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NH농협은행 금융소비자보호부문 부행장전북대 경영학, 전 NH농협은행 카드회원사업부장,전 카드고객행복센터장, 전 신촌중앙지점장,전 서울영업본부 한남동지점장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이수경 NH농협은행 금융소비자보호부문 부행장전북대 경영학, 전 NH농협은행 카드회원사업부장,전 카드고객행복센터장, 전 신촌중앙지점장,전 서울영업본부 한남동지점장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신임 지점장 발령받았던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지점은 부자 고객이 많을 거란 이미지와 달리 당시 3년 연속 폐쇄 대상 지점으로 선정된 곳이었어요. 그렇기에 더욱 세금 고지서 한 장 들고 오신 할머니 등 지점에 오시는 모든 고객을 ‘부자 고객’인 것처럼 세심히 배려했습니다.

그러자 고객들도 점차 한남동지점에 신뢰를 보이며 많게는 50억원까지 예치해주시게 됐습니다. 자연히 한남동지점은 폐쇄 대상 지점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건재하게 됐죠. 그때 함께 노력했던 직원들과는 지금까지도 래프팅(급류를 배를 타고 가는 수상레저)하러 다니는 등 인연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수경(58) NH농협은행 금융소비자보호부문 부행장은 NH농협은행 최초의 대졸 출신 여사원이자 첫 여성 임원이다. 이 부행장은 이처럼 첫 번째 타이틀이 많은 비결을 묻자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부행장의 세심함은 상대방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올해 초 다리에 깁스한 직원이 있었는데, 부끄러워서인지 목발을 짚고 다니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했다. 과거 같은 상황을 겪어봤던 이 부행장은 등산스틱을 추천했고, 그것조차 직원에게 고민거리가 될 것 같다고 판단해 등산스틱을 골라 직원에게 선물했다. 해당 직원은 나중에 이 부행장을 찾아와 “바쁜 시기 다리를 다쳐 조직에 피해를 줄까 봐 속상했었다. 나도 부행장님처럼 주변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1964년생 이 부행장은 1986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2012년부터 NH농협은행에서 일하며 2015년 한남동지점장, 2017년 동교동지점장 등 두 번 연속 지점장을 맡았다. 이후 카드마케팅부장, 카드회원사업부장을 역임했고 2020년 NH농협금융의 첫 여성 임원으로 선임됐다.

이 부행장은 2021년부터 농협은행의 첫 단독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를 맡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대응해 오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겸직 체계로 운영해온 CCO를 분리하고 부행장급 자리로 승격했다. 금소법은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금융사가 지켜야 할 원칙과 책임을 대폭 확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부행장을 최근 서울시 중구 NH농협은행 본사에서 만나 금융인을 꿈꾸는 이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이 부행장과 일문일답.


NH농협은행 최초의 대졸 출신 여사원, 첫 여성 임원 등 첫 번째 타이틀이 많다.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나.
“평사원 시절, 선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고 같이 상의하며 일을 배우고 해결했다. 책임자가 된 후론 맡은 일을 잘하는 것은 물론, 항상 같이 일하는 후배들을 성장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수경은 본인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챙기고 발전시킬 수 있구나’라는 믿음이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한 힘이었던 것 같다. 우선 상대방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시작해보면 된다.”

남성이 다수인 상황에서 여성으로서 어려움은 없었나.
“학부생 시절 경영학과 학생 300명 중 여학생은 5명뿐이었다.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며 남녀 구분 없이 4년을 지냈다. 농협중앙회에 입사 후 점포지원단에서 근무할 때도 5년간 여성 책임자는 나 한 명이었다. NH농협은행은 점포를 새로 개설할 때 해당 지역의 지역농협과 분쟁 해결이 중요하다. 지역농협 이사가 전화해 거칠게 항의할 때도 다른 남성 담당자를 연결해달라고 한 적 없이 모두 직접 대응했다.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나가니 부서원들도 특별대우하거나 보호할 여성이 아닌, 든든한 동료로 인정해줬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운이 좋게도 시어머니께서 육아를 도와주셨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자 너무 힘들고 건강이 악화해 결국 사표를 냈었다. 그때 상사가 크게 화를 내며 사표를 반려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곳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후배들에겐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가끔은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 출산휴가를 가면서 동료들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동료들도 진심 어린 축하를 할 수 있도록 조직 차원의 적극적인 인력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소비자 접점과 민원이 많은 카드 사업을 직전까지 맡았는데.
“카드회원사업부장을 맡았던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전 국민이 힘든 시기에 재난지원금 업무를 추진했었다. 가장 압박이 심했던 업무는 선불카드 발급이었다. 통상적으로 선불카드는 1년에 100만 장 정도 발행하는데,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 1400만 장을 발행해야 했다. 평소의 50배가 넘는 업무량이었다. 매일 밤을 새운 본부 부서 직원들, 직접 고객 응대하는 영업점 직원들이 한마음이 돼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가능해졌다. 농협 외에는 은행 하나 없는 시골에서도, 신청을 대신 해줄 자녀들도 없는 노인분들도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금소법이 시행된 지 약 2년이 돼 간다. 그동안 소비자보호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금소법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전사적으로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한 인식 전환을 하는 것이다. 2020년 8월부터 ‘금소법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고, 임직원들이 ‘금소법’으로 잠꼬대를 할 정도로 지속적인 교육을 했다. 또 금융소비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방안은 판매 담당 직원의 성과평가 제도를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검토하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적 위주의 무리한 성과평가는 해외금리연계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사태 등과 같은 불완전판매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다. NH농협은행은 성과평가 항목 중 고객수익률관리 배점을 확대하는 등 금융소비자보호부문의 배점 비율을 20% 이상 차지하도록 했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앞으로는 비대면·디지털 문화 확산으로 인한 금융 취약 계층의 금융 접근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예정이다. 또 고령자 모드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는 등 비대면 소비자보호를 강화하려 한다. 무엇보다 금융소비자보호 내부통제시스템 개발을 선제적으로 추진해 올해 안에 오픈할 예정이며, 소비자 피해 위험지표를 자동으로 모니터링할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 부탁한다.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전문성과 제너럴리스트의 넓은 시각을 키워야 한다. 금융권, 특히 은행의 업무 분야는 기업 투자, 여신 심사, 리스크 관리 등 방대하다. 본인 분야의 지식은 물론 다른 부문에서 토론하고 의사 결정할 수 있는 통찰력도 갖춰야 한다. 아울러 과거와 달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면서 역량을 갖춘 여성 인재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NH농협은행도 영업점·지점장 등 관리자급은 30.5%, 책임자급은 51.9%가 여성일 정도로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유리천장을 걱정하며 미리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역량과 성과를 보여주면 어느 순간 기회의 문이 활짝 열려 있을 거라고 용기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