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물리학·경제학,미국 브랜다이스대경제학 석·박사, 현 세종대경제통합연구소 소장, 현 JEI편집위원장,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물리학·경제학,미국 브랜다이스대경제학 석·박사, 현 세종대경제통합연구소 소장, 현 JEI편집위원장,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1월 1~2일(현지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렸다. 6·7·9월에 이어 네 번 연속 0.75%포인트 금리 인상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高)물가와 1400원을 넘나드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려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나머지 국가가 통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덩달아 금리를 인상하는 ‘역(逆)환율 전쟁(reverse currency wars)’은 언제쯤 끝날까. 

최근 서울 군자동 세종대 광개토관 연구실에서 만난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약해졌다는 확실한 증거를 데이터로 확인할 때까지 연준은 금리 인상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환율 오름세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면서 “정부는 현 경제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위기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더 확실한 시그널을 국민에게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행정고시(50회)를 수석 합격하고 10년 동안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관료 출신 학자’다. 그는 현재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금융위기 가능성을 너무 작게 평가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위기의 씨앗은 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기에 이미 심어졌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의 달러 강세가 얼마나 갈까.
“달러 강세가 진정되려면 미국과 다른 국가 간 금리 차이가 지금처럼 계속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 결국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충분한 하방 압력을 가했다고 판단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거나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수그러든다는 분명한 증거를 데이터로 확인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애초에 연준의 인플레이션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많다.
“미국 물가가 작년에 이미 관리 목표치(2%)의 두 배인 4%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에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이런 측면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연준은 2020년 평균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하면서 ‘일시적인 물가 변화에 의미를 두지 않고 인플레이션의 장기적인 움직임에 따라 정책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변화를 토대로 연준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수요 측면에서 경제 회복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제로(0) 금리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를 반대로 보면 지금의 연준은 인플레이션 지표가 전월 대비 한두 번 낮아진다고 해서 금리 인상을 곧장 멈추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금의 고환율이 미국의 긴축 행보 등 외부적 요인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 시스템의 위기 성격이 강했던 과거와는 다르다고 한다.
“위기의 씨앗은 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기에 이미 심어졌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 가계·기업 부채가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중앙은행이 이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자산 가격 버블이 붕괴하면서 부채를 늘려왔던 실물경제는 침체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는 유례없이 긴 유동성 확장의 시기를 거쳐왔다. 제로 금리 정책이 오래 이어진 결과, 우리는 주식·부동산 시장의 호황을 누렸다. 현재 인플레이션 압박은 길고 길었던 저금리 정책의 후폭풍이기도 한 셈이다. 만약 지금의 금융 시장 불안이 진짜 위기로 이어진다면 전 세계는 심각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이 있나.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위기 가능성을 너무 작게 평가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전개 양상에 따라 원자재 가격과 금융 시장이 다시 요동칠 수 있고, 경제 체력이 취약한 나라에 위기가 닥칠 경우 우리 경제에도 얼마든지 위기가 전이될 수 있다. 오랜 기간 유지된 제로 금리에 익숙해진 가계와 기업, 금융기관이 급격한 금리 인상을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우리 무역수지 적자 폭이 확대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따라서 정부는 현 경제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위기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더 확실한 시그널을 국민에게 줄 필요가 있다. 국회도 정쟁을 멈추고 정부의 위기 대응 태세를 점검해야 한다.”

파운드화 급락을 촉발한 영국 정부의 감세 정책을 염두에 둔 발언 같다.
“영국 같은 경제 대국도 단 한 번의 정책 실기로 금융 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외환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점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만큼 현재 글로벌 금융 시장은 매우 취약한 상태고, 언제든 패닉에 빠질 수 있다. 참고로 영국 연기금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금리 기조로 수익성이 하락하자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 레버리지를 이용하는 부채연계투자(LDI)를 확대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신정부의 감세 정책 발표가 국채 가격 하락을 촉발하자 연기금이 증거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국채 투매가 발생했고, 이를 막기 위해 영국 정부가 대규모 국채 매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랜 제로 금리를 거치면서 이를 활용한 파생 금융 상품이 많이 개발됐다. 이들 금융 상품은 금리 상승기에 큰 손실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부는 주식 시장과 외환 시장뿐 아니라 최근 변동성이 커진 채권 시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한국 물가 수준이 경기 둔화를 각오하고서라도 강력한 긴축을 강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나.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경제 회복과 수요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에는 긴축 정책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공급 측 요인에 따른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긴축 정책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통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100% 해결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연준 분석에 따르면 미국 인플레이션도 60%가 수요 측 요인이고, 40%가 공급 측 요인이라고 한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강력한 셧다운이 없었다는 점에서 공급 측 요인이 작을 수 있으나 원자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에서는 공급 측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중앙은행 홀로 강력히 대응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중앙은행과 정부의 협력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공급 측 요인은 정부가 규제 개선 등의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과도한 통화 가치 하락이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환율 안정에 주력해야 한다. 다만 환율만을 기준으로 금리 정책을 펼치는 건 위험하다고 본다. 급격한 금리 상승은 변화에 대응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가계와 기업에 큰 희생을 안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 부채 문제와 부동산 가격 급락이 결합해 금융위기를 부추길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당장은 금리 인상 기조를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길게 보면 가계·기업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