿠아바이트도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기술을 잘 활용해 시장의 트렌드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도 눈여겨보고 있다. 특히 리셀(resell·한정판 제품을 더 높은 가격에 되파는 것) 플랫폼에 관심이 많아 한·중·일 3개국의 대표적인 리셀 업체에 모두 초기 투자했다.”

3개국에서 비슷한 스타트업을 찾아내 모두 투자하는 사례는 흔치 않을 텐데.
“세 회사 모두 시리즈A 투자를 집행했다. 먼저 중국의 리셀 플랫폼 ‘나이스’에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 국내 1위 리셀 업체 ‘크림’에 투자했고, 이후 일본에서도 비슷한 회사를 찾아냈다. 리셀 플랫폼 ‘스니커덩크’를 운영하는 ‘소다’라는 회사다. 세 회사가 가품과 진품에 대한 빅데이터를 AI로 학습해 데이터를 공유한다면, 동북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포함한 아시아 시장의 1등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지분 투자 후 실제로 리셀 플랫폼 간 협업이 잘 이뤄지고 있나.
“크림이 원래 일본 시장에 진출하려고 했으나, 그 대신 소다에 지분 투자를 했다. 이후 우리는 소다에 한 번 더 투자했고 소다는 그 투자금으로 일본 2위 플랫폼 ‘모노카부’를 인수해 시장 점유율 90%를 달성했다. 한·일 최대의 ‘리셀 연합군’이 만들어진 것이다. 모노카부의 최고경영자(CEO)는 지금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나간 상태다.”

VC가 포트폴리오사의 지분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해 합종연횡을 이끌어냈다는 것인데, 이런 사례가 또 있을까.
“지난 2018년 영화 등 동영상 자막을 제작하는 아이유노미디어그룹에 기관 투자자 중 최초로 240억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원래 국내와 동남아 시장에서 수동으로 자막을 제작하는 사업을 하다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확대에 발맞춰 AI 기반 기술 기업으로 성장했다. 성장세를 발판 삼아 2019년 유럽 1위 자막 회사 BTI를 인수했으며, 지난해에는 미국 최대 자막 회사 SDI까지 인수해 연 매출 6000억원이 넘는 세계 1위 자막 업체가 됐다. 우리는 이 투자 과정을 도운 후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에게도 아이유노를 소개했다. 아이유노는 결국 지난해 4월 비전펀드로부터 1800억원을 투자받으며 1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유니콘’이 됐다.”

올해 자산 시장이 조정을 겪으면 VC 사이의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자본이 풍부한 대형사에 돈이 몰리고, 반대로 규모가 작은 VC들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VC의 규모보다도 투자자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초기 VC들의 공통점은 투자자가 창업자와 함께 호흡하며 비전을 같이 꿈꾸고 능동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창업가 입장에서 생각할 때, 나는 절대 ‘많이 들어본 VC’라는 이유로 투자 유치를 결심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투자사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명확히 이해해야만 투자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스타트업 시장의 전체적인 전망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이미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상장한 많은 회사의 주가가 현재 공모가를 밑돌고 있어, 프리 IPO 단계에 투자했던 VC들이 적잖이 고생하고 있다. 후기 단계 투자자들은 벌써 기업 가치를 하향 조정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투자했던 회사 한 곳도 최근 후속 투자 유치를 위한 계약 체결 직전 밸류에이션을 30%나 깎였다. 상장 시장이 조정받으면 비상장사 가치도 뒤따라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년 한 해 동안 결성된 벤처 펀드의 규모가 워낙 커서 투자가 크게 줄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VC와 스타트업들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올해는 좀 더 선별적으로 투자해야만 한다.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투자 유치를 조금 앞당기는 게 유리할 것이다. 현금 흐름을 잘 관리해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더라도 향후 몇 년 동안 잘 버틸 수 있도록 미리 점검하는 것이 좋다. 플랜 B, 플랜 C까지 염두에 둘 것을 권한다.”

VC 입장에서 ‘선별적 투자’의 기준은 어디에 둬야 할까.
“수익 모델이 검증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큰 회사를 눈여겨봐야 한다. 실제로 미국 VC들은 반복 매출(recurring revenue·구독 서비스 등에서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매출)이 일어나지 않는 스타트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거래액을 늘려 외형적 성장만 해온 회사들은 작년과 달리 미래의 가치만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급성장한 비대면 온라인 플랫폼은 쇠퇴할까.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엄청난 변곡점이 됐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전까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례로 비대면 의료 플랫폼 ‘닥터나우’가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나 당초 예상보다 4~5년이나 빨리 보편화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허들이 무너진 만큼, 사람들은 이제 팬데믹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노자운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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