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2011년 뉴욕타임스(NYT)에 ‘이 재킷을 사지 마시오(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패스트 패션이 유행하는 시대에 한 벌의 옷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환경 오염을 감수해야 하는지 대중에게 알리는 한편, 친환경 재활용 원료를 사용해 ‘오래 입어도 새것’ 같은 자사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이 광고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사지 말라’는 말과 달리 수많은 파타고니아 마니아를 만들어냈다.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쓴 저자 오바라 가즈히로(尾原和啓)는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및 화상 인터뷰에서 “이제는 아웃풋(완성품)이 아니라 프로세스(과정)에서 가치가 창출되는 시대가 됐다”면서, 파타고니아와 한국의 BTS 등을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성공 사례로 꼽았다. 그는 ‘놀 줄 아는 그들의 반격’ ‘나는 왜 구글을 그만두고 라쿠텐으로 갔을까’ 등 베스트셀러를 펴냈고, 공저인 ‘애프터 디지털’은 일본에서 15만 부 이상 팔렸다. 다음은 오바라와 일문일답.
왜 프로세스 이코노미가 중요한가.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기술 발달로 인해 아웃풋을 고르기 힘든 시대가 됐다. 싸고 성능 좋은 텔레비전, 세탁기가 시장에 넘쳐나지 않나. 그러니 기업 입장에서 보자면, 이익을 내기 힘들어졌고, 기술·성능 이외의 면에도 주목해야 하게 됐다. 이제 사용자들은 아웃풋만으로 소비를 결정하지 않는다. 어떤 이념으로 물건을 만들었는지, 그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다시 말해 프로세스에 가치를 두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프로세스에 관심을 갖고 공감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나는 51세인데, 내가 젊은 시절만 해도 지금처럼 사회가 풍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젊은 세대는 물질적 결핍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부족한 게 없이 자라 딱히 무언가를 욕망하지 않는다.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행복해지려면 ‘성취, 쾌락, 긍정적 인간관계, 의미, 몰입’ 등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처럼 ‘욕망하는 세대’는 성취와 쾌락을 중시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사회 안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로 의미를 찾을지, 어떻게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을지를 추구한다. 이러한 (시대·사회적) 특징이 프로세스와 부합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프로세스에 공감하고, 프로세스를 공유하는 데 매력을 느끼게 한다.”
프로세스 이코노미 시대에 걸맞은 성공 사례를 들려달라.
“BTS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좋아하는 음악에 몰두하고,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곡을 많이 쓰지 않나. 그들은 (음반) 제작 과정, 레코딩 과정 등을 (팬들과) 공유한다. 얼마 전 그룹 활동을 중단하고 개별 활동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성장해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BTS는 이런 전 과정을 모두 보여주고, ‘아미’라고 부르는 팬들은 그것을 공유하고, 퍼뜨림으로써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간다.”
프로세스 자체가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결과가 실패라 하더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나.
“제작자가 ‘높은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관건이다. 더 나은 목표, 높은 가치를 위해 도전하지도 않고 실패한 이들에겐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만약 높은 목표를 위해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우라면 비록 결과가 실패라 하더라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프로세스 이코노미에서는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높은 목표가 있고, 그걸 지지하고 응원해 줄 동료(지지층)가 있다면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실패하는 것이 대단히 흥미로운 서사가 될 수 있다. 여행만 해도 그렇지 않나. 아무런 트러블도 없는 여행은 심심하다. 여행 과정에서 뭔가 실수나 착오가 생기는 편이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아아, 재미있는 여행이었지’ 하고 추억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픽사의 스토리텔러 출신 매슈 룬(Matthew Luhn)은 기업도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했다. 당신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프로세스 이코노미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진정성(authenticity)이 없으면 금방 탄로 나 버린다. 지금 젊은 세대는 인플루언서들이 진정성 있게 만든 포스트를 매일 수도 없이 보고 있다. 그래서 이게 진심에서 우러난 이야기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성이 대단히 중요하다. 역(逆)으로 진정성을 억지로 만들려 했다가 들켜버린 경우엔 오히려 몇몇 브랜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캔슬 컬처(cancel culture·유명인이나 브랜드의 과거 발언 등을 온라인상에 고발·비판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잃게 만드는 현상)’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따르려고 하는 기업이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면 .
“두 가지다. 첫째, 프로세스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함께 모험을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프로세스에 함께 참여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세스 자체에 어떤 가치가 있어야 한다. 어떤 높은 목표를 지향한다든지, 하는. 왜 그 프로세스를 따라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와이(why)’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둘째, 유저(user)는 자발적으로 자신이 원해서 프로세스에 동참한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서 참여한 모험과 여정이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어 버리는 수가 있다. ‘이런저런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라거나, ‘왜 이 과정에 좀 더 공헌하지 않는 거야’라는 식으로. 자발적 참여에 간섭이 들어가 ‘원한다(want)’가 ‘해야 한다(must)’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확 질려버린다. 이렇게 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다.”
프로세스 이코노미 시대에 마케터의 임무는 무엇인가.
“프로세스를 따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 (브랜드나 제품을) ‘전한다’에서 ‘전해진다’로, ‘전해진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추종자들로 하여금 ‘전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브랜드와 제품이 주는 메시지를) 전해 받은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전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듯 여러 사람과 공유(share)하는 것이 인터넷의 본질이다. 책처럼 긴 이야기는 공유가 어렵다. 하지만 동영상·쇼트무비·인포그래픽·사진 등은 ‘전하고 싶다’가 중요해진 시대에 걸맞은 전달 수단이다.”
프로세스 이코노미 시대에 근무 환경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결과주의를 프로세스주의로 바꿔야 한다. 이제까지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 제품을 만들기까지 자신을 죽이고 조금만 참자는 정서가 팽배했다. 목적지를 향해 숨을 참고 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한 단계 한 단계 걸어가면서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여정이 더 중요해졌다. 자동차 여행을 예로 든다면, 예전엔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 게 중요했지만 지금은 가는 길에 좋은 가게에 들른다든지, 예상치 못한 만남을 갖는다든지,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한다든지 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그러니 ‘그건 틀린 답이니 관둬’ 같은 과거의 정답주의가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게 좀 더 맥락에 맞지 않을까’ ‘이렇게 고치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같은 수정주의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